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11일 일요일

손님

 

 

 

잠을 잘 이루지 못하다가 (시차 적응이 한국에서는 바로 되더니 미국 오니까 잘 안된다...) 새벽녘에 간신히 잠들었는데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어지러진 교실 같은 곳에서 허둥대며 이것저것을 치우고 있었다.

그런데 교실 앞문으로 (한국에서 내가 학교 다닐때 교실모양으로 앞문, 뒷문이 있었다)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 남자는 한국에서 전통식으로 장례를 치를때 상제가 입는 삼베옷에 굴건을 쓰고 새끼줄로 허리띠를 하고..대략 내가 알고 있는 상제복장으로 내 앞에 단정히 섰다.

나는 어쩐 일인지 그 남자가 오기로 약속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를 맞으며 말했다 (벽시계를 흘끔 보고나서):

 "시간을 정확히 지켜서 오셨네요.

  그런데....제가 지금 여기를 다 치우지 못했어요.

  지금은 곤란한데요.

  그대신, 제가 좋은 곳으로 안내를 해 드릴게요."

 

나는 그 남자를 이끌고 교실 밖으로 나섰다.

복도는 어두웠는데

복도 끝에서 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곳은 커다란 회당 같기도 하고 강당같은 곳이기도 한데, 빛으로 가득차 보였다.

 

내가 그 남자를 그 문앞까지 안내를 하자,

그 남자가 빙긋 웃더니 그 빛으로 가득한 강당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다시 내 교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허둥지둥 일을 시작했다.

 

그러다 잠에서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아직 새벽 네시도 되지 않았다.

두시간도 못 잤는데 깨고 말았다. (원래 나는 새벽 네시쯤에 깬다...)

그런데 어둠속에서 그 꿈 생각이 났다.

그리고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뭐야...저승사자가 다녀간거야? ...

 

아무튼 나는 겨우 두시간도 못자고 잠이 깬채로 있다가 이른 아침에 연꽃을 보러 나갔다.

연꽃 구경 하고, 사람구경하고, 햇빛 아래서 산책을 하다 오니 새벽의 그 무서운 꿈이 다 지워지고 말았다.

 

나는 이 지상에서 해야할 숙제들이 있다.

그 숙제들을 모두 마칠때까지, 잘 살아내야 한다.

오늘 연꽃을 보니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연꽃 가운데에 태양이 숨어있었다. :-)

 

Eastern Market 워싱턴 디씨의 주말 시장 이스턴 마켓 구경

 

Kenilworth Aquatic Gardens 에서 연꽃 구경하고, 늪지대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Eastern Market 에 잠시 들렀다.

 

 

마켓 입구의 카페 앞에서 맑고 투명한 일요일 오전 시간을 즐기는 사람들

오늘 오전 날씨가 8월 하순의 늦여름 혹은 초가을 날씨같이 상쾌하고 투명하였다.

바람도 산들산들.

아침에 연꽃 구경할때는 구름이 끼어서 사진 찍기가 참 좋았는데 (사진 찍기에 완벽한 날씨!)

사진 다 찍고 나와서 시장에 도착하니 쨍하고 개이면서 아주 쾌청한 날씨로 변하였다.

하느님이 내게 아름다운 날을 선물 하시도다.

 

 

문이 잠긴 옷가게 안쪽 쇼윈도에 왕눈이와 닮은 개 한마리가 앉아서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유리창을 통해 서로 대화를 시도하는 두마리의 개.

내 손에 들린 것은 시장에서 산 아프리카 산 시어버터(shea butter) 오일과 시어버터 비누.

 

 

 

 

이런 거울가게가 있었다.  유리창틀 같은 것에 거울을 끼워놓은것도 있고, 다양한 거울 작품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이것을 사가지고 걸어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었다.

나도 이 거울가게에서 자그마한 거울을 한개 샀다. (거울이 필요해~)

 

 

 

꽃가게에서 백일홍 한다발에 6달러.

맨드라미 한다발에 8달러

이 꽃들이 내 눈길을 끌어서 뭘 고를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는데

찬홍이가 맨드라미가 신기하다며 그걸 사자고 했다.

찬홍이는 맨드라미를 처음 보는듯...

나는 맨드라미를 보면, 우리 시골집 장독대 옆에 여름 내내 피던 그 꽃들이 생각이 나는데...

