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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0일 일요일

[PWAP2] 축제 Festival

1934-1934년 실시된 예술가를 위한 공공기금 정책의 후원으로 탄생한 작품. 축제 (Festival)

 

 

(사진 클릭하시면 커집니다)

 

제목 : 축제 (Festival) 1934년 제작

작가: Daniel Celentano

        Born: New York, New York 1902 Died: 1980

oil on canvas mounted on fiberboard 48 1/8 x 60 1/8 in. (122.3 x 152.8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ransfer from the U.S. Department of Labor 1964.1.55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1st
Floor, West Wing

 

전편의 '연립주택' 그림보다 조금 더 큼직한 크기의 그림.  작가이름이 다니엘 센렌타노 인 것으로 보아, 카톨릭 종교를 가진 이탈리아계 이민자 이거나 그 후손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림 왼편 건물의 간판 부분에 AGHETTI 라고 적힌 것으로 보아 SPAGHETTI (스파게티) 가게임을 알 수 있고,  축제행렬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성녀의 모습은 성모 마리아 처럼 보인다.  그 앞의 행인 둘이 성호를 긋고 있는 것도 보이고 이들은 교회당 앞을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행렬뒤에 따라오는 두개의 깃발이 보이는데 하나는 미국의 성조기,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의 삼색기이다.  따라서, 여러가지 정황으로 보아 이곳이 미국의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구역이고 지금은 종교적인 축제를 즐기고 있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축제일에 우리는 무엇을 하는가?  고단한 일상에서 잠시 틈을 내어 춤을 추고 놀기도 하고, 모처럼 길거리에서 주전부리 거리를 사 먹기도 한다. 높은 연단에서 악단이 축제 음악을 연주하고 행인들 중에 몇사람은 신나게 춤을 춘다. 골목길 구석진 곳에서는 골목 시장이 형성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장을 보기도 하는데, 그 골목 뒷쪽으로 가면 공장의 굴뚝이 보인다.

 

그림 중앙의 리어카의 행상은 이탈리아식 소세지와 치즈 덩이를 올려놓고 무게를 달아 팔고 있는 듯 하다.  자그마한 이탈리아 빵 접시를 들고 서 있는 빵가게 점원도 보인다. 역시 왼편 건물 구석쪽에 빨래가 널려 있고.

 

이 그림 앞에 섰을때, 내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영화 대부 (The Godfather)의 1편, 2편 장면들 이었다.

 

 

시칠시아 섬에서 나고 자란 소년 '비토 꼴리오네'는 죽고 죽이는 오랜 복수극 때문에 온 가족이 몰살을 당하고 간신히 혼자 몸으로 미국으로 건너가는 배에 몸을 싣는다.  소년 비토 꼴리오네가 내다보는 창에 자유의 여신상이 비치고 있다. 이 장면은 대부의 2편에, 아버지의 어린시절과 청년시절을 그리는 대목에서 나온 것이다.

 

 

그는 현재 뉴욕 맨해튼 남쪽 (Lower Manhattan)의 리틀 이탤리 (Little Italy),  오래전부터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이 모여 살던 구역에서 청년으로 성장하여 가게 점원으로 성실하게 일하며 살게 되는데, 그 일자리마저 동네 깡패녀석의 조카에게 빼앗기고 만다. 가게 주인은 비토를 무척 아꼈지만, 동네 깡패의 요구를 들어 줄 수 밖에 없어 비토를 해고하면서도 무척 안타까워 한다. 주인이 따라 나오면서 그에게 먹을 것을 싸 주는 장면은 다시 생각해도 눈물이 나게 만든다.  비토는 졸지에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린 실업자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때 우연히 '도둑 친구'를 알게 되어 그를 도와주다가 그만 결국 '대부님'의 길로 접어 들게 되는 것이다.

 

젊은날의 대부 비토 꼴리오네가 '어떻게 먹고 살것인가, 가족들을 어떻게 먹여 살릴것인가?' 골똘히 생각하며 걷던 맨해튼의 이탈리아 거리. 그리고 그가 내린 결론.

