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홍이가 안보이는 빈집이 썰렁한것이...
왕땡이도 찬홍이도 나도 온종일 기운이 없는데
요놈은 하루종일 전화 한통 없다.
괘씸한 놈.
그런데, 요 기분이 뭐랄까
딱
임신해서 배 불러가지고 숨 헐떡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낮잠 자고 깨어나보니
배가 푹 꺼지고
애가 없어진것 같은
그런 황당한 공허.
아, 자식이 웬수로다.
괘씸한 놈, 전화 한통이 없다뉘.
에잇, 수박이나 썰어 먹자.
지홍이가 안보이는 빈집이 썰렁한것이...
왕땡이도 찬홍이도 나도 온종일 기운이 없는데
요놈은 하루종일 전화 한통 없다.
괘씸한 놈.
그런데, 요 기분이 뭐랄까
딱
임신해서 배 불러가지고 숨 헐떡거리고 돌아다니다가
낮잠 자고 깨어나보니
배가 푹 꺼지고
애가 없어진것 같은
그런 황당한 공허.
아, 자식이 웬수로다.
괘씸한 놈, 전화 한통이 없다뉘.
에잇, 수박이나 썰어 먹자.
2010년 8월 21일 토요일 맑음
다음주부터 UVA에서 주니어 생활을 시작하는 지홍이가 오늘 기숙사로 이사를 했다.
오전에는 무슨 시험을 치른다고 새벽부터 시험장으로 향했고, 정오쯤에 픽업하여
새로지은 밥과 국과 고기를 온가족이 함께 식탁에 모여서 먹고
어제 챙겨놓은 보따리들을 챙겨서 집을 나선것이 오후 한시반.
중간에 주유소에 들러서 차에 개솔린을 가득 채웠고
Bank of America 에 들러서, 내 비상금 계좌에서 현금을 꺼내서 지홍이가 급히 쓸 용돈을 챙겨주었다.
자동차로 두시간 거리.
오후 네시에 길을 헤멜것도 없이 곧바로 지홍이에게 배정된, 법과대학 맞은편의 기숙사동에 도착.
한시간 가까이 짐을 풀어주고, 곧바로 집을 향해 출발했다.
녀석의 방을 정리해주고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고 싶었으나
곧바로 기숙사 오리엔테이션 행사와 만찬 행사가 있다고 해서, 짐만 대충 옮겨주고 빠이빠이하고 떠났다.
녀석은 내 차를 향해 손을 흔드는 듯 하더니
주먹으로 눈을 가리고 서있다.
제 아빠와 공항에서 헤어질때도 저러고 서서 한참을 울었다고 하더니
또 그러고 서있다.
나는 그냥 차를 끌고 기숙사 구역을 빠져나와 도로를 달리다가, 길가 아웃백 스테이크에 차를 세우고
이른 저녁을 먹었다. 찬홍이는 돼지 갈비구이를, 나는 썰로인 스테이크를 먹었다.
역시 식당을 출발한지 두시간만인 여덟시 반에 집에 무사히 도착.
지홍이네 학교는 집에서 왕복 네시간 거리이므로 부담없이 아무때나 다녀올 거리라서 참 좋다...
멀리 떠나보낸것 같지가 않다. (나는 얼마나 복이 많은 엄마인가.)
돌아오는 길에 찬홍이에게, "학교가 가까워서 참 좋구나. 너도 그냥 UVA들어가라"고 부탁을 했다.
찬홍이도 UVA에 들어가 준다면 좋겠다.
한국을 떠나온지 만 8년이 넘었고,
미국땅에서 나혼자 애들을 거느리고 살아온 세월은 그중 절반쯤 된다.
만 4년간 나 혼자 애들을 키우고 살았고
지난 3년간은 애들 아버지가 함께 있어줘서 의지가 되었었는데,
이제는 다시, 나를 중심점으로 가족들이 한국에, 샬롯츠빌에 떨어져있다.
내 가족들이 나를 의지하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을 그들의 안식처로 알고 있으므로
나는 내가 중심점처럼 여겨진다.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겠으나, 나는 특별히 임무가 무겁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나는 눈물이 나올것 같으면 어금니를 꽉 물고, 그 순간을 모면하는데 익숙해졌다.
정글에서 살아남는 방법의 한가지로, 나는 내 가족들 앞에서 눈물을 질금거리지 않는 노선을 선택했고,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나가고 있다.