할아버지가 보고싶다.

화초를 잘 가꾸시던 우리 할아버지.

 

 

 

아아, 우리 왕눈이 예쁘게 잘 나왔다.

왕눈이 아부지가 보면 좋아하겠다.

우리 엄니가 보시면 역시 좋아하시겠다.

우리 엄니는 이제 사위 덕분에 인터넷 구경을 하실수 있고

(우리는 엄마집에 도착하자마자 인터넷부터 깔았다.)

사위의 도움으로 가끔 이런 사진들을 구경하실수 있을 것이다.

 

 

내 손에 노란 테두리 거울과, 맨드라미 한다발과, 시아버터 오일과 비누.

 

 

 

 

원래 해바라기나 맨드라미는 우리집 장독대 근처 화단에서 피어나던 꽃이라서

나는 이 꽃들은 '질그릇'이나 '옹기'에 꽂아놔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 그런것들이 없으므로

아쉬운대로 어울리지도 않는 꽃병에 꽃고 만다.

해바라기는 며칠전에 산것이고

맨드라미는 오늘 산것.

 

덕분에 기분이 아주 좋아졌습니다!

 

 

오늘 장만한 노란 테두리의 거울.

 

 

찬홍이와 나와 노란 거울.

 

 

 

 

 

Kenilworth Aqatic Gardens : 연꽃구름

워싱턴 디씨 외곽에 Kenilworth Aquatic Gardens (케일워쓰 연못 정원)이라는 곳이 있다.

http://www.nps.gov/keaq/index.htm

이곳은 유월 하순에서 칠월말까지 수련과 연꽃이 피는 곳으로 유명하다.

공원 자체는 규모나 시설면에서 '대단하다'고 말하기는 곤란한데, 연꽃 피는 시절에는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연꽃 필때만 한번 가서 구경을 하고 오는 편이다.

 

일산 호수공원에도 요즘 연꽃이 한창인데, 워싱턴에서도 수련은 모두 지고 연꽃이 구름처럼 피어나고 있다.

찬홍이와 오전 일곱시에 가서 한시간쯤 구경하고 나왔다.

 

공원 입구쪽에 안내소와 책방이 있다. (들어가보지는 않았다...)

 

연꽃술 속으로 들어가 마냥 헤엄치며 놀고 있는 꿀벌.

아 그 꿀벌 황홀하겠다!

연꽃 술이 바다의 말미잘 같아 보였다.

말미잘 생각을 하니, 볼티모어의 수족관에 구경을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찬홍이 데리고 가야지...

 

 

 

 

 

 

 

 

 

 

 

 

호수공원의 연꽃 구경을 하면서, 엄마한테 "엄마, 미국에 있는 연꽃은 키가 나보다도 더 커" 하고 말했더니, 엄마가 납득을 못하셨다. 연못에 피는 연꽃인데 어떻게 꽃하고 키재기를 할수 있냐고. 

하지만 난 분명히 연꽃하고 키재기를 해 봤다구요...

 

이 사진을 보시면 우리 엄마도 내 말을 믿어주실 것이다.  정말로 내 키보다도 더 큰 연꽃이 구름처럼 퍼져 있는데...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으려고 엄청 커다란 전문가용 카메라를 들고 온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내 카메라도 나름 지존급인데,  그분들 카메라 앞에서는 깨갱이었다. 하하하.

 

 

 

공원의 또다른 장소.

천연 늪지대에는 자생 야생화들과 나무들이 빽빽하다.

가볍게 다녀올만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2010년 7월 10일 토요일

정글

 

 

 

언제더라?

박사 종합시험 준비중이었으니까, 2006년 2월쯤이었나.

동네 카페에서, 역시 시험을 함께 치는 친구와 만나 스터디를 하다가 밤늦은 시각 혼자 걸어서 집으로 올 때였다.  (매일 산책나가는 동네 호숫가라서 차를 안가지고 갔었다.) 그날은 어쩐 일인지 매일 건너던 건널목으로 길을 건너는 대신에, 미리 앞질러서 한적한 곳에서 길을 건너고 말았다.  그리고는 슬슬 걷고 있는데, 갑자기 무시무시한 충격음이 들리고, 문득 돌아보니... 내가 항상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바로 그 건널목 앞에서 차가 정면 충돌하여 그중 한대가 인도 위로 올라와 앉아있었다.

