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5일 목요일

단풍잎을 보면

창밖에 노랗게 빨갛게 물든 가을 잎들.  뒷마당에 쌓여있는 낙엽들을 보면, 해마다 한번쯤은 꼭 회상을 하고 지나치게 되는 어린 시절의 기억 한가지.

 

시골에서 맘대로 살다가 학교에 다니기 위해서 서울 집에 올라와보니 단칸방에 나까지 포함하여 여섯식구가 오글거리고 사는데, 그 오글거림에 숨이 막힐 지경인데, 유일한 위안은 내가 할아버지 할머니의 슬하에서 벗어나 내 엄마 아빠의 슬하로 진입했다는 사실. 그리고, 참 이쁜 내동생을 매일 볼 수 있다는 사실. 그정도.  내 유일한 동생은 사내아이였는데, 인물이 여자인 나보다도 희고 예뻤는데다가, 집안의 막내라서 온집안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가운데, 나는 샘을 낼 줄도 모르고 그 내 이쁜 동생에 침을 흘리는 처지였다. 하도 이뻐서. 그 이쁜 내동생을 매일 보는 기쁨이라. (놈이 대학생이 될 즈음부터, 놈이 하도 키가 크고 체격이 좋으니까, 여자중에서 큰 키인 나를 무색하게 만들고, 그냥 오빠 노릇을 하러 들었는데다가 집안 친척 어른들도 그만 착각을 하고 놈이 내 오빠인양 대하곤 했다. 가령 집안 잔치때 오랫만에 만난 아제가, 아무개야 네 작은 오빠 어딨냐 할때 그 작은오빠 녀석이 내 동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하여 숨막히는 가난과, 동생을 매일 보는 기쁨과, 이럭저럭 서울살이의 장점과 단점을 골고루 반죽하면 그럭저럭 살만한 시절일수도 있었을것이다. 그러니까 죽지않고 살았던 것이겠지.  나는 다른 아이들보다 한참 어렸고, 그래서 내 1학년 시절은 고달펐고, 2학년 시절도 역시 세상 말귀를 알아듣기 힘들어 고달펐다. 2학년때였다고 기억한다. 1학년때는 글을 읽고 쓸줄만 알고 셈은 잘하고, 그림그리기도 곧잘 하지만, 나머지는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는 얼간이처럼 보냈는데, 2학년때는 일이 좀더 복잡해졌다.  선생님의 요구사항이 복잡해졌고, 나는 그저 글을 읽고 쓰고 산수 셈을 잘하고 그 외에는 도통 말을 못알아듣는 학습 지진아였다. 난 학교에 가는것도 재미가 없었다.  2학년때부터는 월말고사나 기말고사도 보고 학기말에 수우미양가가 들어가는 성적통지표와 함께 성적 우수자에게 우등상장을 나눠주던 시절이었는데, 선생님은 기가막혔을 것이다.  선생님의 말귀를 못알아듣고 딴짓만 하는 학습 지진아가 시험은 곧잘보고, 성적표는 대개 수로 채워서 우등상장도 냉큼냉큼 받아가면서도 여전히 나는 지진아처럼 굴었으니까. 아니 나는 말귀 전혀 못알아듣는 지진아였다.

 

그 지진아의 세월을 사는 나는 얼마나 답답하고 막막했을것인가. 도무지 돌아봐도 말이 통하는 사람이 없고, 숨이 막히는 지경인데.  게다가 우리집이 가난하여 미술도구도 변변한것이 없고, 뭔가 준비물을 챙기는 일도 쉽지 않았었다.  나는 늘 구석으로 숨거나 뭐 그래야 했다. 준비물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으니까.  (그러니까 행동도 불안정하고, 그러니까 선생님의 시선에서 자꾸 도망치게되고, 그러니까 더욱더 말귀를 알아듣기 힘들어지고, 이래저래 신세가 딱할수밖에...)

