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1월 12일 목요일

[Song] 사랑한다는 흔한 말

 

 

 

 

 

오늘은 어쩐지 온종일 연구실 드나들며  이거 들을 것 같은 느낌.  아아아 수업 10분전...   오늘 하루,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할수 있도록 힘을...   (플루인가, 머리가 지끈지끈.)

 

 

아, 뮤비 보면서 생각해보니, 나는 한번도 강원도나 어디 멀리에 군대간 애인 '면회'하러 가본적이 없다. 난 (하하하) 군인하고 연애해본적이 없었다. 하하하. (이런, 내 생애에 군발님과 연애를 한번도 못해보다니~ ) 군인아저씨한테 위문편지 보내고 답장받고 그런적은 있지만, 어쩐일인지 군발님이 나를 회피한 것일까?

 

 

... 면회도 못가보고 흘러간 내 청춘이여. 하하하.

 

 

 

 

 

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Book] Francis Crick

Francis Crick: Discoverer of the Genetic Code (Eminent Lives)

 

Francis Crick: Discoverer of the genetic code by Matt Ridley

 

 

나는 내 삶을 내가 살고 싶은대로 살아온것 같다. (나는 운이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나는 어릴때 화가가 되고 싶었고 이야기를 쓰는 사람 (소설가라는 것이 뭔지도 모르는 어린 시절에)이 되고 싶었다. 나의 꿈은 그러니까,  동화책을 만드는 거였다. 이야기를 쓰고, 그 이야기의 그림도 직접 그려서 동화책을 만들어내는 것.  나중에 그것이 미술가, 소설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미술에 크게 재능이 있었던 것 같지 않다. 나는 미술가도 소설가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소설 한편으로 조그만 문학상을 받은적도 있고, 아직도 소설가의 꿈을 버린 것은 아니다.

 

그후에 나의 꿈은, '가르치는 사람,' 그중에서도 '교수'였다. 왜 '교수'가 좋아보였는가하면, 내가 알고 있는 인척중에 '교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뭐 잘난척도 좀 하고, 생활이 자유로워 보이고, 뭔가 진지해보이고 그랬다.  그것이 '자유직'처럼 여겨졌었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온종일 회사에 붙어서 살아야하는 '회사인간'이 되고 말았는데, 그것이 아무리 보수가 좋고 편안한 직장이라고해도 나로서는 암담한 일상이었다. 미치겠는거라. 온종일 책상에 붙박이로 있어야 하니까. 하필 나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외국계 회사 비서질을 하고 있었는데 출퇴근 시간 칼 같고, 근무 조건 선진국 수준이고 여러모로 좋은 여건이었지만, 내가 그 보수좋고 편안한 회사 책상 앞에서 매일 생각한 것이 뭔가하면 -- 나는 이대로 이렇게 일주일에 닷새동안 매일 이렇게 여기서 시간을 또박또박 죽이며 살다 죽을것인가?   이런 고민이었다.  나는 닭장안에 갖힌 닭이었다. (이것은 내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지 모든 회사인간을 닭장안의 닭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아니다. 내게는 내근직이 잘 안맞았다).  나는 통유리로 된 창밖을 내다보며 '내게 자유를 달라 아니면 죽음을...' 이런 생각을 꼴똘히 했었다.  오죽하면 '농대에 들어가서 농사혁신 기술을 습득하여 시골집에 가서 과학 영농을 해볼까 이런 망상까지... 회사 내근직 사원으로 살다 죽느니 밭에서 흙을 파는 것이 내 성격에 더 잘 맞았으니까.

 

 

 

어느날 내가 내 보스에게 이런 고민을 얘기했더니, 독일인 보쓰가 심각하게 듣고는 "그러면 너는 마케팅 쪽 일을 해볼래?  광고 마케팅 쪽 담당자가 하나 필요한데 너 그거 해볼래?" 하고 진지한 해법을 제시해주었다.  '오케이! 그래 그거! 나가서 돌아다니며 뭔가 창의적이고 모험적인 일을 할수 있는거! 그거! 그거다!'  나는 신이나서 그 제안을 접수했는데, 다른 곳에서 암초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인 인사부장이 '비서직'으로 들어온 사람을 '마케팅 부서'에 배치하면 형평에 어긋난다며 제동을 걸었다. 한국인 정서에 어긋난다나 뭐라나.  독일이 보스는 '한국인 정서에 어긋난다'는 그 해괴한 논리에 그만 깜빡 넘어가서 그의 제안을 취소했다.  한국인 인사부장놈( or 님)이 내 앞길을 가로 막은 셈이다.  (물론 나는 이를 갈았지...)