 

아주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곳은 내가 늘 서서 신호를 기다리던 곳이었고,

만약 그날도 역시 그 건널목에서 초록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면

나는 지금쯤 저 차 아래에  납작 깔려있었을 것이었다.

그날 나는 왜 길을 미리 건너고 싶었던 것인지...

 

그 후에도 호수에 산책을 나가면서

그 사거리 건널목 앞에 서면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과연 살아있기는 한 것인지.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   ***

 

오늘은 모처럼 대략 24일만에 학교에 출근을  했다. (찬홍이를 데리고.)

오후에 오피스를 나와 지홍이를 픽업하여 세식구가 집으로 향하던중

내가 평소에 안하던 짓을 저질렀다.

495 North 로 진입하여야 하는데, 뭔가 딴생각을 하다가 반대방향 South 로 진입을 한 것이다.

이런 멍청한 일을 저지르다니! (더위 먹어서 그런거야...)

 

나의 멍청함을 탓하며 다음 출구로 나가서 다시 495 north 방향으로 진입하여 고속도로를 탔는데  도로가 통제가 되는지 오차선 하이웨이가 하나로 줄어들어서 우리들은 조심조심 서로 양보하며 길을 통과를 해야 했다. 가다보니 길이 줄어든 이유가 밝혀졌다. 다중적인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하이웨이의 양편으로 파편이 튀고, 도로의 양편에 사고차량들과 이를 수습하기 위한 소방차, 경찰차, 구급차들이 즐지어 서있었다.

 

그리고 얼핏, 사고를 당한 사람이 도로위에 반듯하게 뉘어져있는 광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교통사고 현장에서 차가 깨졌거나 혹은 피를 흘린 자국을 본적은 있지만

사람이 바닥에 누워있는 것을 보기는 처음이었다.

아이들도 그 광경을 봤는지 암담한 표정이었다.

부디 무사하시길...

 

하이웨이를 빠져나오면서 문득 드는 생각,

내가 하필 오늘 오후에 생전 저지르지도 않았던 멍청한 짓을 저지른 이유는?

고속도로 입구에서 정반대방향으로 갔다가 돌아온 이유는?

만약에 평소대로 내가 정방향으로 하이웨이에 진입하여 그 흐름속에 있었다면

혹시나 지금쯤 저기 길위에 나 역시 누워있었던 것은 아니었을지...

 

우리는 언제 죽음을 맞을지 알수 없다.

죽음이 언제 닥치더라도, 내가 후회하지 않도록 하루하루 살아내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 ***

 

나는 가끔 나 혼자 정글속을 떠도는 들짐승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세상은 정글이고

그만큼 아름답기도 하지만

그만큼 위험도 도사리고 있고

그래서 더욱 스릴 넘치고...

어쨌거나, 나는 아주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살고 있다고 믿기로 하자.

 

 

 

 ***   ***

 

새벽 한시반.

시차가 극복이 안되는지 며칠째 밤을 뜬눈으로 보내고 있다.

한국의 P선생에게 전화를 해보니

토요일이라서 (토요일 호우 두시반) 일찌감치 동네 극장에 나가 장모님과 영화를 한편 보고, 지금 장모님이 짜장면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그거 사 먹는 중이라고한다.

전화기 너머의 엄마의 목소리는 힘차고 명랑해보였다. 아주 기분이 좋으신가보다.

 

엄마는 나와 비슷한 용모에다가 성정도 나와 비슷하여

호기심도 많고 세상 구경도 좋아하고 그런데

층층시하에서 엄한 남편과 살면서 많이 짓눌린 인생을 살았다 (대부분 그러하듯).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면서 '저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을것이다.

 

아마도 그래서 내 인생의 파트너를 - 우리집 남자들과 정 반대 성향을 사람으로 정했을지도 모른다.

 

엄마의 사위는 상냥하고 자상하고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것이 한결같다.

그의 한결같음은 죽을때까지 지켜질것이다.

그러니까, 사위가 장모에게 하는 행동은 늘 오늘과 같을 것이다.

그는 주말에 나와 살던 방식대로 그의 장모님과 지낼것이다, 아마도.