마당에서 울고 서있는 녀석을 놓아둔채 떠나온 내 속타는 심정을, 세상의 엄마들은 모두 알 것이다.
내 눈에는 그 아이가 세살짜리 꼬마처럼 보인다.
내가 안고, 업고, 손을 잡고 걸음마를 시켰던 그 아이가 마당에 그대로 서 있는 것이다.
이제 어른이 되어서 내게 돌아와주기 바란다.
이제는 내가 의지할수 있는 어른이 되어서 나를 찾아주길.
아들은 울어도 좋다.
하지만 엄마는 죽을때까지 자식앞에서 울지 않겠다.
집 떠나기 전에 아파트 현관 앞에서 지홍이와 찬홍이
매일 왕눈이가 오줌을 뿌려대는 현관 앞 베고니아 화분 앞에서, 형제.
형의 짐을 모두 차에 날라다 실어놓은 찬홍이
베고니아 화분에 걸터 앉아서
지홍이에게 배정된 기숙사 건물
저기 보이는 지홍이의 삼양라면 박스~
현관에서 내다본 풍경.
나무밑 은색 자동차 ==> 내꺼.
지홍이의 기숙사 건물 이름: 보이드 하우스
현관 문 열고 들어가면, 거실에 해당되는 홀이 있고,
방 두개가 나란히 있다.
방 하나를 두명이 사용한다. (방 하나에 침대두개, 책상 두개, 옷장 두개)
그러니까 네명이 거실과 부엌을 공유하여 생활한다.
부엌시설은 생각보다 넓어 보일정도였고, 냉장고는 우리집 것 만했다. 네명의 학생이 공유하기에 넉넉해보였다.
나는 그냥 침대보 씌워주고, 정리좀 해주고, 나머지 짐은 알아서 하라고 그러고 나왔다.
부엌이 있어서 밥 해먹을수 있으므로, 밥 해먹을 도구 모두 챙겨서 줬다.
(책상위에 라면 한상자, 그 위에 집에서 쓰던 냄비가 보인다).
사실, 기숙사 살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해전에 내 조카가 내가 공부하던 대학으로 유학을 왔을때
내가 데리고 다니면서 필요한 물품을 사서 기숙사 살림을 챙겨준 적이 있다.
그때의 기억을 더듬어서, 이번에도 대충대충.
헤어지기 전에
서로 얼굴을 맞대고 작별 드라마를 연출한 지홍이와 찬홍이.
만 3년 차이로 태어나 그동안 오랫동안 떨어져 지낸적이 없었던 형제이다.
이제는 떨어져서 지내야 한다.
가족은 떨어져있건 함께 지내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어, 그 끈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 믿음으로 나 역시 하루하루를 버틴다.
우리들은 잘 살아낼 것이다.
8월 하순의 토요일 아침. 여름이 간다고 매미가 맴맴.
이것은, 어제 오후에, 우리집 베란다에 널어놓은 타월에 날아와 쉬고 있는 매미님.
나중에 포르르 날아가버렸다.
키브리지 아래 담벽의 낙서 : This wall should be in a museum! 이라고 씌어있다.
목백일홍이 하얗게 피어있는 운하의 돌벽길.
하버가는 길, Flour Mill 빌딩 측면의 오피스 유리창. 발상이 재미있었다.
하버, 스타벅스에서 물 한병. 열어서 마셔보니 광천수였는데
물 마시다 들여다보니, 칼슝이 4%가 들어있단다. (그런데 하루 권장량의 4%라는 내용같다.) 뭐 없는거보다는 낫겠지. (요즘 칼슘 섭취에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물에 칼슘 들어있다니까 반갑다.)
오늘 오후에, 지팔군을 기숙사에 데려다 주고 살림을 차려주고 와야한다.
오전에 시험 치고, 오후에 출발해야 한다.
어제 엔진오일 갈았고, 준비물 다 챙겼고.
이제 시험치러간 지팔이 픽업하고, 차에 기름 채우고, 점심 먹이고, 출발하면 된다.
집에서 두시간반 거리이니까, 그리 멀것도 없고,
아주 멀리 보내는 것 보다 마음이 한결 편안하다.
어제 나가서 신발이며 옷을 좀 사줬더니, 애가 소풍가는 어린애처럼 좋아한다.
