2010년 2월 20일 토요일

Phillips Collection: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의 방

예, 여기가 바로 오늘 저의 천국이었습니다.

 

제가 The Eight 멤버들 (미국 사실주의 화가들)을 인물별로 페이지를 열어서 이야기를 한적이 있는데요, 복습해볼까요. 왼편의 뉴욕 고가 기차그림: 이거 누구것일까요?  미국 사실주의 그림에서 뉴욕 고가 기차가 나오면 자동으로 떠올릴만한 화가가 한명 있지요.  맞은편의 (오른쪽 첫번째) 그림도 같은 작가의 작품입니다.

 

 

 

 

왼편에 보석을 박아놓은듯 아른아른하게 그린 작품. 이 작품의 작가는 누구일까요? 

(저한테 - "너 이방에서 가장 맘에 드는 작품 하나 가져가라" 하고 이 집 주인이 제안한다면, 저는 바로 이 작품을 가져오고 싶어요. 아름답고 행복해보이니까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나란히 걸려있지요.

 

 

저 건너방에 유리상자 안에 뭔가 전시되어 있는데요, 보석같이 아른아른한 색감의 화가가 그린 작품이 모셔져 있어요.

 

 

 

이렇게 앉아서 작품을 실컷 보는거지요.

 

 

 

호퍼 맞은편 벽에는 벽난로가 있고요. 벽난로 위에 Rockwell Kent 의 설원 풍경이 걸려있습니다.  (겨울이라 겨울작품을 걸은듯해요)

 

여기 걸린 구체적인 작품들은 별도로 정리를 할것입니다. 하나 하나. 보석을 들여다보듯.

 

뭐 돈도 없고, 가진것도 별로 없고. 그럭저럭 먹고 살수 있는 직장과, 공부 한 것이 밑천의 전부인데, 그래도, 내 기억속의 명작들과 내가 가진 사진 파일들을 생각하면 별로 남이 부럽지 않아요. 내가 제일 부자 같아요. 헤헤. (필립스 콜렉션, 이 집도 다 내집이다. 내가 가끔 가서 둘러보는 별장이다. 뭐 이렇게 상상하면 되는거죠.)

 

 

 

 

 

Georgia O'Keeffe Abstraction Feb6-May9,2010 필립스콜렉션

필립스 콜렉션 입구입니다.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죠.

이 사진에 나도 있어요. ^^

2010년 2월 20일

 

 

2010년 2월 6일부터 5월 9일까지 세달간 워싱턴 디씨의 필립스 콜렉션에서 조지아 오키프의 추상미술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대형 미술관을 돌며 오키프의 작품들을 꽤 많이 보고 지나쳤었는데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그이의 추상미술을 한눈에 휙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후원인이었다가 남편이 된, 알프레드 스티글리츠에게 보낸 자필 편지며, 스티글리츠가 '애정'을 기울여서 찍은 오키프의 각종 사진들도 흥미를 불러일으킬만 한데요 (제가 미술전공생이 아니고 문학전공생이다보니, 작품의 예술성보다는 인물사적 에피소드에 오히려 솔깃하기도 합니다. )

 

대부분의 미술관에서 '특별 기획전'의 경우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지요. 그래서 전시장의 사진을 찍을수는 없었고요.  필립스가 자체소장하는 영구소장 작품들은 사진 촬영이 가능합니다. (그것들은 찍었습니다.) 오늘은 그냥 간단한 스케치만 전하고요, 조지아 오키프 관련 페이지를 따로 열었을때, 제가 '수집'한 작품 사진들을 풀어놓기로 하겠습니다.

 

 

필립스 콜렉션 영구 소장품, 뉴멕시코의 풍경화가 걸려있는것이 보이지요.

이 통로에서 (뒤로 돌아서면)  특별전시장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 전시장부터는 사진을 못 찍지요.

 

 

전시장 입구에 관람객이 간단한 평을 남길수 있도록 공책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영어군요. 호호호.)

 

제가 얘기 했쟎아요.  오키프의 누드사진이 흥미로웠다고요. 저 안쪽에 보이지요...