 

 

2학년 이맘때, 이렇게 깊은 가을이었다.  선생님이 나뭇잎 공작을 할거라고 내일은 나뭇잎을 모아가지고 오라고 숙제를 내 주셨다.  미술책에 알록달록한 나뭇잎을 이리저리 붙여서 작업하는 것이 나와 있었다. 그것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 과제가 매우 막막했다. 나뭇잎을 어디서 구할지 알수가 없었던 것이다.  너 정말 지진아구나 나뭇잎이 어디에 있는줄도 모르니?  하고 묻고 싶어지실 것이다. 믿겨지지 않겠지만, 그 당시 나는 서울의 어느 변두리 빈민가의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미아 삼거리에서 가장 가까운, 바로 미아삼거리에 있었던 '숭인 국민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학교 마당에 있던 몇그루의 나무는 향나무라는 따끔거리는 가시의 상록수였고, 학교 한구석에 수양버드나무가 딱 한그루 있었는데, 그 깊은 가을에 그 나무에는 잎사귀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았었다.  일단, 학교의 어디에서도 나뭇잎을 구할수가 없었다.  나는 내 짝꿍에게 물었다. "야, 내가 살던 시골집에서는 나뭇잎을 긁어다 불을 때고 살았어. 어디에나 나뭇잎은 넘쳐났어. 그런데 여기서는 한개도 찾아볼수가 없어. 어디가야 나뭇잎을 구하니?"  내 친구는 자기네집이 저 언덕위에 있는데 거기 혹시 나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며 손가락으로 저 먼데를 가리켰다. 내 친구가 가리킨 곳은 돌산 아래 빽빽하게 세워진 집들, 산동네였다.  나는 내 친구와 함께 한길을 건너 여태 한번도 가본적도 없는 낯선 산동네 골목길을 올라가서 그 돌산 꼭대기까지 갔다.  하지만 돌산 꼭대기까지 가도 활엽수가 한그루도 없었다. 오로지 바위가 있고, 그리고 쓰레기와 마른 풀잎이 바람속에 엎드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우리집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가 세들어살고 있는 집의 손바닥만한 앞마당에도 나무한그루 없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동네 다른집도 마찬가지였다. 나무가 심어져있는 집이 없었다.

 

내 친구는 나를 학교앞 한길까지 바래다주며 한숨을 지었다. 그 아이와 나에게는 내일 미술시간에 써야할 나뭇잎이 없었던 것이다.  나뭇잎을 구하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걸까? 나는 춥고 막막했고, 학교에 가기가 싫었다. 내가 살던 서울 변두리 미아리의 빈민가는 그 당시 '사막'이었다.  나는 사막에서 나뭇잎을 찾고 있는 딱한, 변두리 말귀 못알아듣는 지진아였다.

 

그 지잔아가 조금 클 무렵,  저녁마다 언니와 라디오 방송을 듣는 재미를 맛볼무렵에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를 들으며 나는 '이노래는 내 노래인것 같아' 하고 생각하곤 했었다.  산울림의 "나의 마음은 황무지, 차가운 바람이 불고, 풀한포기 나지 않는 외로운 황무지였어요!"  풀한포기 발견하기 힘들었던 사막의 삶은 내게 무척 견디기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미술시간에 사용할 나뭇잎 한장도 구하기 힘들었던 어떤 사막에서 몇년간 성장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 가을에 이리저리 물들어 돌아다니는 흔해빠진 낙엽들을 볼때마다 꼭 한번씩은 그때의 일화를 떠올린다. 아마 내년에도, 그 이듬해에도, 내가 죽는 날까지, 해마다 낙엽이 눈에 띌때 한번쯤 나는 그때의 사막의 기억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Film] 88 Minutes

http://www.imdb.com/title/tt0411061/

 

88 Minutes (2007)

 

일단 알파치노가 주연한 영화이니까, 뭐 알파치노 아저씨 보는 맛에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그리고 모방 범죄 영화의 그 잔혹한 장면도 호기심을 불러 일으킬만하고요.  (무섭지만 흥미진진한).  88분안에 모든것이 종결되니까 뭐 속도감 있고. 이래저래 깊은 생각 할 것 없이 그냥 막 진도 팍팍 나가는 오락영화 정도로 파악하고 보면 나름 만족스러운.