내 눈에는 지팔이가 아직도 유치원생처럼 철없는 애로 보이는데, 아무튼 이제 혼자 힘으로 밥해먹고 공부하고 살아내야 한다. 잘 해내기를.
아침 일곱시에 포토맥 애비뉴 도착. 조지타운까지 왕복 7마일 90분.
돌아오는 길에 동네 Farmer's Market 이 열렸길래, 빵과 수박을 사가지고 왔다.
즐거운 아침 소풍.
포토맥 애비뉴에서 철교로 진입하는 입구에 요즘 Stinking Passion Flower 가 무리를 지어 피어있다.
이 꽃은 연보라색이고 공상과학영화 제작할때 '우주선 모형'으로 쓰면 좋겠다 싶은 '매우 수학적인 (?)' 형태를 유지하는 꽃인데, 향기가 매우 특이하다. (썩은 베이컨 냄새 같은 독한 고기 냄새가 난다).
거미줄은 눈에 보이는것 만큼 사진기에 담기가 힘들다.
오늘은 그래도 잘 찍힌것 같아 기쁘다.
키브리지 앞 절벽. 저 쪽에 내 그림자.
평소에는 저쪽 절벽위에서 바람을 쐰다.
내가 서 있는 곳은, 지난주에 '요가하는 여자'가 거꾸로 서 있던 곳.
내 평소 자리는 저쪽 절벽이다.
저기 가면 생각나는 사람: P국장과 K 선배.
걸음이 빠른 나는 산책을 나오면 한달음에 여기에 도착한다. 그리고 여기 앉아 거북이놀이를 하염없이 즐기시는 P선생을 마냥 기다리고 있어야했다. (우리집에 거북이놀이하는 P선생만 있는게 아니다. 달팽이놀이하는 찬홍이도 있다. 나는 가끔 찬홍이에게 묻는다 -- 찬홍이 어떻게하면 너같이 그렇게 천천히 걸을수가 있뉘?)
K선배는 걷기 선수였다. 걸음이 빨랐다. 몇번인가 함께 여기까지 걸어와서 앉아서 한참 바람을 쐬었었다. 어느 이른 겨울 아침에는 서로 방향이 엇갈렸는데 (나는 이미 집으로 가고 있던 중인데, 저쪽에서 걸어오셨다) 그래서 다시 이 절벽에 함께 와서 내 가방에서 고구마 찐것을 꺼내서 함께 먹었었다. 그날 내가 가방에서 털모자를 꺼내어 깔고 앉으라고 하니까, 남의 모자를 어떻게 깔고 앉느냐고 무척 미안해하셨다. 모자가 방석이 되면 안된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털어서 쓰면 되는 것이지. 오늘 아침 공기가 차고, 상쾌해서 지치는줄 모르고 걸었는데, 날씨가 이렇게 가을같이 상쾌하니 K선배와 가을, 겨울 걸으러 돌아다닌것이 생각났다.
절벽 아래
티라노사우러스
매우 금요일 오전 여덟시부터 열두시까지 열리는 동네 Farmers Market (장터).
찬홍이네 학교 옆 공원에서 열린다.
산책을 마치고 집에 오는길에 장이 선것이 보이길래 들렀다.
이 아이스크림 가게의 아이스크림은 단맛이 적고 고소하다.
전에 P선생과 와서 3달러짜리 제일 작은 컵을 사가지고 둘이 먹은적이 있다.
오늘도, 저 꼬마아이처럼 서서 아이스크림을 받아서 먹어봤는데, 재미가 없어서 다 못먹고 그만두었다.
그래도, 장터에 오면 아이스크림 사서 핥아먹고 싶어진다.
찬홍이 줄 빵 한덩어리하고, 나 먹을 수박 한통 사가지고 왔다. 수박이 아주 잘 익었다.
아침 산책은,
사실 아무하고도 함께 나가고 싶지 않다.
아침 산책 시간은, 그야말로 묵상의 시간이다.
나 혼자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고, 신과 대화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나는 고요한 이 아침을 다른 누구와 나누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 너무나 소중한 시간.
있는 책 다 내다버리고, 책 읽기 기록도 안하고.
뭐 이렇게 되니까, 상실감이 크다.
기록이라도 남기면 그나마 위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
최근에 나온 페이퍼 백. 미리 주문해놔서, 나오자마자 배달되어 왔다. 향긋한 새 책 냄새.
