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4일 화요일

[산책] 황혼의 거위 가족

 

 

2010년 5월 4일.

 

저녁을 먹고나서 일곱시에 터키런으로 향했다.  아직 저녁 해가 남아있었고, 햇살이 강했지만, 숲속은 서늘하였다. 황혼이 아름다웠다. 선녀탕에서 세수를 하니, 마치 옛날 이땅을 고향으로 알고 살았던 인디언 여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터키런 계곡에서 세수하고 몸을 씻는 맛에 이곳에 자주 갈지도 모르겠다. 피부가 보들보들한 느낌.

 

숲에서 나왔을땐 사방이 어두운 밤이었다.

혼자 있었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American Legion Bridge 아래 강기슭의 캐나다 거위가족.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던 1970년대의 가족계획 표어가 생각난다.

새끼가 두마리뿐이다.

대개 대여섯마리씩 몰고 다니는데, 이 친구들은 가족계획 실천가들인가보다.

캐나다 거위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자식들을 지킨다.

이들의 투철한 자식보호 자세를 지켜보노라면,

부부가 합심해서 자식을 키워내는 것을 보노라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내가 자식을 저 거위들 만큼이나 정성들여 돌보는가?

 

 

 

 

 

 

 

 

 

 

 

 

 

 

 

 

 

2010년 5월 3일 월요일

[산책] 자전거 모험 - 캐나다 거위 가족과 만나다

 

 

2010년 5월 3일 Great Falls 까지 자전거 왕복을 하던중 만난 캐나다 거위 (Canadian Geese)가족.  이 친구들은 내가 갈때도 만나고, 돌아 올때도 만났다.  (어떻게 동일한 가족인지 아는가하면, 사진을 들여다보니 새끼들 숫자가 똑같은거다. :-)   )

 

캐나다 거위는 부부가 함께 새끼들을 지키는데

인간이 나타나면

부모중에 한놈은 새끼들 곁을 지키고

한놈은 사람쪽을 향해서 방어자세를 취한다. 게다가 이놈은 사람에게 위협적으로 캭캭 으름짱을 놓거나 혹은 심지어 쪼으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기도 한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이때, 한놈이 새끼들을 거느리고 '물'쪽으로 이동한다.

 

 

내가 요놈들을 좀 곯여주려고, 물쪽에서 길을 막으니 새끼들이 일제히 물쪽을 포기하고 숲쪽 길가로 몰려간다.  (사진에서 오른쪽은 물이 있는 운하이고, 왼쪽은 강변 숲이다.)

 

 

(위) 물쪽으로 바삐 가려다 인간이 길을 막자

(아래) 숲쪽으로 가는 새끼들

 

 

 

 

위태로운 상황일때, (한가롭지가 않을때) 어른 거위는 목을 저렇게  움추리고 아이들을 모은다.  어미나 아비가 목을 저렇게 움추리면 아이들도 아마 바짝 긴장을 할 것이다.

 

 

 

내가 운하로 가는 길을 터줬다. (길 중간으로 비켜줬다).  거위 가족이 '이때다' 외치며 운하쪽(왼쪽)으로 바쁘게 가고 있다. 늘, 한쪽은 이끌고, 한쪽은 엄호를 한다.

 

 

 

물에 들어갔다.

이제 이들은 위험에서 벗어났다

한가롭게 물위를 헤엄쳐 인간으로부터 멀리 멀리 멀어져간다.

 

 

 

 

 

 

일곱마리 새끼들.

하지만, 저 새끼들이 떠꺼머리 총각이 될 즈음 - 6월쯤 되면, 부부가 거느리던 예닐곱의 새끼들은 서너마리가 된다.  서서히 숫자가 자연감소 되는것을 하루하루 볼 수 있다. 결국 어떤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되겠지...

 

 

 

 

 

[산책] 자전거 모험, Great Falls 까지 자전거 여행~

 

 

2010년 5월 3일 월요일.

간밤에 폭우, 아침에도 집중적인 소나기.

새벽에 일어나 책상머리에서 온라인 수업 자료를 챙겨서 보내놓고,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연구실로 나가는 대신에, 비온 후의 상쾌함을 맛보기 위해서 포토맥강변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강변에 나가기 전에 왕눈이를 한번 안아주고.