 

그 후에 나는 결혼하고 입덧이 심해서 '미련없이' 그 비서질을 집어치우고 정말 '자유' 인생이 되었다. 한동안 집에서 칩거해야 했으니까.

 

나는 잡지 편집도 했고, 번역도 했고, 프리랜서로 여기저기 글을 팔아 살기도 했다.  프리랜서직은 자유롭긴 한데 돈은 크게 안되더라. 영어 강사질은 돈이 잘 들어와서 좋았다. 할만했다. 그런데 폼은 별로 안났다. 하하하. 그래서 내가 생각해보니 현실적으로 '교수질'이 폼도 나고 자유도 어느정도 보장되고, 뭐 공부가 직업인것 같은데 공부라면 재미도 있으니까 겸사겸사 좋을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교수가 되었다. 그것도 교육관련 전공이라 늘 '사람'을 어떻게 돕고 보호해야 하는지 고민을 하는 편이라 스스로 인성개발도 되는 측면이 있다. 나 원래 성격 개차반에 제멋대로이지만, '교육'을 생각할때만큼은 진지한 편이다. 교수가 되고보니 고민거리도 많고, 앉으나 서나 공부 생각을 하게 되고, 사실 휴일도 없는 편이다. 어딜가나 '공부'가 따라다니므로.  그래도 내 '정신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직업이라 스스로 만족하고 있다. 나는 돈은 먹고 살 만큼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고, 돈대신 정신의 자유를 중요시 하는 편이다. 몸과 정신의 자유, 그것이 확보되어야 숨쉬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나는 내가 뜻한대로 비슷하게 살고 있다.  앞으로 '학자'로서 대성할수 있을지 자신할수 없지만, 나는 즐거운 인생을 살 것이다.  소설가의 꿈을 접은것도 아니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낼것이다.

 

그런데, 내가 내 삶을 다시 시작할수 있다면, (혹은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자연과학' 공부를 해서 연구자가 되고 싶다. 나는 생물학자가 되거나 뭐 자연현상을 들여다보는 자연과학자가 되고 싶다. 이번생에 인문학을 공부했으니 다음생에는 자연과학을 공부하고 자연과학자가 되고 싶다.  뭐 이런 생각을 한다. 그래서, 다음 생을 준비하는 뜻으로, 내가 책방에서 책을 고를땐 두세권에 한권정도는 자연과학 책을 고른다. 그리고 그 책들을 정독한다. 나는 자연과학을 '전공'하거나 대학수준의 과정을 들어본적이 없기 때문에 교양수준의 자연과학 책들을 읽어왔는데, 스승없이 하는 공부이므로 조심스럽게 정독을 하는 편이다. 스승이나 안내자 없이 공부할때, 크게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법은 '검증된' 혹은 '널리 알려진' 입문서에서 시작하여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것이다.  여태까지 잘 가지치기를 해 온 것같다.

 

오늘 고른 책은  이 책이었다. (이세상에는 배워야 할 것들이 널려있고, 세상사는 재미중에서 중독성이 강한것은, '새로운것을 알아가기' 일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연애를 시작한듯,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해 가는 일.