내 전공 관련 책 이외에는 전분야의 양서를 골고루 읽는다는 것이 내 평소의 독서의 지향점이다. 그래서, 한권 골랐다.(이마뉴엘 칸트 관련 챕터도 보이길래). 아직 다 못읽었으므로, 나중에 리뷰.
며칠전에, 아이들이 나 보라고 Diary of a Wimpy Kid 라는 영화 DVD를 빌려다 주었다. 그것 말고도 Ghost Writer 라는 이완 맥그리거 나오는 영화도 빌려다 줬는데, Ghost Writer 는 보다가 자고, 보다가 자고, 보다가 자고, 결국 대충 보고 지나갔고, Diary of a Wimpy Kid 는 안졸고 끝까지 다 봤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또 봤다 (보다가 잤지만...). 그리고 조지 타운에 갔을때 책방에 가서 원작 책을 찾아서 킬킬대며 다 읽은후에, 집에 와서 바로 아마존에 신청을 했다. 무료배송 이틀만에 책이 도착하여, 또 킬킬대며 읽었다.
나는 아마존 킨들 주문한 것이 도착하면, 이 책 시리즈 전체를 ebook으로 주문할까 생각중이다. 너무너무 웃기고 재미있고, 영어공부도 되고.
이 책의 미덕:
1. 일단 웃긴다. 심심할때 아무데나 봐도 유쾌하다.
2. 일기 형식이다 --> 영어일기 지도용 참고 서적으로 사용해도 좋을것이다. 혹은 영어 일기 샘플로도 좋다.
3. 중학생 수준의 영어 구사자가 사용할만한 어휘, 표현이 생생하여, 외국어(영어) 학습자에게도 유익해보인다.
읽고, 또 읽어도 싫증이 안 나므로, 반복 읽기/학습이 자동적으로 될만한 교재로 볼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실용적, 교육적 용도가 아니라도, 책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순수한 '즐거움'이 충분히 가치있다.
영화도, 원작의 대사나 상황을 거의 똑같이 옮겨다 놓았다. 에피소드의 디테일에 약간 차이가 나는 것도 있지만, 원작을 참 잘 재현했다.
새벽 두시쯤 비 쏟아지는 소리가 나서 잠이 깼다.
비 들이치지 않게 침대머리 창문을 닫고, [아침까지 비가오면 어쩌나...] 약간 고민을 하다 빗소리를 들으며 다시 잠이 들었다. 나는 마치 어릴때 소풍날 아침에 비가 오지 않기를 기다리던 그 심정으로, 아침에 비가 올까봐 걱정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니 아직도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짚신장수처럼, 오늘은 공치는 날...
한숨을 쉬고 앉아있다가,
문득,
비가 온다고 나가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어? <--- 누군가가 물었다.
아니요. 비가 와도 사람들은 각자 할일을 하지요, 네 <---- 나는 누군가에게 대꾸했다.
나는 잠시 번개가 치고, 벼락을 맞아서 나무가 쓰러지면 어쩌나,
내가 벼락을 맞으면 어쩌나 이런 궁리를 해봤다.
하지만, 내가 돌아보니, 옛날에 시골에서 살때, 우리들은 비가와도 논밭에 나가서 일을 했고
비가 와도 뛰어 놀고 그랬다.
만약에 내가 벼락을 맞아 죽을 운명이라면, 피한다고 해도 결국 죽을것이고...
그래서, 작년에 싸게 사놓고 좋아하던 빨간 점퍼를 생각해냈다. 그거 방수처리된거지 아마...
하여, 점퍼를 찾아 입고, 우산을 찾아 들고, 집을 나섰다.
비가 오면 내가 평소에 걷던 길이 물이 넘쳐서 차도로 걸어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아예 안전한 길로 멀리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운동장에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혼자서 가볍게 트랙 네바퀴 (일마일)를 뛰어 돌고, 다시 빗길을 터벅터벅 걸어 집으로 왔다.
그래도 비가 이슬비로 바뀌어서, 집에 올때는 우산도 접고 한가로운 산책을 했다.
비가 와서 세상이 촉촉히 젖고
공기에서 비릿한 비 냄새와 초록 수풀의 냄새가 나고
세상은 평화로워보였다.
나는 정원의 꽃들처럼 비를 맞으며 걸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살아있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내 육신이 건강하여 비오는날 산책을 나와,
비를 맞으며 바라보는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감사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