 

비가 그쳤지만,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어서, 비가 다시 쏟아질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런 흐린 날씨가 산책하기에는 가장 알맞다.

가볍게 조지타운까지 걷다 오려고 작정하고 나간 것인데 (비 온후에 터키런 같은 숲길은 위험하다. 길이 질척거리고 그리고 바위나 나무가 미끄러워서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Fletcher's Cove 앞을 지나다가 배와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가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자전거를 타보면 어떨까?

즉흥적으로 자전거에 눈길이 꽂혀서, 그걸 타고 한바퀴 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내판에 나와있다시피, 자전거는 한시간에 7달러, 하루 28달러 대여료를 받는다.  시간당으로 계산이 되다가 28달러 이상 넘어가면 하루 대여료로 내면 그만이다. (네시간을 타건 다섯시간을 타건 마찬가지라는 말씀).

 

자전거 (혹은 카약이나 보트)를 빌리기 위해서는 신분증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카드나 현금으로 계산을 하면 된다. 신분증은 나중에 자전거나 배를 반납할때 돌려받는다. (신분증 없으면 대여할수 없다.)  사진속의 점원 아저씨가, 성품좋게 생긴 미남이고, 그리고 친절하다. 간단한 음료와 스넥도 판다.

 

 

 

 

 

 

나는 일단 한시간 대여료를 냈고, 나중에 돌려줄때 시간초과를 할경우 정산을 하기로 했다. (그쪽에서 한시간 비용만 받고 나중에 정산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장면을...나는 무척 좋아한다.

길 왼편으로는 바다같이 넓고 느긋한 포토맥강이 유유하게 흐르고

길 오른편으로는 운하가 흐른다.

나는 물위에 난 길을 통과하는 것 같아.

이런 길이 Great Falls 로 향하는 11마일 내내 이어진다.

한편에 강, 또 한편에 운하.

 

 

 

 

흰 건물은 Lock House 라고 한다.  포토맥 강변의 운하 (이 운하 길이 200마일 이어진다, 워싱턴 디씨에서 시작하여 멀리 오하이오에서 끝난다. 그래서 Chesapeake Ohio Canal 이라고 부른다) 이 운하의 수문이 1-2마일마다 있는데 (물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배를 움직이게 해준다)  그 수문 관리인 가족이 살던 집을 Lock House 라고 부른다.

 

현재 이 200마일 (100 마일은 160 킬로미터) 의 운하는 운하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이 200 마일에 이르는 운하길을 국립 공원으로 지정하여 자연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다닐수 있도록 길을 유지보수하거나 나무며 자연환경을 관리를 하지만, 그 외에 인공적인 구조물은 없다. 가게도 없다. (물 사먹을 간이점도 없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언젠가는 이 집에 가족이 살았고

아이들은 부모를 도와 수문을 여닫는 일을 했을 것이다.

 

 

 

 

 

오래된 마일 스톤 (Mile Stone : 이정표 : 몇마일인지 표시하는 돌)이 보인다.

9 miles to W.C 라고 적혀있다. 

워싱턴 디씨까지 9마일 남았다는 뜻이다.

내가 강변에 가면 대개 3.5마일 지점에서 조지타운까지 가므로 왕복 6마일로 환산을 하는데

이곳은 내가 평소에 산책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조지타운 반대방향으로 (상류쪽으로) 5.5 마일을 올라온 곳이다.

 

옛날에는 Washington D.C. 를 W.C 라고 표기했나보다. (혹은 D자가 마모되어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릴랜드 방향의 Great Falls Park 진입로. 이쯤에서 반환

 

이곳을 지나치니, 2008년 12월이던가, 몇몇 지인들과 이곳을 산책한 일이 생각난다.

그중에는 '친구'라 부를만한 이도 있었고, 그냥 아는 분이라고 할 만한 분도 있었고.

겨울이었는데 날이 포근했다.