 

 

제가...좀..이상한데서 집요해요 헤헤헤

통로 입구에서 안쪽이 보이는데요. 전시장 안에서 사진 찍는것은 금지 되어 있지만

전시장 바깥에서 뭐 사진 찍는것을 뭐라고 말할수는 없쟎아요. 

제 카메라 렌즈가 그래도 제법 쓸만한거거든요.

입구 통로에서 그냥 줌업을 해가지고 찍었죠 뭐.

왼쪽은, 오키프가 벌서듯이 팔을 올리고 있는데 겨드랑이 치모가 꽤 섹시하게 찍혔습니다.

오른쪽은 엉덩이 사진인데, 치모까지 드러나는 꽤 아름다운 사진입니다.

직접 사진을 보면 참 '예술'적으로 보입니다. 누구더라 그 '김기덕' 감독의 '섬' 마지막 장면같은.

한마디로, 오키프는 인물도 예술 인생도 예술이었다 이거죠 뭐. (부럽다  ^^).

 

 

 

 

저 리어왕같은 신사분과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아니에요~  헤헤

 

 

 

2010년 2월 19일 금요일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 나들이

 

나흘 내내 골치 아프게 일했으므로, 오늘은 오전에 바람을 좀 마시러 나갔다. 필립스 콜렉션에서 조지아 오키프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서 그것도 볼겸. 워싱턴에 눈쌓인것 구경도 할겸. 휙~ 나갔다 왔다. 

 

작은 녀석이 카메라를 빌려다 썼는데 뭔가 손을 댄 모양이다. 작품 사진 찍은것 상태가 엉망이라, 쓸것이 없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 유명한 Sunday 가 있었는데 사진 상태가 모두 쓸모없게 되어 버렸다. 카메라를 잘 손봐서 다시 가봐야지. 아무튼 내가 사용하는 것을 남이 건드리면 뭔가 말썽이 생긴다.

 

워싱턴 매사추세츠 애비뉴, 외교거리에 들어서면 한국 대사관이 있고, 거기서 한블럭 더 가면 한국 홍보관 (벽돌건물)이 있다.

 

 

 

또 한블럭 더 가면 총영사관이 있다.  서재필 박사 동상이 있는 건물이 총영사관.

그러니까 이 거리에 한국 관공서 건물에 세동이 있다. 회색의 우중충한 대사관 건물은 그냥 통과했고, 차는 홍보관  쪽에 세웠고, 서재필박사가 서 계시는 총영사관을 지나 조금 걸어가면 필립스 콜렉션이 있다.

 

 

 

 

 

 

서재필 박사 동상.

 

 

 

필립스 콜렉션 입구

 

 

오키프 특별전은, 좋았다.  작품들은 평소에 공부도 하고 구경도 많이 했던 편이고,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알프레드 스티글리츠가 찍은 조지아 오키프의 누드사진들.  예술적으로 찍었더라.  원래 인물이 근사하니까...  사람들이 '나도 오키프같이 찍어달라'고 주문을 했다고도 하던데. 아무나 그렇게 찍을수는 없지...  대상이 오키프니까 가능했던 것이지.

 

 

 

에드워드 호퍼: Sunday

 

지난 가을에 갔었고, 올해 들어 처음 가보니 전시물들이 많이 바뀌어 있었다.  내가 겨울동안 공부한 사실주의 작가들도 주요작품들이 나와 있던데, 사진 상태가 모두 엉망이라, 조만간 다시 가봐야겠다. (보고 싶던 작품들을 흡족하게 볼 수 있었다.)

 

 

 

 

필립스 콜렉션에는 평일에는 무료입장이고, 주말에만 입장료를 받는다. 특별전을 하면 12달러를 따로 받는다.  그러니까 특별전을 안보면 무료 입장도 된다.  오키프 특별전 입장료를 내니까 뜨거운 코코아를 무료로 준다고 하길래, 구경 마치고 카페에서 코코아 한잔을 받아 먹었다.  카페 너머로는 기념품 가게가 보인다.

 

 

휙 갔다오는데 딱 세시간 걸렸다.  번개같이 다녀왔다고 할수 있다...   그래도 잠시라도 나갔다 오니까 머리가 가뿐하다. 이제 공부해야지.