영화를 함께보고

미술관에 함께 가고

공연을 보러 함께 다니고

이른 아침 산책을 나가고

이런 것들

나와 평소에 하던 것들을 그의 장모님과 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엄니는

다 늦게 이런 자상한 사위의 재롱을 즐기며 노년의 한때를 웃을수 있을것이다.

이들도 어떤 인연으로 지금 그자리에 손을 잡고 서 있는 것이리라.

나는 단지 이들을 연결해주는 '매개체'인것인지도 모른다.

 

아들에겐 아들의 몫이있고

딸에겐 딸의 몫이 있듯

며느리에게

사위에게

각자의 몫이 있다.

엄마는 복이 많은 분이다.

현재 대략 30년 년하의 '젊은이'와 동거중이시다. 하하하하.

(그 젊은 동거인을 내가 제공했으니 나는 효녀라고 할만하다. 하하하.)

 

 

 

 

 

2010년 7월 9일 금요일

불편함이 주는 선물

1.

 

에어컨이 말썽이라 있으나 마나. 실내는 그야말로 한증막.

이런 '재난'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기쁨은 있다.

신체의 감각이 아주 예민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찜통 속 같다가도 이따금 창으로 흘러들어오는 상쾌한 바람 (아주 미미하지만...)

그 한줄기 바람에도 창가의 나무에게 깊이 감사하게 된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자연이 주는 선물.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도 이와 비슷한 에피소드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쏘로우의 삶을 생각해본다.

에어컨이 없어도 사람들은 충분히 여름을 났었다.

나 역시 한국에서는 에어컨 없이 살았다.

지금이라고 못 살것이 무엇인가.

 

2.

 

집에 설치된 세탁기/건조기가 연결이 안되어 현재 있으나마나한, 자리만 차지하는 흉물이다.

아이들이 공동 세탁장에 가서 세탁을 해오곤 하는데

세탁장에 가기 귀챦아서

빨래를 조금씩 손으로 하고 있다.

여름옷이니 샤워한 후에 그냥 손으로 후딱후딱 대충 흔들어 널기도 좋고

날이 뜨거우니 베란다 빨래 걸이개 (한국에서 20년전에 사서 여태 쓰는것)에 내다 널으면

밤사이에 바싹 마른다.

 

내가 손빨래 하는 것을 본 지홍이가

저도 따라서 제 셔츠를 빨아서 단정히 널어놓았다.

 

우리들은 너무나 문명의 이기에 익숙해져 있어서

사람이 손으로 간단히 해 치울일 마저 기계에게 던져버리곤 했다.

한가한 여름이니까

날씨도 더우니까

물놀이 삼아

간단간단히 그날의 옷을 손빨래 하여 널어도 좋으리라...

 

 

빗물같은

나보다 네살 연상의 어느 선배가,

나의 삶의 계획들, 도전들에 대한 이야기, 생활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 그런 것들을 듣다가 문득 말했다:

"난 일을 정리하는 중인데...거기는 아직도 뭔가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는것 같네. 활기차 보인다..."

 

그 선배 역시 학위를 마쳤고, 연구소와 강단을 오가며 커리어를 쌓고 있는 분인데

어딘가 많이 안정되고, 여유로와 보이고, 그리고 분주함에서 벗어나려는 모우드인듯.

 

그래서 나는 대꾸했다:

  "저는, 이것이, 생존의 문제에요. 먹고 사는 문제요. 우린 돈이 없어서 둘이 벌어야 하거든요..."

 

 

 

결국 이것도 '팔자소관' 일지도 모른다.

어쩐 일인지 아주 어릴때부터, 나는 장래가 보장된, 여유롭고 풍요로운 그런 남성 '파트너'들에 아무런 매력도 못느꼈다. 나는 눈이 초롱초롱한 가난뱅이 남자가 근사해보였다. 그러니 가난뱅이 남자와 파트너가 되어 살고 있는데, 가난하니까 결국 내가(둘이 함께) 벌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나는 열심히 돈벌이를 하고 있다.

 

 

 

결국 이것도 '팔자소관'일지도 모른다.

나는 돈을 벌기는 버는데, 돈에 큰 욕심은 없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하기 싫은 일은 안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만 골라서 하면서 돈을 번다.

그러다보니 큰 돈은 못벌고, 그저 연명할 돈이나 벌면서 손가락 빨면서 산다.

나는 지금도 인생을 어떻게 신나고 재미있게 살것인가를 고민하는 편이다.