산책을 마치고, 일행중에 내가 '정경부인'이라고 일컬었던 '마님'이 집에서 국수나 먹고 가라고 제안을 하셨다.  그래서 산책 마치고 그댁에 들러서 멸치국물에 소면 말은것을 잘 먹었다.  그 부인이 내가 고기국물 안 먹는걸 아시고, 내게 뭘 먹일때면 신경을 많이 쓰셨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  이사한 후에 일부러 우리집에 '간장 한통'을 주려고 먼 걸음을 하셨다.  친정 어머니께서 손수 빚으신 아주 귀한 조선간장인데, 그걸 타향살이하면서 아끼고 아끼다가 귀국을 하시면서, 내게 주려고 일부러 빗속에 다녀가셨다.

 

그 조선간장 (우리 집안에서는 이걸 조선간장이라고 부른다.  '왜간장'에 대별되는 '자존심'있는 간장, 그것이 바로 조선간장이다) 을 나는 미역국 끓일때마다 넣어 먹었는데, 이제 잼병으로 두병이 남았다. 저거 다 먹으면 그다음에는 사먹어야 할 판인데, 조선간장은 집에서 담아야 제맛인것을 나는 안다.

 

 

 

 

 

 

Great Falls 에서 반환하여 돌아오는길.

 

 

 

 

오후 한시쯤에 Fletcher's Cove 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출발했는데, Great Falls 까지 가는 11마일 동안, 중간에 멈춰서 자연관찰도 하고, 새 관찰도 하고, 학교에서 긴급회의 한다고 전화를 해대서 전화받고, 그러느라 지체되었다.  길은, 흙길에 자갈이 깔려있어서, 아스팔트에 비해서는 길이 매끄럽지 않아 힘들었다.  자전거 반환하러 가서 시계를 보니 네시간이 지나있었다. (오후 다섯시). 아아아.

 

출발할때는 두시간이면 왕복할줄 알고, 가볍게 생각하고 물 한병 가지고 갔는데, 네시간 돌아다니며 그 물 한병을 아껴먹어야 했다.

 

오늘 내가 자전거로 왕복한 거리는

2008년 11월에 온가족이 걸어서 왕복한 적이 있다.

그날 오전 열한시쯤 출발하여 다섯시쯤에 돌아왔는데, 중간에 비도 오고 아주 물에 젖은 생쥐꼴로 걸었었다.

오늘은

그 길을 나혼자 한가롭게 자전거로 돌았다.

그 길의 부분부분을 친구나 지인과 돌기도 했었으므로 내게는 익숙한 길이었다.

그런데 자전거에 앉아서 보는 세상은 걸을때와는 또 달라서

늘 새롭고, 아름답고 그렇다.

날씨도 비 온 후라 촉촉하고, 공기에서 수박냄새가 나고, 향긋하고, 뜨겁지 않아 좋았다.

 

아마도 오늘 내가 자전거로 타고 돈 거리가, 내 생애에서 자전거로 달린 가장 긴 거리일것이다.

어릴때 자전거타고 태릉에 간다던가, 강변에 간다던가 한 적은 있었지만, 오늘같이 진빠지게 달린 적은 없었다.  어릴때도 내가 포장된 길만 달렸지, 오늘같은 자갈길은 ... 아아아... 만만하게 봤다가 고생좀 했다. 하하하. 하지만 즐거웠다.  또 가야지....하하하

 

 

2010년 5월 2일 일요일

[산책] 터키런 파크, 계곡 물놀이

 

 

작년 이맘때,

나는 캐나다거위 (Canadian Geese)가 알을 품고, 새끼를 치고, 그 새끼를 어른이 될때까지 돌보는 과정을 관찰하며 일기에 기록을 남겼었다.  올해는, 어쩐지 그 거위떼가 그자리에 돌아오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는데.

 

이따금 강변에서 새끼들을 이끌고 다니는 캐나다거위 부부를 발견한다.

여섯마리 거위병아리.

 

올해는, 나도 너희들을 관찰할 기력이 없을것 같아.

작년에는 여우도 캐나다거위도 내 곁에서 새끼를 낳아 키우더니

어쩐 일인지, 이제 다시 내곁에 돌아오지 않아

이런 생각을 하면 쓸쓸해진다.

하지만, 만사에 때가 있으니

사랑할때와 이별할때가 있으며

날때와 죽을때가 있다

그러려니 할 밖에.