 

그저 해골 복잡할땐 이렇게 그냥 팍팍 나가주는~  영화도 나름 좋습니다. (결국 내가 해골이 복잡한 상태라는 것인가...)  음, 많이 안정을 찾아가고 있긴 합니다.  인생, 굴러가는거지 별수 있나 싶고...

 

 

[Film] Lord of War

http://www.imdb.com/title/tt0399295/


lord-of-war-poster-2.jpg

이미지출처 : thecia.com.au


Lord of War. 2005년 출시된 작품인데 디비디로 보았습니다. 화면이 참 쌈박하다 했는데, 확인해보니 Gattaca 만든 감독의 작품이었습니다. 메시지도 분명하고, 니콜라스 케이지의 연기도 적절했고,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지옥에나 가버리라고 말하려다가 그만 둔다. 넌 이미 지옥에 있으니까" 명언이었습니다. City of Angel 에서 '천사'로 분했던 니콜라스 케이지가 이 영화에서는 살아있는 '악마'역을 참 잘 했군요. 역시 케이지입니다.

 

 

 

 

[Film] Coco before Chanel

http://www.imdb.com/title/tt1035736/

 


Coco Before Chanel.jpg

이미지출처 : www.wikio.co.uk


어제, 피곤해서, 출근길에 그냥 극장에 가서 조조할인 영화 '아무거나' 본다고 봤던 영화인데, 보고 난 기분은 '쓰레기중의 쓰레기를 봤다'는 아주 불쾌한... (이렇게 심하게 말할것 까지는 없는데...)

 

왜 불쾌했냐하면, 제가 코코 샤넬이 누구인지, 샤넬이 왜 명품인지 전혀 모르기 때문에, 샤넬이라는 명품 브랜드를 만들어낸 사람의 일대기라면 뭔가 배울것이 있을것 같아서 그래서 봤던 것인데, 그 저의 일말의 기대를 와르르 우장창 무너뜨린 영화라서.

 

샤넬...이 유명하긴 한가 봅니다. 저한테도 코코샤넬이라는 향수가 있고, 그 유명하다는 샤넬 넘버 5 그것도 약 20년간 저를 따라다니는 향수도 한병 있습니다. 왜 20년간 따라다니냐하면 그것이 꽤 비싸다고 알려진 것인데, 우연히 제 수중에 들어왔는데, 제가 그 '냄새'가 싫어서 쓰지도 못하고, 비싸다니까 버리지도 못하고, 그래도 폼나는 물건이라고 하니까 그냥 아무데나 두고 '나도 그거 있다'고 자랑이나 하는... 헤헤헤.

 

아무튼 그래서 그 '샤넬'이 대단한 사람인것 같아서 영화를 보니깐, 아 뭐 대단한 분인것은 맞습니다. 고아에서 세계적인 패션 대가로 자라나서 '여성들의 복장'에 해방을 가져다 준 분이니까. 대단한 분인것은 맞는데, 그 대단하게 성장한 과정이 어쩐지 불쾌하더란 것이지요.  그 사람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을겁니다. 고아가, 아무것도 없는 사회의 밑바닥 처녀가 생존 할 수 있는 방법은? 바느질을 하거나 몸을 팔거나 돈많은 놈들의 비위나 맞춰주며 적당히 현지처 처럼 살아주거나 뭐...  뭐, 그걸 비난할 생각도 없는데, 그런 구조, 돈없는 밑바닥 시궁창의 쥐같은 인생이 성공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과정, 그 지저분한 과정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기분마저 쓰레기같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짜증나는 영화였습니다.

 

영화보고 나서 기분이 아주 지저분해졌는데, 그래도 미진한 것이 있어서 대략 웹으로 코코 샤넬이라는 사람의 일생을 검색을 해보니, 2차대전때 프랑스가 나찌군에 함락되었을때 나찌에 부역을 한 경력도 있고, 뭐, 자신의 나이도 열살가까이 낮춰서 속인다거나, 거짓말로 자신의 신분을 멋대로 포장한다거나, 온갖, 사람이 생존하기 위해서 저지를만한 소소한 짓거리들은 다 한 사람이더라구요. 그래서 기분이 더욱 엉망이 되면서, 아하 이것이 샤넬의 본질인 것이지... 했습니다.