 

 

 

감독과 주연배우, 그리고 리더십

 

 

어제는 큰애의 생일이었다.  저녁에 동네 프렌치 레스토랑에 가서 생일기념 '외식'을 했다.  카페 Tatti는 할아버지들이 시중을 들어주는 '동네 밥집'인데, 이 꺽다리의 생일이라서 기념하러 왔다고 말해줬더니 할아버지들이 (아니 .... 백발의 신사들께서) 일하다 말고 와서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할아버지들이(아니 은발의 신사들이) 노래를 불러주었으니 큰애는 은발이 될때까지 건강하게 잘 살것이라고 상상을 해본다.

 

큰애는 어쩌면 나를 닮은것일지도 모른다.  큰애와 성품과 '리더십'의 문제에 대해서 그의 고민을 들어주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큰애는 몇가지 써클에서 회장을 하거나 부회장을 하거나 혹은 평회원으로 활동을 하기도 한다. 큰애는 뭐든 성실하게 하는 편이다. 그런데 스스로가 하는 고민의 양상을 종합해보면, 그는 주도적인 리더는 아닌듯하다.  그는 주로 주어지는 일을 충실하게 잘 해내는 편이지만, 스스로 일을 벌이거나 이를 주도하는 것은 아닌것 같다.

 

사람의 스타일을 단순무식하게 두가지로 나누면

(갑) 대책없이 일 벌이고 돌아다니는 무대뽀

(을) 꼼꼼하고 충실하게 일을 잘 마무리하는 성실파

 

이럴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기에 갑과 을이 손을 잡으면 이들은 환상의 콤비가 된다. 하나는 일 벌이고 하나는 수습하고.  조화만 잘 된다면 좋을것이다.

 

갑과갑이 만나면 실속이 없고 난파선이 될것이다.

 

을과 을이 만나면 진전이 없고 제자리걸음을 하되 난파선은 되지 않을것이다.

 

내가 볼때, '조합'의 문제다. 갑과 같은 리더도 있을수 있고, 을과 같은 리더가 있을수도 있고, 리더의 스타일에 따라서, 그리고 조직의 스타일에 따라서 일의 성패는 달라질것이다마는 갑이 혹은 을이 더 나은 리더라고 섣불리 판단하기는 힘들다. 주변과의 역동성이 늘 존재하므로.

 

                ***

 

 

나는 여태 살아온 인생에서 '리더'가 된 경험이 별로 없다.  나는 그 초중고등학교때 반장을 한번도 해본적도 없다.  언젠가 우연히 부반장을 해본적은 있지만, 그것도 선생님이 그냥 그렇게 정한것이었지 내가 하겠다고 나섰던것도 아니었다.  대학교때 주간교수가 '네가 해야만 한다'고 우겨서 신문사 편집장을 일년 했고, 4학년때 (4학년때는 아무도 뭘 하고 싶어하지 않으므로 이리저리 밀리다가) 과대표를 억지로 시켜서 울며겨자먹기로 해본적이 있다. 그러니까 내가 무슨 '장'이 된 이력은 선생님이나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수없이 책임을 받은것에 불과했다. 그것의 책임을 완수하는것 외에 내가 뭐 특별한 짓을 한것도 아니었다. 나는 리더가 되는 일에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왜 나는 리더가 되는 일이 흥미가 없었을까?  내가 돌아보면, 나는 '외로운 늑대'과라서 그렇다. 나는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이없고, 내가 흥미로운 일에 몰두하기를 좋아한다. 책임을 맡으면 마지못해서 성실하게 수행해내지만, 조직의 일에 헌신할 생각이 별로 없다. 난 내 인생이 즐거운 사람이므로.