 

 

 

 

레지오날 브리지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내가 '선녀탕'이라고 부르는 계곡에서

잠시 쉬며 놀았다.

날이 여름처럼 후텁지근해서

강변에서는 아이들이 옛날, 나 자랄때처럼 물장구를 치며 놀았다.

(서양 아이들이 강변에서 노는 장면이, 한국의 아이들하고 똑같아서, 그걸 쳐다보면서 웃었다... 다를게 무어가 있다고...)

 

 

 

나는, 물가에 가면 물에 뛰어드는 사람이고

P국장은 물가에 가면 물 튈까봐 저만치서 고양이처럼 앉아있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다.

바닷가에 가면 나는 옷을 입은채로 뛰어 들어가 놀다가, 젖은 옷 입은채로 집으로 오는 사람이고

P국장은 모래사장에 앉아서 '바다가 참 좋구나' 하고 쳐다보는.

나는 행동과 생각을 동시에 하는 편이고

P국장은 생각한 후에 행동하는.

 

나는 성질이 급해서 산길에서나 평지에서나 걸음이 빠르고 저만치 앞서가고

P국장은 성질이 느긋하고 사색적이라 늘 나보다 한참 뒤쳐져서 오는.

 

그래서,

물을 보고 내가 뛰어들면

그는 '철딱서니 없는 애'를 돌보듯 멀찌감치서 사진이나 찍어주며

내가 즐기는 물장난을 대리체험으로 즐긴다.

 

오늘, 내가 선녀가 된 기분이 들 정도로 물놀이가 재미있었다.

그리고 눈가에 쏟아지는 피로감이 싹 사라졌다.

나만 그런줄 알았는데 P국장도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그는 하루종일 일을 했는데, 그래서 피곤해서 산책도 안간다고 하다가 마지못해 따라 나섰는데, 물가에 앉아 쉬노라니 머리가 개운해지고 피곤함이 사라졌다고. (그래서, 운동을 해야 덜 힘든거라구~ )

 

바위틈을 흘러흘러 내려온 계곡물에 세수를 하고 몸을 닦으니, 피부가 보들보들한것이, 수돗물로 세수했을때와는 사뭇 다르다.  계곡물이 오염되었다고해도, 바위틈을 통과하면서 정화된 자연수이니까, 소독처리한 수돗물보다는 피부에 더 좋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터키런에 갈때, 아예 타월을 하나 갖고 가서 세수하고 발 닦고 그럴까보다.

 

 

봄날은 간다

봄날이 가거나 말거나

나는 내게 주어진 황금같은 시간들을 깊이 깊이 음미할것이다.

 

 

 ***

 

큰놈이 입학신청을 한 학교에서 허가서가 날아왔다. 녀석이 기뻐하는 얼굴을 보니 나도 가슴을 누르던 바위를 내려 놓은듯한 기분이 들었다. 감사한 일이다. 몇군데 더 보낸것이 있는데 좋은 회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산책] 들꽃피는 언덕: Build me up Buttercup baby~

 

 

나는 버터컵이라는 꽃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를때부터 이 노래를 좋아했었다.

워싱턴에 올라와서 봄에 아무데나 피는 흔한 노란 꽃이 버터컵이란 것을 알았다.

그래서 길가에 핀 버터컵을 발견하면, 나는 영락없이 이 신나는 노래를 흥얼거린다...하하하...

 

 

 

 

저녁 지어먹고, 오후 여섯시에 터키런에 산책하러 나가다가 우리동네에 있는 공원을 쳐다보니 '버터컵 buttercup' 꽃이 언덕을 노랗게 물들이고 있었다. (제주도의 유채꽃처럼).  그래서 오랫만에 노란 들꽃 구경하느라고 이곳을 잠시 산책했다.  '황금 잔'같이 앙증맞고 노란 꽃들.  이런 광경을 보면, 천국이 지상에 잠시 비치는것 같기도 하다.  지상에 거울이 있어서, 가끔 천상의 아름다움이 반사되는것 같은. 꿈결같은.