 

얼마전에 검찰총장 내정자가 미역국을 먹고 미끌어진 적이 있었는데, 뭐 그를 결정적으로 미끄러지게 한 여러가지 대목중에는, 그 내정자의 부인이 면세점에서 수천달러짜리 샤넬 핸드백을 샀다는데, 사실은 부인이 돈을 낸 것이 아니고 아무개가 내줬다더라. 스폰서 받았다더라 뭐 대략 이런 이야기들.  나 그 샤넬가방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요. 내가 샤넬여사라고 부르는, 명품으로 온집안을 도배를 하는 어느 귀부인의 소장품중에도 그 가방이 있으니깐.  샤넬및 온갖 명품으로 도배를 한 그 귀부인의 삶을 지배하는 우울감... 그런 여러가지 정황과 샤넬 여사의 지저분하고 찬란한 삶을 함께 오버랩시켰을때 문득  떠오르는 한가지 생각, "아하 이것이 샤넬의 본질인 것이지."

 

시궁창의 쥐가 스타가 되기 위해서는

(1) '스폰서'가 필요하다.

(2) 몸을 팔던가 명예를 팔아야 한다.

(3) 몸이 뛰어나거나 머리가 뛰어나야 한다.

그렇게 스타가 된 후에도 시궁쥐는 시궁쥐의 기억에서 벗어날수 없다.

그렇게 스타가 된 후에도 사람들은 시궁쥐를 기억한다.

샤넬은 시궁쥐이고 스타이며 우울이고 벗어날수 없는 시궁쥐의 기억이니, 오늘도 시궁쥐는 자신이 시궁쥐임을 잊기위해, 시궁쥐의 흔적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시궁쥐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샤넬을 사들인다.  그래서 나는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지독한 냄새의 샤넬 넘버 파이브 병을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자랑을 하기 위해 보관하며 내 시궁쥐의 나날에 입을 다신다.  냠냠.

 

나는 시궁쥐. 스타도 못된 병신같은 시궁쥐. 주위에 있는 시궁쥐를 우습게 아는 우스운 시궁쥐.

 

 

 

디트로이트 벽화, 디에고 리베라 Detroit Industry Murals (1)

http://americanart.textcube.com/94  디트로이트 미술관 페이지에 소개한 바 대로, 디트로이트 미술관에 가면 건물 중심의 작은 광장 (Garden Court, 우리나라 식으로 따지면 안마당에 해당되는 공간)에 멕시코 출신의 사회주의 미술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 1886-1957)가 1932년 4월부터 1933년 3월까지 만 11개월간 작업하여 완성시킨 벽화가 있습니다.  오늘은 이 벽화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누구인가?

 

2002년에 국내에도 소개된 Frida (프리다)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습니다.  멕시코 여성화가 Frida Kahlo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영화로 옮긴 것입니다.  제가 디에고 리베라를 알게 된 것은 이 영화를 통해서였습니다. 프리다의 '남편'으로서 그 사람을 처음 인지 한 것이지요. 이 영화에 보면 프리다 부부가 러시아의 트로츠키를 멕시코에서 숨겨준다거나 프리다와 트로츠키가 사랑을 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한 여성 화가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속에 당시의 멕시코 사회상이나 러시아 사회주의의 갈등, 미국의 호화판 자본가들이 세계가 화려하게 그려지는 덕분에 볼거리도 풍성하고 아름다웠지요.  이 영화속에서는 프리다가 이미 멕시코에서, 그리고 서방세계에서 대가로 자리잡은 리베라 디에고와 만나서 결혼하고 고통받는 과정을 절절하게 묘사가 됩니다.  자유분방했던 디에고 리베라가 심지어 프리다의 친자매와도 정사장면을 연출하는데, 보기가 딱하죠.