 

 

 

 

[Book] The Lost Art of Walking

 

The Lost Art of Walking: The History, Science, and Literature of Pedestrianism

 

 

The Lost Art of Walking by Geoff Nicholson

 

 

이 책은, 하드커버일때 살까 말까 망설이다가 '비싸다'이러고 돌아섰던 것인데, 근래에 페이퍼백이 나와줬다.  하드커버로 시작해서,  페이퍼백이 나왔단 얘기는 책이 잘 팔려나갔다는 것도 의미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포츠'는... (며칠전에 누군가가 묻길래 조금 생각해보고 대답했는데)...'걷기'이다. '걷기'라면 자신 있으니까.  안타깝게도 달리기는 잘 못한다.  걷기는 잘 한다. 걷기 잘하는데 달리기를 못한다니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난 정말 잘 걷는다.  우리 언니는 내 말을 이해한다.  우리 언니는 정 반대이다. 우리 언니는 달리기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피로한줄 모르겠는데, 걷기는 오래 못하겠다는 것이다. 걸으면 지루하고 어지럽고 달리면 머리가 가볍다고 한다.  우리언니는 나와 정반대인데, 그래서 나를 이해한다고 한다.  난 달릴때 힘들고 어지럽고 걸을때 몸이 가볍고 좋은 생각이 많이 난다. (한때 미친듯이 걸었으나 지금은 통 걷지를 않는다...하지만 내가 이 깊은 삶의 수렁을 벗어나면...언젠가...다시 옛날처럼 웃으면서 활기차게 걷게 될지도 모른다.)

 

걷기 이외에 '수영'을 잘 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한다. 특히 평온한 바다에서 하는 수영을 좋아한다. 바다에서 송장처럼 둥둥 떠 돌아다니는 일을 좋아한다. (플로리다에서 공부할때, 돈 안들이고 할수 있는 오락이 바다에 가서 둥둥 떠다니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잘 못하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스포츠는 '마라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마라톤' 선수들의 몸매가 가장 아름답고 섹시한 몸매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소한의 오직 필요한 근육만 붙어있는, 강인한.  (군더더기 장식적 근육에 대해서는 경멸하는 태도를 갖고 있는 편이다.)  나는 이봉주 선수를 좋아한다.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그냥 그 사람이 믿음직하다.  그리고 또 좋아하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왜 축구를 좋아하느냐 하면...축구니까 그렇다... 박지성 때문도 아니고 그냥, 공원에서 사람들이 축구하는 것을 멀리서 멀거니 쳐다볼때가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을 쳐다본다.

 

그외의 스포츠에 대해서 나는 별반 관심이 없다. 나는 국가대표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국제 행사에서 죽어라고 한국을 응원하는 일에도 별 관심이 없다.  스포츠가 스포츠지 뭐 별건가 싶기도 하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누군가 묻길래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걷기.'

 

언젠가...전처럼.. 하루에 몇시간씩 걷는 그런 나날이 오기를... 걷기를 하면 우울증이 사라진다는 설도 있지만, 그것도 속이 편할때, 배불러서 우울할때의 얘기이다.  만약에 걷기를 통해 우울증을 해결할수 있었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산책나갔다가 바위에서 점프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것이다. 정말 우울할땐, 걷기도 별 소용이 없다. 내가 요즘 걸으러 나가지 않는 이유는, 나 역시 걸으러 나갔다가 키브리지에서 그냥 점프하고 싶어질까봐...  내가 산 걷기전용 신발 두켤레는 먼지만 뒤집어쓴채 내 방구석에 버려져 있다.  점프하면...간단하지...  하지만 생을 그렇게 끝낼순 없는 일 아닌가...

 

 

 

 

[Book] Our Magnificent Bastard Tongue

 

Our Magnificent Bastard Tongue: The Untold Story of English

 

Our Magnificent Bastard Tongue: The Untold History of English by John McWhorter

 

 

작가 이력을 보니 나와 동시대에 태어난 학자인데, 그냥 단순 비교를 하자면, 이 작가가 일찌감치 명문대학을 두루 거치면서 학위를 마치고 역시 명문대학에서 교수질을 하면서 이력을 쌓고 탁월성을 인정받는 그 세월동안 나는 ...뭘 하고 자빠져 있었나...하는 하품같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이 이런식으로 단순무식하게 자신을 저울질 해봤자 도움이 될 것이 없다.  남의 성과와 나의 성과를 비교하지 말고...나의 가능성과 나의 성과를 비교하라고 하지 않았던가?)

 

비도 오고, 피곤도 하고, 학교 가는 대신 동네 책방에 들러서 신간 구경하다가 눈에 띄길래 집어 왔다. 천천히 읽고,  쓸만하다 싶으면 학생들에게 읽기 숙제를 내줘야지.