 

 

 

 

 

 

어떤 아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고 꽃밭에서 한가롭게 산책 중.  아이가 꽃밭에서 노는 장면은, 그대로 그림 같았다.

 

 

 

 

 

 

 

 

 

 

 

 

아카시아꽃 송이도 한송이 따서 먹었다.  달콤하고 향긋하고 맛있었다.  이것 찹쌀가루 뭍혀서 튀며먹으면 정말 맛있겠다...

 

 

 

 

2010년 5월 2일 일요일.

 

 

Henry Ossawa Tanner: 갈릴리해의 예수와 제자들 (1910)

Henry Ossawa Tanner (1858-1937)
Christ and His Disciples on the Sea of Galilee (ca. 1910)
Oil on artist's canvas board
2010년 5월 1일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버지니아 미술관)에서 촬영
크기는 대략 가로 20센티 세로 15 센티 정도로 추측됨 (작은 그림이었음)



버지니아 미술관이 대대적인 증축공사를 마치고 재 개관식을 하던날 (2010년 5월 1일) 미술관 방문을 하였다가 발견한 헨리 오사와 태너의 소형 작품. 갈릴리 바다의 예수와 그의 제자들. 성서적인 지식이 일천하므로 간단히 상식선에서 배경 설명을 하자면, 예수가 제자들을 이끌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던중, 스승께서 잠시 낮잠을 즐기고 계시는 와중에 풍랑이 몰아치는지라... 어리석은 제자들이 풍랑에 겁이나서 "스승님, 배가 뒤집힐 판국에 잠이 오십니까? (내식으로 대략)" 성화를 하니까, 예수께서 잠에서 깨어나서 짐짓 짜증스러운 태도로 말씀하시다: "어리석은 제자들아, 내가 그동안 보여준 이적들을 보지 못했느냐?  내가 자는데 왜들 법석을 떠느냐.  풍랑이 그렇게 무섭다는 말이냐?"  예수께서 약간 성가신 표정으로 풍랑을 향하여, "시끄럽구나. 어리석은 내 제자들이 무섭댄다. 좀 조용히 해라" 하고 타이르시니 풍랑이 잠잠해지도다~

대략 이러한 일화가 전해지는 바, 그것을 태너가 화폭에 옮겼으리라 짐작된다.

헨리 오사와 태너는 유색인종이 인정을 못받는 미국의 풍토에서 흑인 화가로 성장한 사람인데, 종국에는 미국의 인종 차별에 진절머니가 난다며 유럽으로 건너가 버렸다 (1891년). 이 작품은 파리의 살롱전에서도 전시가 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던 빼어난 작품이다.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헨리 오사와 태너의 '수태고지'  대형작품이 걸려있는데... 오사와 태너의 미술세계를 종합적으로 정리할때 함께 소개하겠다.

이 작품은 딱히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그 일화를 음미할만한 가치가 있다.  우리가 고해와 같은 삶을 헤쳐나갈때, 풍랑이 몰아치고 배가 위험에 빠질때라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자세, 그런 성품을 키우기는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풍랑을 잠재우고 대양을 건너겠다는 자세로 하루 하루를 살아 나가고 싶은 것이다.








텍스트큐브가 '사실상' 서비스를 중단하겠다는 공지를 해서,
어떻게 할것인가 잠시 고민을 했다.
텍스트큐브를 블로그로 선택한 이유는,
조용하고, 눈에 안띄고, 그냥 조용히 혼자 놀기에 좋아보여서
그리고 구글이 관리한다니 데이타 잃어버릴 걱정을 안해도 될것 같아서.
지난해 5월에 만들어 놓고 있다가 8월부터 사용했으니까, 계정은 1년간 유지한 셈이다.

나는 이 블로그를 갖고 놀면서, 내 인생에서 힘든 오후의 한때를 무사히 건널수 있었다.
많이 아팠으나, 지금은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시간이 많은 문제들을 해결해주긴 하지만,
텍큐에서 블로그질하면서 스스로 정신상담을 주거니 받거니 한 것도 도움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미국미술 프로젝트를 아직 마치지 못했는데, 텍큐 쓰기가 애매해지고 말았다.
프로젝트를 마무리 할 때까지는 계속 작업은 해야 할 것 같은데...
그래서
계정을 하나 만들어놓긴 했는데
이삿짐을 옮길지 말지는 좀더 두고 볼 것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으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다지 미련을 느끼지 못한다. 아쉬움도 별로 없고.
완전 '유목민' 생활에 익숙해진 것도 같다.  :-)
어차피 나그네 아니던가.
아무튼, 시작한 일은 매듭을 지어놓고...