 

 

1886년생인 리베라는 야간 미술학교를 시작으로 정규 미술학교 활동에 이르기까지 차근 차근 미술 과정을 이수해 나가다가 1907년에는 유럽으로 떠나게 됩니다.  파리에서 당대의 거장들인 세잔느, 고갱, 르누아르, 마티스의 스타일들을 배워나간후에 이탈리아로 가게 되는데, 이탈리아에서 그는 자신만의 그림세계를 찾게 됩니다.  이탈리아의 시스틴 성당등 대형 건물의 프레스코화에서 그는 자신이 추구할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1921년에 그가 멕시코로 돌아왔을때 그는 공공시설이나 기념비를 위한 예술작업에 몰두하게 됩니다.

 

그는 멕시코 혁명 직후에 멕시코 공산당에 가입하고, 1927년에는 멕시코 공산당 간부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하기도 합니다. 1922년부터 1930년까지 그는 멕시코의 공공건물에 혁명기념 벽화작업을 하였는데 멕시코 전통 예술과 멕시코의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주제의 작품들이었다고 합니다. 제가 필라델피아 미술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발견한 그의 그림들도 대개는 멕시코 역사속의 영웅들이나 민중의 삶을 묘사한 작품들이었습니다.

 

멕시코는 1920년대에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멕시코의 미술가나 작품도 미국에 활발하게 소개가 되기도 했는데, 그 과정속에서 디에고 리베라가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관장인 Valentiner (발렌티너)와 연결되게 됩니다. 발렌티너는 대형 벽화를 많이 제작한 리베라에게 디트로이트 미술관 코트야드 (안마당)의 벽화를 주문하고, 포드자동차의 설립자인 헨리 포드의 아들 Edsel Ford 역시 이 예술작업에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합니다.  그리하여 1932년부터 1933년까지 만 11개월 사이에 리베라의 벽화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 후에 그는  뉴욕의 록펠러 재단의 초대를 받고 맨하탄의 RCA 빌딩 벽화 작업에 들어갑니다. 일설에 의하면 록펠러 재단은 피카소에게 벽화를 의뢰하려 했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피카소를 섭외하는데 실패했던 것 같습니다. 디트로이트 벽화 작업을 할 때에도 지역의 종교인, 비평가들 사이에서 그의 작품이 선정적이라거나 신성모독이라거나 수상쩍다는 식의 비난을 받고,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었는데, 대개는 그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발렌티노가 이런 소동을 잠재우는 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자유분방한 맑시스트 예술가는 뉴욕에서 더욱 자유분방해졌던 것 같습니다. 감히 뉴욕의 심장부에 '레닌'동지를 찬양하는 벽화 작업을 했던 것이니, 록펠러 가문에서 '제발 그 그림은 빼달라'고 사정사정을 했건만, 콧대높았던 리베라가 레닌을 극구 지키겠노라고 고집을 피웠던 모양입니다.  뭐, 결국 돈많은 록펠러 집안은 그림값을 모두 지불한 후에 벽화를 세상에 공개도 하지 않은채, 벽화 전체를 싸그리 아작을... (ㅠ.ㅠ) 냈다는 슬픈 전설이 아직도 흐르고 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의 예술은 멕시코 뿐 만 아니라 그후의 미국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뉴딜 정책의 일환으로 펼쳤던 대중 미술 프로젝트 (http://americanart.textcube.com/category/Public%20Works%20of%20Arts%20Project ) 역시 리베라 예술의 영향으로 탄생한 것입니다. 루즈벨트 대통령 당시에 미국의 공공건물이나 기관에 많은 벽화들이 제작되었고, 잭슨 폴락이나 벤샨과 같은 작가들도 바로 이런 벽화 제작을 하면서 목에 풀칠을 한 경력이 있지요. 직접 리베라와 함께 작업을 했고요. 그가 남긴 디트로이트 미술관의 벽화는 오늘날 디트로이트의 상징적인 미술품이 되었습니다.