 

 

2009년 11월 9일 월요일

Andy Warhol Museum 피츠버그, 앤디 워홀 뮤지엄

 

공식 홈페이지: http://www.warhol.org/

 

 

2009년 11월 7일 토요일. 화창한 늦가을 날씨였습니다.  워싱턴에서 펜실베니아주의 피츠버그 까지는 대략 250마일 거리.  중간에 주유, 휴식 시간까지 포함하면 편도 다섯시간을 예상해야 하는 거리입니다.  (하루에 열두시간도 뛰는데 편도 다섯시간정도야~  헤헤)

 

 

2009년 현재 입장료는 성인 15달러, 학생 8달러 입니다. 오전 10시에 열고 오후 다섯시에 닫습니다. '개인 미술관'의 경우 사진 촬영을 허요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앤드루 와이어드의 브랜디 와인 리버 뮤지엄 (http://americanart.textcube.com/43)에서도 그러하였고,  다른 대부분의 '개인 이름'을 딴 미술관들이 사진촬영을 금지합니다. 아무래도 '개인 미술관'의 협소성때문에 이런 방침을 취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한정된 소장품을 관람객들이 사진으로 다 찍어가버리거나,  이를 언라인으로 유포해버리면 미술관 소장품의 매력이나 신비감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하면, 조금 아쉽지만 한편으로는 사진을 '안찍어도 된다'는 안도가 느껴지면서, 숙제를 면제 받은 가벼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냥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즐기다가 나오면 된다는 안도감.  기록하지 않아도 된다는 가벼움. 그래서, 덕분에 편안하고 쾌적한 미술관 구경이 되었습니다. 

 

미곳을 편안하게 보는 방법은, 일단 1층 입구에서 입장표를 산 후에 구석의 '와홀 소개 전시실'을 대충 살펴봅니다. 이 곳에는 와홀의 일생의 기록이 정리되어 있어서 앤디 와홀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들이 대략 그가 누구이고 무엇을 했는지 살펴볼만 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이미 앤디 와홀 관련 책 한권을 읽고 난 후라서 이 소개실은 대충 보고 자리를 떴습니다.  (책 한권 읽고, 관심이 생겨서 와홀 미술관을 찾은 것이니까요).

 

이제 엘리베이터를 타고 7층 (맨 꼭대기층)으로 이동합니다. 7층에서부터 한층씩 내려오면서 전시회 구경을 하는 것입니다.  마침 제가 방문했을 때에는 이곳에서 Shepard Fairey 의 Supply and Demand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6층에서는 와홀의 작품전시와 함께 Super Trash 라는 제목의 '쓰레기같은 영화 포스터' 전시회가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5층에서는 초기의 팝아트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실크스크린의 초상화 작품들, 그리고 꽃무늬 작품들,  그리고 그가 제작한 식품 상자 작품들등 친숙하면서도 정다운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4층에도 기획전과 와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3층에는 그의 타임 캡슐상자들과, 그 상자를 지키는 개 (박제개)가 있었습니다. 그의 Interview 잡지 표지들도 전시되어 있었고요. 2층도 와홀 전시실인데, 내부 전시 준비중이라 창고용 상자들만 쌓여있었습니다. 이것도 작품인가 싶어서 들여다봤지만 =) 그냥 상자였지요.

 

1층에는 매표소, 와홀 소개 전시장, 그리고 그의 설치 작품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입구쪽에 기념품 가게가 있군요.  지하에는 카페가 있습니다.

 

 

 

 

 

 

'미국 미술' 전문 블로그를 표방하고 있는 이 블로그를 꾸려나가면서, 앤디 와홀 얘기를 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심심할때마다 그를 소개하는 소책자를 한권 여러차례 통독을 한 바 있습니다.  조금 더 시간이 흘러서 와홀 차례가 되면 그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로 하고, 기왕에 미술관을 방문했으니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개만 해보겠습니다.