2010년 5월 1일 토요일

Virginia Museum of Fine Arts 버지니아 미술관 그랜드 오프닝

공식홈페이지: http://www.vmfa.state.va.us/default.aspx

 

버지니아주의 행정수도 (주도)는 Richmond 리치몬드시이다. 이곳에 버지니아 미술관이 있었는데, 지난해초부터 증축 공사를 한다고 일부 폐쇄하다가, 전부폐쇄하고 본격적으로 공사를 한것으로 알고 있다.  소장품의 일부는 지역의 다른 미술관들을 돌며 순회 전시가 되기도 하고 그랬다.

 

그 버지니아미술관 (Virginia Museum of Fine Arts)이 오늘 (2010년 5월 1일) 증축을 마치고 개장식을 하면서 다양한 개장 행사를 온종일 진행했다. 나는 열한시쯤 도착하여 오후 네시까지 있다가 나왔지만, 오늘 자정까지 미술관이 열린다고 한다.

 

 

나는 증축 이전에 이 미술관에 가 본적이 없으므로 얼마나 새로 수리된것인지 짐작하기 어려운데, 직접 가서 보니 제법 큰 규모였다.  미국의 국공립 미술관들중에서 10대 미술관 안에 손꼽히는 것이라는 설명을 듣기도 했다.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필라델피아 미술관에 견주면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있으나, 그 외의 다른 미술관에 견주면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 (그러면 정말 미국의 십대 미술관중의 하나가 될수도 있겠다)

 

나는 큰 기대 안하고, 내가 평소에 보고싶어했던, 미국 미술가들의 작품을 보겠다는 '소박한' 생각을 갖고 리치몬드까지 120마일 길을 달려갔는데, 막상 가보니 내 예상보다 규모가 커서 '감동' 받았다 (이럴땐, 이 미술관의 모든 소장품이 내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개념미술의 창시자인 Sol Lewitt 의 작품이 '정다운 음악'처럼 서있다. (아이좋아, 아이좋아, 좋아서 깡충깡충 뛰게 된다. 예상치 못한 명랑하고 생동하는 작품을 만나서)

 

 

 

 

 

 

 

 

일단 전체 소장품중에 미국미술품들이 걸작들이 많이 있어서 '너무 너무' 행복했고

미국 미술품 외에도 유럽이나 아시아 작품들도 골고루 구비되어 있었다.

워싱턴의 NGA 국립 미술관보다는 규모가 작다고 할 수 있지만, 국립 미술관에서 찾아보기 힘든 알토란 같은 작품들도 많이 있다.

 

작품사진은 300장 가까이 세밀하게 찍어왔으므로 차근차근 풀어 놓기로 하고,

오늘 나를 감동시킨 또다른 요소는, 미술관 재 개장식을 하면서 미술관측이 관람객들에게 보인 남부의 친절함 (Southern Hospitality) 이라고 할 만하다.

 

Southern Hospitality 라는 표현이 있다. 미국 남부 사람들의 푸근한 인심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내가 살고 있는 북 버지니아는 미국의 '북부'쪽에 가깝지만, 버지니아의 수도인 리치몬드는 한때 남북전쟁 당시에 '남군'의 수도 였던 적도 있다. 남부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었다.  같은 버지니아 이지만, 내가 북버지니아에서 차를 몰고 120마일을 남쪽으로 달려 내려갔을때, 리치몬드에 펼쳐진 풍경은 워싱턴 인근 지역과는 사뭇 달랐다.  '플로리다'를 연상케하는 따뜻함, 느릿함, 여유로움, 순한 표정, 느릿한 발걸음, 그리고, 아아, 특유의 남부 액센트와,  여기저기 많이 보이는 흑인들.  워싱턴 인근 지역에서 흑인들을 많이 못봤는데, 리치몬드에 오니까 정겹고 순박한 흑인들이 여기저기 많이 보였다. (여기 남부 맞구나... 고향에 돌아온듯한 따뜻함.)