돈을 어떻게많이 모을것인가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안한다.

이래서 큰돈을 못 만져본다.

 

 

 

그러니까, 생존을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과

그러나 하기 싫은 일은 절대 안한다는 입장이 맞물려서

두가지가 만나는 접점의 일을 나는 하는 셈이다.

큰돈 못벌어도 현재 일이 즐거우면 나는 그 일을 즐겁게 신나게 한다.

큰돈이 된대도 그 일 자체가 즐겁지 않으면 나는 일을 할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 '즐거운 일'만 골라서 하면서 산 셈이다...

 

 

 

나의 '희망'은

큰돈이 되면서 즐거운 일을 한다는 것이다 ㅎㅎㅎ (과욕같다.ㅎㅎㅎ)

 

 

 

아니

나의 희망은

내가 하는 일이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하면서,

동시에 나도 신바람이 나서 하는 그런 일을 하다가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돈도 많이 번다면 더욱 좋겠지. 하하하.)

 

 

 

옷 수선을 하느라 등불 앞에 앉아서 바늘땀을 세는동안이 내게는 명상의 시간이었던듯,

불현듯

'나는 완벽하게 행복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이다'라는 생뚱맞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 삶의 긴장을 놓치지 않고

즐겁게 자신의 일을 하루하루 해 나가는 사람,

나는 농부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것이 완벽한 시나리오처럼 보인다.

하느님이 나를 위해 마련한 완벽한 인생의 시나리오.

 

 

 

저 들판의 들짐승처럼

저 산의 산짐승처럼

날아가는 저 새들처럼

살아있는 동안 내가 내 몸뚱아리를 움직여 먹이를 구하고

감사히 하루의 먹이를 먹게 하시고,

이 빗물같은 삶의 축복을 내가 잊지 않게 하시고...

 

 

2010년 7월 8일 목요일

오아시스

 

 

아침에 dmv 에 가서 주소 변경 신청하고...지홍이는 면허 연장과 주소 변경 두가지를 해야 했는데, 녀석이 서류 한가지가 빠져서, 녀석은 또 가야만 했다. (왜 일을 한번에 못하느냐구! 투덜투덜 잔소리)  학교에 나가려고 했다가, 더위에 지쳐서 포기.  집에서 집안 정리를 좀 하고 (주로 몇년간 입지 않은 옷들을 솎아서 버리고, 버리기 아깝지만 쓸모 없는 것들을 솎아서 버리고...)  -- 매일 매일 버리는 일을 할거다.

 

 

 

 

 

지홍이는 학교에 나가고 (녀석을 여름학기 내내 선생질을 하고 있다)

나는 찬홍이와 늦은 아점을 지어 먹고 졸려서 한숨 자고 일어났다.

시차 때문이 아니라, 집안이 찜통이라서 무기력해지는 것 같다.

그래서, 노트북을 챙겨가지고 우리동네 세이프웨이 구석에 붙어있는 스타벅스로 '피란'왔다.

 

더 뒤에서 손을 흔들고 있는 녀석이 우리 돌쇠 찬홍이.

 

아, 시원해서 천국같다.

그러고보면 천국은 늘 우리곁에 있다. 나는 그걸 잊으면 안된다. 나는 늘 나에게 주어지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고' 그리고 감사해야 한다.

여기서 두어시간 일을 좀 하다가, 해가 질 무렵에 아이들과 터키런에 걸으러 가야지.

언라인 코스 피드백을 여태 미루고 있었는데, 이제 게으름 피우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학생들과 소통해야 한다.

 

일단 시원하니 머리가 맑아진다.

고마운 스타벅스.

내일은 학교 오피스에 나가서 일을 해야지. 거기 가면 스타벅스보다 훨씬 편안하고 시원한데, 왜 가기가 싫은걸까... 원래, 직장보다는 카페가 우리의 마음을 이끄는 것일지도 모른다. :-)

 

 

 

 

스타벅스에서 빈둥거리다가 나오는 길에,  해바라기 세묶음을 10달러에 팔길래, 한아름 사가지고 왔다.

아홉송이 해바라기가 벙글거리는 것이, 황금의 나라 처럼 보인다.

내 책상에 세송이

식탁에 여섯송이

 

십달러만큼의 사치와 여유.

즐거운 인생.

즐거운 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