 

              ***

 

 

내가 내 이력을 돌아볼때마다 입가에 자동적으로 미소가 흐르는 대목이 몇가지 있는데 소설로 상을 하나 탔다는 기억,  그리고 영문학과에서 2년에 한번 막을 올리던 영어연극에서 주연배우를 했다는 기억일것이다.  영어 연극을 한다길래 뭐라도 하고 싶어서 오디션에 갔었는데, 쟁쟁한 선배들 잘난 동기생들도 많이 왔건만 (그래서 이거 엑스트라 자리 하나 얻기도 힘들겠다고 쫄아있었는데) 내게 주연배우역할이 주어졌다.  그때 나는 내 몸이 하늘로 붕 뜨는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가만, 그게 오르가즘이었나? 갸우뚱.)  나는 대사를 열심히 외웠고,  주인공을 성실하게 분석했고, 연기지도를 성실하게 받고, 연습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석달후에 나는 완벽한 '정신병자 술주정뱅이 남자'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  하하.  어쩌면 그때 그 정신병자 술주정꾼 남자가 내 영혼에 깃들었을지도 몰라.  환상의 토끼와 즐거운 인생을 보내는 사나이.  나는 성실한 (게다가 인물도 좋은) 주연배우였을 것이다.

 

     ***

 

막 석사 프로그램을 시작한 이곳에 내가 처음 발을 디뎠을때, 첫학기에 내 수업을 듣기 시작한 1기 학생들은 여덟명이었다. 나는 나 혼자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나혼자서 그 학기 전 과정을 다 가르쳐야 했다. (학기 중간에 꽤나 명문대 출신 미국인 강사가 강의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의 요구를 하여, 그들의 의견이 합당하길래 그만두게 하고 내가 나머지 땜빵까지 해야 했으니까.)  이번 봄학기는 정규과정 네번째 학기. 이번 학기에 내 석사프로그램 학생수가, 30명이 넘는다.  전공 개설과목 여섯가지. (내가 다니던 주립대에서도 한학기에 전공 개설과목이 여섯가지가 된 적이 없었다.)  나는 각 분야의 전문 강사들을 영입해오느라 분주했다.  내가 스카웃해온 교수들은 모두 나보다 나이도 많고, 이력도 화려하고, 선배라고 불러야 할 분들이다. 여섯과목중에서 세 사람들이 한과목씩 맡아서 수업하고, 내가 세과목을 가르친다.  (그래도 여전히 내 수업에 학생들이 몰린다. 신기한 일이다. 지겨울법도 한데. 기말의 학생들이 하는 내 강의평가는 체계가 서있다는 쪽이다. )  내 코리안 액센트 때문에 나도 신경을 쓰곤 했는데, 이제 나는 내 영어 (코리안 액센트가 섞인 영어)에 아무런 장애를 느끼지 않는다.

 

 

강사 두사람으로 시작한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이제 네명의 강사가 투입되었고 그중 절반은 박사급이다. 나는 이번학기부터 이 프로그램의 수업에서 빠져나왔다. (연구 할동 할 시간을 좀 벌은 셈이다).

 

 

첫학기에, 이 학교에 들어섰을때 내 석사과정과 영어연수 프로그램에 나 혼자 서 있었다. 허허 벌판에 혼자 깃발 꽂은 형상이었다. 지금 나는 세명의 학자들의 조력을 받고 있고, 그리고 네명의 영어강사들의 오야붕(?)이  되어 이들을 지휘하고 있다. 그리고 학사 석사 박사급 학생들에 둘러싸여 있다.

 

 

 

내가 수학했던 플로리다 주립대의 풋볼팀의 상징은 세미놀 인디언이다. 해마다 풋볼시즌이 되면 우리들은 세미놀 인디언이 그려진 셔츠를 입고 돌아다니며 열광했다. 우리학교의 오프닝 세리모니는 미 전역에서 최고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아주 특별한 것이다. 세미놀 인디언 추장이 점박이 말을 타고 경기장에 나타나서 알록달록 화려한 깃털로 장식한 창을 힘차게 경기장에 꽂는 것이 이 세리모니의 하일라이트이다. 이땅은 내땅이다 이거지. 내가 깃발 꽂았다 이거지. 그러면 우리들은 오오 오 오 인디언 합창을 하면서 열광했다. (심지어 상대팀조차도 이 세리모니에 넋이 나가곤 했다. 아, 얼마나 근사한가!)