 

앤디 와홀 (1928-1987) 은 슬로바키아 출신의 이민자 부모 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바로 이 도시 피츠버그에서 태어나 성장했으며, 현재의 카네기 멜론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니까 이 도시에서 나고 자란 미술가인 셈입니다. 그는 맨해턴에서 상업화가로 성공한후 그의 천재성을 발휘하여 이런 저런 미술 작업을 시도하게 되지요.  한때는 미술 작업에서 은퇴한다고 선언하고 영화 작업에 몰두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저런 매체를 통해 앤디 워홀이라는 이름을 알게 되는데, 아마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마릴린 몬로'의 초상화가 아닐까 합니다.  반복되는 여배우의 이미지. 워싱턴에 와서 시내는 몇년간, 워싱턴및 뉴욕, 그리고 대도시의 유명 미술관들을 돌아다니다 보니 앤디 워홀의 작품도 흔하게 보게 되었습니다. 어딜가나 현대 미술 전시장에 가면 등장하는 깡통 그림, 여배우 그림, 때로는 하도 그의 작품이 '널려'있으니까 시시하게 보이기까지 하는데요.  관심이 생겨서 책을 찾아 보니 예술의 여러분야를 설레발을 치고 돌아다니며 작업을 해서 이 사람 예술세계는 정리하기도 쉽지가 않아 보입니다.  가령 '에드워드 호퍼' 이 사람 예술세계를 정리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평생 자기 스타일을 고수한 사람이라 오히려 평하기는 편하지요.  워홀은, 너무 여러가지 작업을 중구난방으로 해서, 대책이 없습니다. 피카소도 그런 편이지요.  뭐 심하게 말해서 '잡놈'기질이 있다 이것이지요. 그래서 조금 삐딱하게 말해서, '싸구려 미국 상업주의에 편승한 잡놈같은 예술가' 정도로 파악을 하게 된 것 같습니다.

 

 

 

카네기 미술관에 걸려있는 재클린 케네디 초상화 연작 (클릭하면 커집니다)

 

그런데, 앤디 워홀 뮤지엄에 가서 7층부터 차례차례 내려오는 사이에 저의 이런 시각에 큰 변화가 오고야 말았습니다.  앤디 워홀 뮤지엄을 나서면서 저는 깨끗이 그의 예술성과 천재성에 백기를 들고 말았지요. 그는 '대단한'  '잡놈'이었던 것입니다.

 

특히 제가 워홀에게 반한 대목은, 그의 '전투복 무늬' 연작에서였습니다.  미국의 여기저기 다니다보면 그의 '예비군복 무늬 (얼룽덜룽한 위장복 무늬)' 작품들이 보이는데,  저는 왜 그것이 '예술'이 되는지 이해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워홀 뮤지엄에는 이 전투복 무늬의 작품들이 여러점이 걸려있었는데, 조금씩 색깔이 변하면서 마지막에는 핑크색 주조의 전투복무늬가 되는 것입니다.  핑크색 얼룽덜룽한 전투복 무늬!  상상을 해보죠. 만약에 우리들이 전쟁터에 핫핑크, 형광 분홍색이 얼룩얼룩한 위장복을 입고 나가서 싸우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전쟁 하겠다는 겁니까? 하하)  워홀은 전쟁에 대하여 한마디도 안하면서, 평화를 역설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가 그린 모택동 초상화가 유명한데, 저는 그 모택동 초상화 볼때마다 기분이 안좋았죠. 아무튼 한국전 막바지에 인해전술로 밀고 내려온 중공군을 지휘하던 사람이니까.  그런데 워홀 뮤지엄에 걸린 모택동 초상화 연작을 보면, 그의 입술에 연분홍색이 칠해지고, 노란색도 칠해지고,  뭐랄까, 힘이나 폭력성이 거세된, 어린아이들 상상속의 평화로운 색감이 넘치더란 것이지요.  워홀이 꿈 꾼 세계는 장난과 쾌락이 가득찬, 가벼운, 심각하지 않은, 명랑한, 유치한, 폭력이 설 자리가 없는, 그런 세상처럼 보였습니다. 