 

디에고 리베라는 멕시코 화가입니다. 하지만 그는 당시의 경제 대도시였던 디트로이트의 심장부에 미국의 노동자, 미국의 산업을 상징하는 대서사시와 같은 작품을 남김으로써 '미국미술'을 일궈낸 화가로 기억됩니다.

 

 

Please see http://americanart.textcube.com/150  Detroit Industry Mural (2)

 

2009년 11월 4일 수요일

Detroit Institute of Art (Detroit Museum of Art)

 

 

 

Detroit Museum of Art (=Detroit Institute of Art = DIA = 디트로이트 미술관)는 미국 미시간주의 디트로이트 (Detroit)시에 있는 미술관 입니다.  젊은이들에게는 Enimem 의 8 Mile 이라는 노래로 더욱 친근하게 여겨질만한 도시인데, 자동차로 달려 디트로이트 구역으로 들어서니 도로의 표지판에 8 Mild Road, 7 Mild Road 라는 표시가 보였습니다.  에미넴의 노래 8마일은 정말로 디트로이트에 존재하는 거리의 이름이었습니다.  디트로이트는 한때 포드 자동차를 위시한 화학, 제약 산업이 활발하게 성장하던 곳이었는데, 현재는 미국 산업의 몰락과 함께 도시 자체도 몰락의 길을 가고 있는 형편입니다. 최근에 마이클 무어가 발표한 영화 Capitalism, Love Story 라는 작품에도 미시건주의 자동차 산업의 몰락이 주민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렸는지 생생하게 보여줍니다.

 

디트로이트 미술관 (http://dia.org/) 은 1885년 설립된 이래 세계 여러나라의 명작을 비롯 현대 작품에 이르기까지 65,000 여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규모는 작겠지만, 내용면에서는 파리의 루브르나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가서 볼만한 세계 명작, 혹은 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골고루 다 갖추고 있다고 할 만합니다.)

 

제가 이 미술관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멕시코의 작가 디에고 리베라 (Diego Rivera)의 록펠러 건물 벽화사건이 하도 유명해서, 디트로이트에 가면 리베라의 벽화가 온전하게 보존된 것을 볼 수 있다길래, 그 때문이었습니다. 그 벽화가 보고 싶었거든요. 다른 작품들도 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지만, 사실 웬만한 작품들은 이미 큼직큼직한 미술관에서 작가별로 주요 작품들을 본 후라서 크게 매력적이지는 않았고,  오직 그 벽화 때문에 디트로이트로 차를 돌렸다고 할 수 있지요.

 

 

디트로이트 시내를 달려 미술관에 도착하면 로댕의 생각하는 남자가 생각에 잠긴채 우리를 반깁니다. 미국에 이 생각하는 남자가 15점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제가 직접 만나본 남자는 (1) 워싱턴 국립 미술관 (2) 메릴랜드 볼티모어 미술관 (3) 필라델피아 로댕 미술관 (4) 디트로이트 이렇게 넷입니다.  앞으로도 돌아다니며 이 남자가 잘 있는지 찾아 볼 생각압니다. 

 

 

 

 

 

 

건물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차비가 저렴한 편입니다. 온종일 5달러) 주차장 입구로 나오면 이렇게 정원이 펼쳐져 있습니다. 미시간의 가을도 펼쳐져 있군요.

 

 

 

 

 

입구에서 표를 살 수 있습니다. 성인 8달러. 다른 대도시의 미술관 입장료에 비해서 저렴한 편입니다. 별 불만없이 입장표 값을 지불했습니다.

 

 

 

 

 

시대별로, 지역별로 세계 여러나라의 명품들이 골고루 전시가 되어 있었지만, 제 블로그의 독자들께서 이미 아시는대로 제가 '미국미술'쪽에 정신을 팔고 있는지라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건성으로 보게 되는편입니다.  사진도 주로 미국미술, 현대미술 작품을 중심으로 찍게 되는군요. (물론 제가 아주 좋아하는 그림은 시대를 불문하고 정신 놓고 보기는 합니다만.)  뭐, 와홀이 잘난척하는  초상화 작품이 보이는군요. 