 

 

비토 꼴리오네는 이 이탈리아 거리의 축제일에, 온통 거리가 축제로 들끓고 시끌시끌 할때,  밴드가 연주하고 사람들이 몰려다니고 춤추며 시끄러운 바로 그 시간에 이 거리의 지붕을 타고 이리저리 넘나들며 이 동네 깡패조직원들을 처치해 나간다.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느라 그 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지 못하고,  비토 꼴리오네의 계획은 완수된다.  그는 이 골목 상인들과 주민들을 괴롭히던 깡패녀석들을 처단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결국, 그는 그가 죽인 깡패녀석의 그 깡패질을 물려 받은 것이고,  이곳은 그의 '나와바리 (?)'로 전락하고 마는 것이다.

 

 

 

대부 2편에서 축제가 무르익을 무렵 로버트 드니로 (Robert DeNiro)가 연기한 젊은날의 비토 꼴리오네가 깡패조직원들을 하나하나 쓰러뜨릴때 이를 지켜보던 그 긴장감, 감동은 매우 특별한 경험이다.  그래서 나는 대부 1,2,3편의 디비디를 샀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이 2편, 젊은날의 아버지의 풍경이다.  말론 브란도가 압권이긴 하지만, 나는 젊은날의 대부, 로버트 드니로가 연기한 대부를 제일 좋아한다.

 

뉴욕 맨해턴에 가면 지금도 '리틀 이탤리' 그리고 이어져 있는 '차이나 타운'은 여전히 관광 명소이다.  나는 두차례 이 거리를 산책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는데, 여전히 뉴욕에 갈때마다 리틀 이탤리 거리를 걷고 싶어진다. 지금 가봐야 늘어선 식당, 그리고 허술한 건물들 뿐이지만, 그래도 영화속을 걷는듯한 느낌이 들고, 이탈리안 액센트의 식당 종업원들이 인사를 날려줄때 기분도 유쾌해지고 그렇다.

 

다니엘 셀렌따노의 이탈리아 거리 축제의 그림은, 역시 비슷한 시기를 살았을 젊은날의 비토 꼴리오네의 장면이기도 하다. 이 그림을 보면 그래서 영화속의 축제 음악이 머릿속에 흐른다.  우리는 각자의 추억으로 그림을 혹은 대상을 만난다. 

 

september 20, 2009 your redfox.

[PWAP 1] 서민용 연립주택 Tenement Flats

1929년 미국의 주식시장의 붕괴와 그 여파로 '대공황'이 불어닥쳐 1930년대 미국 전역이 시련을 겪을때 예술가들 역시 고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1933년 3월에 취임한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러한 경기침체를 벗어나기 위하여 뉴딜 (New Deal)정책을 펼치면서 공공사업을 확충하고 농산물 수급을 조절하는 둥 고용증대및 여러가지 경기부양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런 공공사업의 일환으로 '예술가'들을 위한 기금을 조성하여 공공 예술 사업을 펼쳤다. 1933년 12월부터 1934년 6월 사이에 미 전역에서 3,749명의 예술가들이 15,663 편의 다양한 장르의 예술작품들을 창조해 냈다. 회화, 벽화, 조각, 인쇄, 드로잉, 공예품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된 작품들의 공동의 주제는 '미국의 풍경 (American Scene)'이었는데, 경제 공황시기를 살아가는 미국의 풍경이라면 어떠한 소재라도 상관 없었다.  소재에 제한을 둔 것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자연풍경, 노동의 현장, 서민들의 삶의 모습, 당시의 유흥, 오락 장면등 다양한 소재의 작품들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 작품들 중에서 루즈벨트 대통령 자신이 32편을 골라 백악관에서 소장했고, 다수의 작품들이 당시의 상원, 하원 의원이나 부유한 정부 관리, 기업인들에게 팔려 나갔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집무실에 걸린 이 프로젝트의 작품은 다음회에 소개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연립주택' 그림을 소개하고 싶다. 이 그림 역시 백악관으로 간 작품이다.