 

 

카네기 미술관, 앤디 워홀의 Love

 

 

 

그래서, 15달러를 주고 앤디 워홀 뮤지엄 구경을 하고 나오면서, 그 돈 15달러가 억울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꽤나 많은 워홀의 작품들을 구경해왔지만, 그리고 그의 소개책자를 통독하면서 그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했지만, 내가 수긍하거나 발견할수 없었던 그의 천재성을 저는 그의 전시관을 층층이 둘러보며, 시기별로 분류 정리된 전시물들을 챙겨 보면서 문득,  사과가 툭! 하고 떨어지듯, 문득, 깨달았다고 할수 있지요.  워홀 뮤지엄에 가지 않았더라면, 저에게는 아직도 워홀이 그저 '싸구려 상업주의에 영합한 운좋은 잡놈' 정도에 불과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저는 앤디 워홀을 사랑할수 밖에 없을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만나고 난 후에 제 기분이 많이 가벼워졌음을 실토합니다. 인생은 여전히 겨울외투처럼 무겁지만,  그러나 우리는 형광 분홍색처럼 가볍고, 유치하고, 유쾌할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가볍게, 유치하게, 밝게! 

 

 

 

 

 

 

뮤지엄 샵에서 15달러 주고 산 셔츠: I never fall apart because I never fall together. 나는 망가지지 않는다 (혹은 나는 실패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망가질것이 없으니까.

 

 

이 셔츠의 문구를 봤을때, 문득, 음, 그렇지. 나 빈손으로 와서 한 세상 잘 놀았지...잘 놀고 있지...지금 사라진대도 내가 억울할 것은 없지 않은가... 깨달음 (환각과 같은 깨달음일지라도).

 

 

피츠버그의 '카네기 박물관' 소속 전시관이 네가지가 있습니다.

 1. 카네기 미술관

 2. 카네기 자연사 박물관

 3. 앤디 워홀 미술관

 4. 카네기 과학관

 

이중에서 제가 이날 가 본곳은 카네기 미술관과 자연사 박물관, 그리고 워홀 미술관이었지요.  다음에 피츠버그에 가면 카네기 과학관을 가보려고 합니다. 물론...미술관도 또 둘러보고 싶고요.

 

 

 

앤디 와홀 이야기는 조금 더 시간이 지나야 쓸 수 있을것 같아요. 지금 써야 할 작가가 많이 밀려있거든요 = )

 

 

2009년 11월 8일 일요일

Starbucks 가을 곰인형

 

스타벅스에서 할로윈 기념으로 판매하던 곰인형.  할로윈이 지난후 반값에 판다. 그래서 집에 데리고 왔다.

2009년 11월 6일 금요일

[Film] The Men Who Stare at Goats 와 텍사스 총기 난사 사건

 

http://www.imdb.com/title/tt1234548/

 

2009년 11월 5일 텍사스의 어느 군부대에서는 현역 소령 그리고 정신과 의사인 한 사나이가 총기를 난사하여 십수명을 살해하고 수십명을 부상시키는 사건을 저질렀다.

 

2009년 11월 6일 미국 전역에 The Men Who Stare at Goats 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조지 클루니, 이완 맥그리거, 케빈 스페이시가 출연하여  인간살상 전쟁에 대한 의문부호를 하나 던진다.  이 의문부호는 시의적절하면서도, 과연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지는 역시 미지수이다.  영화 제작진 역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가 이 세상에서 별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영화 말미에 냉소적으로 예언하고 있다. 영화의 운명까지도 예견한 영화다. 

 

웃긴다. 통쾌하다. 그리고 세상 일들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게 한다.  미군 당국자는 텍사스에서 총기를 난사한 그 사람이 사망했다고 발표를 하더니 몇시간이 흐르자 그가 현재 생존하고 있다고 말을 바꿨다. 죽지도 않은 사람을 죽었다고 '공식발표' 할수 있는 그들의 시스템이 의심스러워진다.  이런식으로 보자면 의문은 끝없이 이어지게 될 것이다.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 미국은 언제까지 병력을 보낼것인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된 후에 정녕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  미국 시민도 아니면서 나 역시 미국의 대 이라크전에 넌더리가 나는 판국이다.  영화에서, 그리고 현실적으로는 미국 자국내 군부대에서 이런 '피로증상'들이 서서히 수면위로 부상한다. 담배나 마약을 금지시키듯, 전쟁을 금지시킬수는 없는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