 

 

 

 

예,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작품을 발견한 순간, 잠시 제가 저의 우울을 잊을수 있었습니다.  아주 잠시 환각현상처럼 삶의 고통이나, 좌절감, 실의, 자기 연민이나 자기 혐오까지도 잊을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브르헬 (Pieter Bruegel the Elder)의 혼인잔치 (The Wedding Dance  1566년 추정)를 만났기 때문에.  한번 꼭 보고 싶었던 작품이, 갑자기, 예고없이 문득 내 앞에 나타났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는 정말 '소리'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웃으며 떠드는 소리, 풍악소리, 바람소리 뭐 이런 소리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와 나를 감싸는 듯한 기분이 드는 그림이었습니다.

 

 

 

 

뉴욕 맨해턴의 현대미술관 (Museum of Modern Art = MoMA)에 가면 노란 바지를 입은 사나이라는 제목의 이탈리아 작가 작품이 있습니다. Michaelangelo Pistoletto (미켈란젤로 피스톨레또)라는 작가인데, 이 사람은 그의 그림을 거울같은 스텐레스 판에 작업을 합니다.  그림을 보면, 거울같은 그림판에 내 모습도 있으므로 나도 그림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도 들고, 착시 효과도 있고 그렇습니다.  반가워서 그림속에 내가 들어있는 사진을 찍어보았습니다.

 

 

 

 

 

제가 브르헬의 그림에, 그리고 다른 명품들에 혼이 반쯤 나가긴 했지만, 정신을 수습하고,  본래  이곳에서 가장 보고 싶었던 작품은 멕시코 출신 화가인 디에고 리베라의 대형 벽화 였습니다.  마침내, 가서, 내 눈으로 보았다는 것이지요.

 

 

틈틈이, 이 벽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사진은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제가 서 있는 사진 뒷쪽의 벽화 부분을 자세히 보시면, 왼쪽 상단에, 일하는 공장 노동자들을 '구경'하는 관객들이 보이는데 - 가슴에 큼지막한 십자가를 매달은 '귀부인'들과 신사들과 그 아이들이지요. 미국자본주의의 상징, 돈과 그들만의 신교도적(?) 신앙심이 결합된...  저는 특히 그 부분을 상세히 써보고 싶어집니다.

 

이 사회주의사상이 강하게 스며든 벽화가 '디트로이트'에서 뭉개지지 않고 살아남았다는 것 만으로도 저는 디트로이트 시가 좋아집니다. 디트로이트는 이 벽화를 살려놓기를 잘 한 겁니다. 사람들은 이제 이 '벽화'를 보기위해 이곳에 오니까.

 

방문: 2009년 10월 31일

내인생 최초의 환멸 (Disillusionment)

우리는 성장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현실을 알아가게 되지요.  라디오속에 아주 작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상상이나, 연못속에 어떤 다른 사람들의 세상이 펼쳐져있을지도 모른다는, 여러가지 상상들이 하나 하나 깨져나갑니다.  내 인생 최초의 환멸이 무엇이었는지조차 우리는 알지 못하지요.  조금씩 조금씩 부서져 나가니까.  새가 알에서 깨어나올때 그 알껍질이 미세하게 금이 가는것처럼.

 

내가 어떻게 정치 사회적인 문제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는 나 조차도 기억하기 힘들지만, 분명 어릴때부터 신문에 보이는 '사람들'에 관심이 많았고,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할아버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센 사람이 누구야?" 하고 물어보면 할아버지는 "소련에 브레즈네프도 힘이 세고, 중국에 모택동도 힘이 세고,  미국 대통령도 힘이 세고, 박정희 대통령도 힘이 세고..." 이러면서 주로 신문에 나오는 인물들을 손끝으로 가리키며 중얼거리셨던 것인데.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셀 것만 같았던 우리 할아버지가 매일 들여다보는 신문속에 나오는, 할어버지가 인정하는 천하장사들이니 그들이 정말 힘이 센가보다 하면서, 신문을 들여다보다가... 아아, 할아버지가 힘세다고 인정하지 않았던 인물들, 김영삼이나 김대중에 대해서도 관심이 가기 시작하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나는 왜 '이세상에서 제일 힘센'사람을 궁금해 했던 것인지.  하필 그때 왜 할아버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센 사람으로 소크라테스, 예수, 석가모니 뭐 이런 성자들을 소개하는 대신에 소련의 중국의 미국의 한국의 위정자들을 언급한 것인지.  혹은 '이 세상에서 가장 힘 센 존재는 바로 너다' 이런 엉뚱한 대답을 안해주신 것인지.  궁금증은 쌓여가는데.