 

 

제목: Tenement Flats (1933-1934 제작)

 

작가: Millard Sheets

Born: Pomona, California 1907 Died: Gualala, California 1989

유화: oil on canvas 40 1/4 x 50 1/4 in. (102.1 x 127.6 cm.)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Transfer from the U.S. Department of the Interior, National Park Service 1965.18.48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현재 위치:1st Floor, West Wing

 

가로 127.5 센티, 세로 102.1 센티의 큼직한 크기의 그림 가득히 1930년 초반의 미국 캘리포니아의 어떤 서민용 연립주택의 풍경이, 사람들이 담겨있다.  앞쪽에 보이는 연두색 건물은 이층짜리 연립이고, 뒤편 윗쪽의 연립은 3층이나 4층짜리로 보인다. 언덕위에는 빅토리아 고딕 양식의 저택도 보인다.

 

이 그림의 부분 부분을 상세히 카메라에 담아 보았다. 전체그림을 한꺼번에 볼때와 달리 작은 부문들에 집중하여 볼때 이 그림이 새롭게 다가오는데 전체적으로 볼때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들의 개성이나 아름다움이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빈양동이를 허리에 끼고 아이의 손을 잡고 가는 여인은 옆에서 조롱조롱 떠드는 아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다. 중앙의 어린 소녀는 아기를 안고 어르고 있는데, 검은 고양이, 흰고양이가 각자 한가롭게 자신의 일에 몰두해 있다.  플랑멩고의 분홍을 연상시키는 계단참의 분홍색이 전체 분위기를 경쾌하게 하는데 일조한다. 여인들의 흰옷이나 고양이의 털 빛도 역시 환하게 빛난다.

 

 

 

 

흰 고양이가 계단 아래 '반지하층'의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고, 역시 희게 빛나는 옷을 입은 두 여인이 뭔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계단 그늘에서는 걸음마쟁이를 데리고 한 여인이 앉아있다.  누나인지 엄마인지 가늠이 안간다. 네 사람들의 시선이 왼쪽으로 향하고 있을때, 왼편의 흰 고양이는 뒷쪽을, 오른편 의자에 앉아있는 여성의 시선은 오른쪽으로 시선을 보내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시선의 균형감을 이루고 있다.  마치 계단이 오른쪽으로 경사지고 다시 왼쪽으로 이어지듯 시선도 한쪽으로 경사지는 듯 하지만 반대쪽으로 향하는 시선이 있어 변화와 균형감이 보인다.

 

 

 

의자에 앉아있는 여자는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다. 작업대에서 일을 하는 딸아이를 감독하고 있거나 일을 잘 하도록 잔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잔등의 X자 표시를 보아하니 앞치마를 입고 빨래를 하고 있는 듯. 그녀의 뒤에 빨랫줄이 걸려있고 희게 빛나는 빨래가 걸려있다.  옥외용 간이 침대인 것일까?  검은 고양이가 역시 소녀를 향해 앉아있고, 문이 열려있다.

 

 

2층의 오른쪽 집엔 엉성하고 남루해 보이는 빨래가 몇장 널려있다. '가난이야 한낱 남루 (서정주)'가 아닌가? 해진 옷을 입고, 깨진 유리창을 갈아 끼우지도 못하고 사는 형편이지만, 다섯개의 꽃화분이 이 집 사람들의 낙관적 심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왼쪽 집 유리창 밖으로 한 여인이 머리를 내밀고 이웃친구 두명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빨래를 난간 손잡이에 걸쳐놓기도 했다.

 

 

 

이 초록색 연립과 통로를 함께 쓰는 윗편 연립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그곳에서도 여인들이 빨래를 널거나 혹은 오전의 일과를 마치고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왼쪽 구석 계단 아래 뒷쪽으로 뒷모습만 보이는 두명의 행인이 걸어가고 있다. 뒷모습이지만 두 여인네가 아닐까 상상을 하게 된다.