 

어느날 나는 워싱턴 바닥에 나타나 허허벌판에 세미놀 깃발을 하나 꽂았고 나는 내 영역을 키워나가고 있다. 이렇게 적고보니 꽤나 드라마틱 하고 뭐  그렇군. 난 내 이야기를 과장하는 못된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나가는, 내가 관리하는 두가지 프로그램을 보면서, 플래닝을 하거나 학생이나 교수들의 상담을 들어주다보면 나는 가끔 내 혼이 빠져나가는 듯한 심한 피로를 느낀다. 내가 수용하기 힘들 정도로 커버린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어쩌다 이런 자리에까지 온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평가하기에 나는 (갑)형의 리더는 아니다. 난 내 관심 분야에 몰입할뿐, 일을 벌리고 돌아다니는 사람은 아니다. 나는 (을)에 가깝다.  그런데 내가 갑이건 을이건간에 내 일에 몰두하다보면 내가 '갑'의 처지가 되어버리고 만다. 난 리더가 되고 싶었던게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진두지휘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러니 사람의 일은 알수가 없는거다.

 

      ***

 

나는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촉매'의 운명을 안고 태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촉매. 화학 작용이 원활하게 일어나도록 보조하는 물질. 아...반응과정에서 나 자신은 소모되지 않는것이 촉매의 속성이구나.  나는 닳아없어지는것이 아니구나. 다행이다. 카탈리스트. 촉매. 내가 존재하는 것으로 주변이 활성화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을 받을만하다.  아, 내가 선생질로 뛰어든것은 좋은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선생들은 촉매역할을 하는 존재들이니까.

 

http://ko.wikipedia.org/wiki/%EC%B4%89%EB%A7%A4

촉매(觸媒) 촉매(catalyst)란 반응과정에서 소모되지 않으면서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물질을 말한다. 반응이 일어나는 데 필요한 활성화 에너지를 변화시켜 반응속도를 변화시키는 것이 촉매의 역할이다. 활성화 에너지를 낮추어서 반응속도를 높여주는 촉매를 정촉매, 활성화 에너지를 높여 반응속도를 낮추는 촉매를 부촉매라고 한다.

 

 

수업할때, 강의를 하는 날은, 나는 옷차림도 신경을 쓰고 여러가지로 신경을 쓰는 편이다. 나는 수업 하는 일이 연극무대에서 연극을 하는것과 비슷하다는 느낌이다.  내가 강단에 설때, 나는 선생이다. 선생의 역을 하는거다. 집에 앉아있을때, 나는 한없이 게으른 아무개 갑 혹은 을이다. 그러니 무대가 아닌가. 배우는, 가수는, 혹은 무대인생은 관객 서비스 차원에서 여러가지 신경을 써야하는거지. 무대인생.  무대의상이 화려한 이유는, 그들이 그 화려한 의상을 선호해서 그런것만은 아니다. 보는 사람 눈이 즐거우라고 그러는거다. 말하자면 무대서비스다.

 

  ***

 

인생이 연극이라면, 삶의 각 장면이 무대와 같은거라면, 나는 그 연극의 감독보다는 '배우'쪽인것 같다. 나는 무대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것이 신난다. 나머지는 감독에게 맡기는거다. 단 무대는 내것이다. 어떤이는 무대위의 배우보다는 감독이 되고 싶어한다.  종합적으로 신경쓰고 기획하고 이끌어나가는 존재. 감독.  나는 그런거 말고 그냥 무대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게 더 재밌다.

 

내 삶은 이따금, 내게 '이제 감독도 하고 배우도 하고 원맨쇼 할 시간이 온것 같구나'하고 일러주기도 한다. 나는 리더가 될 생각이 없지만, 리더의 역할을 해야 할 시기도 있는것이다.  잘 해내면 되는 것이지. 사실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을 저 높은 하늘에서 보면, 그냥 엑스트라 갑, 을, 병에 불과하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미미한 존재이다. 내가 오늘 죽는다고 이 세상에 달라질것은 별로 없다. 나는 먼지이고, 공깃방울이고 엑스트라이다.  그런데 하나의 비누거품 공깃방울에도 우주 삼라만상이 반사된다.  찰나지만 나는 감독이고 주연배우이기도 한거다. 만사는 찰나에 흘러가버린다.