 

내가 Southern Hospitality 라는 표현을 떠올린 이유는,  이 미술관이 오늘 방문한 '모든' 관람객이 원하면 언제든지 먹고 마실수 있도록 음료와 간식을 '무한'으로 제공했다는 것이다.  미술관에는 카페테리아와 레스토랑, 스넥바 등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미술관 내부에 있는 카페테리아및 레스토랑, 스넥바, 그리고 코트야드에서 마치 호텔의 연회장같은 설비를 해놓고, 관객들에게 정중하고도 친절하게 음료와 가벼운 요깃거리를 온종일 제공을 한 것이다.

 

이들이 제공한 것은

  1.  각종 탄산음료수와 레모네이드를 얼음과 함께 유리잔에 담아주고, 빈 잔들을 즉시 치워서 항상 청결한, 준비된 상태를 유지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는데...기다리는 줄도 없을정도로 기민했다)
  2. 카페테리아에서는 미국인들이 점심 대용으로 먹는 핫도그 (빵 사이에 소세지 낀것) 를 은박지로 포장해서 따뜻하게 해 두었다가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에게 제공했다.
  3. 여러가지 쿠키도 쌓아놓고 누구든지 집어가도록 했다.
  4. 감자칩 스넥도 원하는 만큼 봉지를 집어갈수 있었다.

아침 열시부터 자정까지, 쉼없이 제공되는 음료와 간단한 먹을거리들. 

 

나는 처음에는 '음료수 정도는 기념으로 무료로 주나보다' 생각하고, 점심 먹을거리를 찾기 위해서 카페에 들어갔는데, 가만보니, 아무도 돈내는 사람이 없는거다. 돈을 받는 사람도 없었다. 

  "이것이 뭔 일이다냐? "

나는 그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2009년 1월이었나? 스미소니안 미국 역사 박물관이 보수를 마치고 재 개장을 했는데, 공식 개장전에 일부 인사들에게 미리 공개를 한 적이 있다.  그날 나도 구경을 갔었는데, 거기서도 음료와 가벼운 먹을거리를 제공했었다.  그때는 그냥, 음료와 스넥을 조금 나눠주나보다 생각했었다. 감동은 없었다.  오늘은, 음료와 식사를 제공하는 행사 담당 직원들, 혹은 일꾼들의 태도나 표정이 참 여유롭고 평화롭고, 느릿한 미소를 담고 있어서  미술관에 왔다는 느낌을 넘어서 '내가 참 복이 많구나. 이런 호사를 다 누리는구나' 뭐 이런 황송한 느낌까지.

 

그래서 생각하게 되었다, 사람을 접대할때는 이런 여유와 느긋함을 갖어야 하는거구나.  세밀하나 신경질적이지 않은, 남부 스타일의 친절함. 

 

오늘 개장일이라 끊임없이 미술관 여기저기서 각종 공연과 행사가 이어졌는데, 나는 미술체험 학습 코너 여러군데 중에서 스탬프 만들어 찍기를 해봤다.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종이에 연필로 스탬프 밑그림을 그린다

스티로폼 판 위에 밑그림을 올려놓고

연필심으로 선을 그려준다

스티로폼에 밑그림과 동일한 골이 패인다

 

 

스티로폼에 스탬프 잉크를 고르게 묻혀서

종이에 올리고

롤러로 꼭 눌러준다 (롤러가 없으면 두꺼운 책같은거 올려놓고 도장찍듯 압력을 가하면 된다)

 

 

완성.

 

 

 

 

오늘의 진정한 하일라이트는

  날으는 황금 퇴깽이

그리고

그리고

 

   내 양말

 

호호호~

 

 

 

홈페이지를 보면 공식 그랜드오프닝 행사가 5월 1일과 2일로 잡혀 있으므로, 예측컨대 내일도 오늘과 같은 성대한 오프닝 행사가 펼쳐질것이다.  일생에 한번 볼수 있을까 말까한 '미술관 개관 행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