 

 

 

이들의 머리 위로 더 높은곳에 빨랫줄이 연결되어 있고 빨래가 깃발처럼 휘날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림 속에는 단지 두채의 연립이 보이지만, 이 연립들 주변에서 비슷비슷하면서도 각기 다른 연립주택들이 오밀조밀 붙어 있는 듯 하다. 이건물에서 저건물로 빨랫줄을 연결하여 빨래를 널은 것 같다.

 

 

 

그리고 저 언덕위, 연립이 서있지 않은, 빅토리아식 고딕 주택 건물이 서있는 언덕위로 한 사람이 허리를 굽힌채 올라가고 있다.  언덕위에 고급 주택이 서 있는 것으로 보아 한때 이곳은 부유층의 저택들이 서 있던 곳이었으리라, 그러다가 서서히 서민용 연립주택지로 변화해 갔으리라 추측된다.

 

그림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이 그림에는 '소리없는 아우성(유치환)'과 같은, 혹은 깔깔대고 웃는 듯한 빨래가 휘날리고, 그 빨래를 해서 널었을 여인들의 웃음소리와 두런거림이 있고, 고양이의 양양 거리는 소리와, 아이 어르는 소리와, 햇살이 빨래에 부딪치는 소리가 가득하다.  가난뱅이 구역이지만, 경제공황으로 형편도 좋지 않지만, 이 풍경은 우리의 시선을 붙잡으며 '햇살도 가득하니 잠시 쉬었다 가라' '그늘에 앉아서 바람이나 좀 쐬어가라' 하고 말을 거는 듯 하다.

 

유신시대의 아이였던 나 역시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엄마 손에 이끌려 상경했을때, 우리 식구들은 단칸방에서 살고 있었다. 나까지 포함하여 여섯명이 조그만 방 한칸에서 살았다. 우리가 살던 대지 30평의 무허가 건물에는 네개의 방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도 가장 구석의 작은 방에서 살았다.  안방차지를 하던 사람은 트럭운전사네 집이었는데 그 집은 식구가 일곱이었다. 안방 건너 건너방에 살던 사람들은 새댁네였는데 세식구였다. 대문간 가까이 살았던 집은 네식구였는데, 그 작은 방에서 '무허가 미장원'까지 했었다. 그런 무허가 셋방살이 집에서 나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4학년까지 살았다. 그후로 우리는 장미꽃이 피고 잔디가 깔린 새장같이 예쁜 집으로 이사를 갔다.  내가 또다시 셋방살이를 하게 된 것은 결혼과 함께였다. 위의 그림과 아주 흡사한 연립주택에서 살면서 나는 때로 행복했고, 때로 불행했다. 때로는 빨래 한장 내다 걸수 없는 비좁음에 숨이 컥컥 막히기도 했고. 어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으며 가끔 노래를 부르거나 가끔 울기도 했다.

 

이따금 스미소니안 미국미술관에 가서 이 그림앞에 설 때마다, 나는 가난하고 우울했지만, 그래도 늘 햇살이 비치던 빈민가의 내 유년시절과, 역시 숨막히고 우울했지만, 거기서 태어나고 자라나던 내 아이들 생각을 하면서 웃게 된다. 미국 사람이 그린 미국 풍경을 보면서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인 내가 고향에 돌아온듯 공감할수 있는것, 이것은 예술이, 예술혼이 갖고 있는 보편성에 기인한 것이리라.

 

그림을 정리하고 글을 쓰면서 약 두시간이 소모되고 말았는데, 글을 쓰는 내내 나는 웃고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내가 좋아하는 그림에 대해서 상세하게, 세세하게 종알종알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아, 나는 아마도 그래서 미국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서...아마도 그럴것이다...)

 

september 20, 2009 your red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