 

 

   ***

 

 

 

 

 

라파엘로의 School of Athens 그림의 일부. 오른쪽의 대머리 사나이.  누런 옷을 입고 서서 두 손을 내밀고 '수다'를 떨고 있는 못생긴 아저씨가 쏘크라테스님이다.  내가 알고 있는 서양 철학자중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저씨이다. 소크라테스. 거리의 백수 수다쟁이 아저씨.  사실 나의 꿈은 햇살 내리쪼이는 황톳길 어디쯤에서 이렇게 한가롭게 햇볕이나 쪼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하고 한가롭게 이야기나 하는거다. 

 

어제, 사회언어학 수업 개강을 했는데 그때 잠시 소크라테스 이야기를 했었다.  소크라테스는 끊임없이 질문을 퍼부어댔고,  그리고 그의 대화상대는 스스로 어떤 결론에 도달하곤 했다. 대개는 짜증나는 결론. 처음 생각을 뒤집어버리는 결론. 자기 자신의 모순을 자각하는 경험. 그걸 스스로 하도록 유도하는 저 짜증나는 대머리 녀석!  사회언어학은 내가 석사과정 중에서도  최고과정 (다른 모든 과정을 이수한 학생들이 마지막에 들을수 있는 과정)으로 설정한 것이고 그만큼의 고민과 사색을 요구하는 실러버스를 짜 놓았다.  고민하고, 사색하고, 자신의 무지를 깨닫고, 모순을 발견하고, 자각하고, 그런 과정이 우리 삶에 필요하다.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다보면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지곤 했지만,  그럼에도 이들은 소크라테스를 사랑했다. 그리고는 죽여버린거지 하하하.  등에.  나를 괴롭히는 등에를 내 학생들에게 보내는거다. 내 학생들도 나처럼 괴로워봐야 하는거지.

 

힘들었던 봄학기 오프닝 행사가 모두  끝났다. 오늘은 금요일. 파란하늘. 연극이 끝나면 조명이 꺼지고, 우리들은 뿔뿔이 흩어진다.

 

 

2010년 2월 17일 수요일

Chuck Close & Sol Lewitt at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08년 12월 4일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촬영

 

 

 

새 학기들어서, 심기일전하여, 연구 작업에 충실해보려고

전에 사용하던 노트북을 꺼내서 데이타 파일들을 정비하던중 우연히 발견한 사진.

 

2008년 12월 4일.  나는 내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갔었는데요.  내 친구는 빽도 좋아서 거기를 무료 입장을 시켜주었지요. 차도 공짜, 입장료도 공짜. (만고의 김삿갓 놀음이었어요 랄라~  )

 

퀴즈:

 

(1) 저~만치 있는 왕따시 커다란 사진같은 초상화 (힌트, 사진같은 초상화)의 작가는 누구일까요?

(2) 이 가까이에 보이는 하얀 골재 네모탑, 이거는 누가 디자인을 했을까요?

 

제 최근 페이지들을 보셨다면 짐작이 가실겁니다.  (아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씀, 그것은 진리~  )

 

(개강하는 첫주라서 정신이 없네요. 수업준비도 해야하고, 컨벤션 발표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

 

 

 

 

 

 

 

2010년 2월 16일 화요일

바쁜 하루

지난 주 내내 눈(snow)때문에 나는 집에 갖혀 있었고, 그래서 개학전의 몇가지 미팅이 모두 취소되었다. 대학원 강의할 교수들과의 미팅도 취소되었고,  ESL 프로그램 강사 미팅도 취소되었고.  이메일로만 필수적인 사항들을 논의하다가, 오늘 개강.

 

오늘 대학원 개강하면서 내 수업이 아침에 있었는데

동일한 시각에 ESL 프로그램도 개강.  그것도 내가 관리해야 하는 것이라서, 신임 강사에게 첫날 오리엔테이션에 필요한 사항들을 준비해주고 나는 나대로 내 수업을 진행해야 했다.  내 수업 이후에는 그레고리팩이 첫 수업하는 날이라서, 그레고리팩이 차질없이 수업할수 있게 살펴야했고, ESL 오리엔테이션이 잘 되어가는지 감독도 해야 했고. 그래서 첫날 일정이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어갈 무렵, 나는 일에 지쳐가지고 어제까지 내가 앓고 있었다는 것 까지도 잊어버릴 지경이었다.  너무 바쁘니까 아픈것도 잊어버리더라.