 

사회, 국사, 세계사등을 재미있게 공부하며 평범하게 자라나던 나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정치경제' 시간을 맞이하여 그동안 궁금하던 것들을 조금씩 조금씩 배워나가게 되었던 것인데, 하루하루 배우는 기쁨이 컸다고 기억합니다. 헌법의 정체라던가, 혹은 경제구조의 아주 기본 상식적인 것들을 배우면서도 내 가슴은 하늘의 무지개를 보는듯 뛰놀았던 것인데, 그것이, 고백하건대,  뭐, 하필 정치경제 선생님이 미남이라서 순전히 그의 음성에 귀먹고, 그의 아름다운 자태에 눈멀은 결과였을것입니다만.  아무튼, 나는 제법 별볼일 없는 변두리 과목에 미쳐있던 역시 변두리 청소년이었을겁니다.

 

어느날 그 아름다우신 미남 선생님 과목, 정치경제 과목 시험을 보는데, 문제는 대략 이런것이었다고 기억합니다.

 

(문제) 다음중 정당의 목적은 무엇인가?  (    )

 

1. 국가의 발전

2. 국민의 행복

3. 정당의 발전

4. 남북 통일

 

자, 여기서 정답이 무엇입니까?  저는  1번과 2번 사이에서 고민고민하다가 1번을 찍었습니다. (혹시 4번이 정답일지도 모른다는 근심을 하면서).  그런데 뚜껑 열어보니 정답은 3번이었습니다. 정당의 목적은 정당의 발전에 있다는 것입니다.  대개 1번이나 2번을 고른 우리들은 놀란 눈으로 선생님을 쳐다봤습니다.  선생님은 빙그레 웃으시며 (아 그 미남선생님이 빙그레 웃을때 그 미소는 그대로 빙그레 아이스크림이었습니다)  왜 정답이 3번인지를 설명해주셨습니다. 대략, 정당은 정당의 존속을 위해 활동한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때, 정당의 목적이 정당의 발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때,  아마도 그때가, 내가 세상에 대해서 환멸을 느낀 아주 선명한 사건이었을겁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였는데요.  그때,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글이며,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을 지켜주지 않으며 오직 각자 개별적인 생명들이 생존하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는 것을.  정당도, 그 어떤 사회단체도 궁극적으로는 그 자체가 목적인것이라고.   물론 그 이후에 사람은 '이기심'에서 출발하지만 그 행위 자체가 '이타적'일수 있는,  이기심과 이타심을 동시에 충족시킬수 있는 사회 활동을 할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지만, 그당시 와장창 깨어져 나가던 그 굉음을 나는 지금도 기억합니다.  그래서, 세상의 어떤 현상에 대해서 실망하거나, 분노하게 될때, 어린 시절의 그 시험문제를 생각합니다. 그는 그를 위해서 존재하고, 나는 나를 위해서 존재할뿐. 그의 이기심을 내가 탓할수 없고, 나의 이기심을 당신은 탓할수 없다.  뭐 이런 아주 냉소적인 입장으로 환원하고 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런 냉소적인 입장에서 세상을 보면, 조금 분노가 가라앉고, 그리고 조금 더 타당한 길이 무엇일까 사색하게 됩니다.  조금더 타당한길.  너의, 그의 이기심과, 나의, 우리의 이기심을 모두 충족시킬수 있는 접점은 어디인가...  (하루 하루가 환멸인 나날이지만, 그래도 지구는 돌고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