 

큰애의 생일이 내일 모레라서, 퇴근후에 아이를 데리고 쇼핑몰에 가서 생일 선물을 미리 골라서 샀다.  얌전한 면바지 (정장 대용으로 입을만한것)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줄무늬 면 셔츠.  말끔하게 보일수 있게.  우리집 아이들은 너무 멋을 안부려서 (하긴, 우리식구중에 멋부리는 사람이 없다...) 어느때는 애들한테 잔소리를 하기도 한다, "멋도 부리고 좀 그러면서 살아라, 생날라리급은 아니어도 남보기에 준수해보일 정도로 갖춰입는게 좋다."  멋도 부릴줄 알아야 하는거지.  

 

설날 차례를 정성껏 지냈는데, 피로해서 얹혔는지 뭐 다 토하고 울렁거려서 이틀간 두통약과 냉수만 먹고 앓다가 오늘 출근했던 것인데, 울렁증은 가라앉았다.  피곤한건 참겠는데 머리아프고 속 울렁거리면 참기가 힘들다. 아, 이틀전에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머리를 붙잡고 쩔쩔맸었다.  머리가 아프고 울렁거리고. (아마 스트레스 때문이었을거다).

 

 

 

최근에 어떤 문제로, 좀, 돌쇠짓을 했다. 나는 원칙대로 사는 편이고, 내 원칙에 벗어난다고 판단되는 상황에서는 그냥 차분하게 다 집어 던지는 경우도 있다.  위 아래 눈치 안보고, 내 원칙을 선언하는것으로 선을 확실히 긋는 편이다.  멜 깁슨이 감독했던 Passion of Christ 라는 영화에서 보면 예수님이 돌멩이 하나를 집어가지고 흙바닥에 금을 긋는 장면이 나온다. 금을 긋고 뭐 그 유명한 대사를 했을것이다, 너희중에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던가?  아무튼 금을 휙 긋는 장면이 나왔었다. 이 금을 넘을 자신이 있으면 넘어보라 이거지.  아무도 그 금을 못 넘었다.  아 그 영화 장면에 견주려는 것은 아니다 (어딜 감히...).   아무튼 나도 내 식대로 금을 그어놓고, 이 금을 넘고 싶으면 어디 넘어봐라~  했던 것 같다.  일단 그렇게 선언을 해버리자, 상황은 굉장히 단순하게 정리가 되었다.  나는 오히려 여유로워졌다.

 

 

옛날에, 내가 아주 어릴때,  아버지가 중책을 맡고 계실때인데, 두번인가, 아버지가 사표를 쓰고 집에서 칩거하신적이 있었다.  우리는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사표를 쓰고 직장을 잃으면, 우리는 무얼 먹고 사나, 걱정이 되었고, 집안은 매우 침울하게 흘러갔는데, 추운 겨울이었는데 아버지는 출근도 안하시고 집에서 이불만 뒤집어 쓰고 며칠이고 꼼짝도 않으셨다.  그 사이에 사람들이 우리집을 드나들었다. 내가 아는 얼굴. 내가 모르는 얼굴.  그리고 마침내,  어느날 엄마가 어린 우리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매우 조심스럽게 주의를 주셨다.   말하자면, 최고 책임자가 직접 아버지를 만나러 나타났던 것이다.  나는 아버지가 이런식으로 사표를 내고 칩거하여 최고책임자가 느추한 우리집에 나타난 것을 두번인가 보았다.  아버지는 평생 자신의 직장을 떠나지 않았다 :)  하하.   아버지는 장군처럼 보였다.  우리가 가난한 가운데서도 어떤 자존심을 잃지 않고 프라이드를 갖고 살 수 있었던 근거로는, 가난뱅이 가장이었을 망정 아버지가 우리에게 보여준 장군의 기개.  우리에게는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기운센 천하장사 무쇠로 만든 사람이었다.  겁날게 없었다. 아버지가 있는한은.

 

돌아보면, 그 때 아버지 속이 얼마나 착잡했을지, 얼마나 막막했을지... 이제 조금 짐작이 간다. 아주 약간 짐작이 갈 뿐이지만.

 

 

내가 가끔 단호한 표정을 짓고 어금니를 앙다물때, 나는 어느새 젊은날의 우리 아버지가 된다.  나는 하루 하루 단단해져 간다.  나는 인생의 전투에서 한걸음 한걸음 승리해 나간다. 나는 침착하게 잘 해나가고 있는것으로 보인다.  나는 우리아버지처럼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 깨닫는다, 아버지가 참 외로우셨겠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우리 아버지만큼만 해 내면, 아마 패자는 되지 않을것이다. 그리고 내 꿈은, 내가 우리아버지보다 더 큰나무로 자라는것이다.

 

 

설 차 례

 

한국의 내 손아래 동서는 "형님이 정말로 미국에서 제사며 차례를 지내셨어요?" 하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지난 여름에 우리집에 와서 나 사는 것을 보면서.  내가 지내지도 않은 제사를 지냈다고 거짓말할 정도로 실없는 사람으로 보였나?  물론 거짓말을 잘 치긴 하지만, 뭐 제사가지고 거짓말 칠 정도로 그렇게 절박하지는 않았단 말이지.  차롓상이나 제삿상 차리는 것이 대수인가, 배운대로 차리면 되는 것이지.

 

 

이번에 차롓상을 차리던중 큰애가 묻는다,

"엄마 왜 우리집은 고조까지 제사를 지내나요?" 

"아버지가 종손이니까." 

"왜 종손이 제사를 다 지내나요?"

"대개는 그 집안의 큰 아들이 재산을 물려받거든.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거지." 

"아버지는 물려받은 재산이 없쟎아요."

"아버지가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큰아들이다. 아버지가 큰아들인데 부모가 가난해서 물려받을 재산이 없다는 이유로 제사를 안지내면 너무 치사하지 않니? 응?  그나저나 큰아들아. 나도 재산이 없어서 너 물려줄게 없을듯 한데, 너 나 제사 안지내줄거니? 치사하게..."

"(속을 들킨듯 미안한 표정으로) 아니, 지내드릴게요..."

 

 

차롓상을 차리면서 내가 시댁 부엌에서 작은어머니들에게서 들은 시댁의 내력을 기억해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 아이들이 묻는다: "어떻게 아버지 집안 일을 엄마가 더 많이 알아요?"  왜냐하면, 나는 기억의 저장소이고 스토리 텔러니까.

 

큰애가 발렌타인데이라고 나를 위해서 장미도 한묶음 사왔으므로, 그것도 차례상에 올리고

 

 

식당에서 차례를 지내므로 식당이 있는 뒷문밖에 쌓인 눈을 치우는 P국장.  조상님 오시는데 길을 열어드려야 한다고. (조상님이 날아오지 걸어오시는가? ㅎㅎㅎ)

 

 

 

작은애가 절하는데 엉덩이가 솟아 있어서 "야 이놈아 머슴절을 할래? 엉덩이를 종아리에 딱 붙이고 납작 엎드려라!" 호령도 하고. (우리 할머니가 엉덩이가 솟아오르면 머슴절이라고 야단을 치셨었다).

 

 

 

술은, 경주 법주인거다. (어릴때부터 보고 자란것이 경주 법주였다.)  일찌감치 돌아가신 시어머님을 위해서는 맥주도 한잔 올리고 (맥주를 좋아하셨다고).

 

향은 일심향. (나는 깡패아저씨들중에 팔에 문신으로 일심이라고 새긴 아저씨들 볼때마다 픽 웃는다. 일심. 헤헤헤).

 

 

 

 

 

새로운 영어강사

 

 

ESL센터에 역시 심혈을 기울여 새로 영입한 강사.  투철한 신앙심과 봉사정신이 결합하여, 헌신적인 교사상을 첫날부터 보여주었다.  이번학기부터 나는 ESL 수업을 유능한 강사들에게 일임하고 프로그램 관리만 하게 되었다.  수업에서 벗어나니 한결 어깨가 가볍다. (수업이 재미있긴 하지만, 강의가 끝난다음에는 늘 진이 빠진 느낌이 들곤 해서, 내가 혹사당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역시 믿을만한 인재를 모셔다  놓는것이 만사의 근본이라.  이 친구 덕분에 내 수업 부담이 줄어들었다.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