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2일 토요일

바느질

 

 

 

바짓단을 조정하느라 바느질을 하고 앉아 있다보니, 언제나 실을 길게 길게 잡는 내 모습이 다시 보인다.

 

어릴때,  할머니 슬하에서 바느질을 배울때, 게으름뱅이인 내가 바늘귀에 실 꿰는게 귀챦아서 실을 길게 길게 잡아서 끊으면,  할머니가 게으름보 손녀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바늘귀에 실을 길게 잡으면 멀리 멀리 시집을 간다더라..."

 

나는 할머니 품에서, 엄마 품에서 멀리 멀리 떠나와

남의 나라에서 8년을 보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이역에서 헤메야 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할머니 말씀처럼 나는 멀리 멀리 떠나와 있다.

나는 멀리 멀리 떠나와 있다.

 

지난주에 책 분양 파티를 하던중, 아주 오래된 동화책 한권을 발견하여, 그것을 다시 내 책상위에 가져다 놓았다. (이것 만큼은, 내가, 죽을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그것은 계몽사판 소년 소녀 세계 문학전집. 

나같은 386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주황색 하드커버.

그 문학전집의 5번. 

영국 동화집.

 

우리들이 성장한 후에 이 계몽사 동화집은 어린 아이가 있던 친척집으로 옮겨져 갔는데, 딱 한권 이 '영국동화집'만이 우연히 내 책상에 남겨져 있었고, 나는 영문과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영국에 가보지 못했다.)

 

이 오래된 책의 표지를 열어보니 유려한 필체의, 우리 아버지의 서명이 들어있다.  어느해 '성탄절' 기념으로 이 책을 아이들을 위해서 마련한 30대 초반의 가난한 가장. 내가 아버지를 30대 초반으로 규정하는 근거는, 아버지가 남긴 '어느해'에 대한 단서 때문이다.  나는 그 해를 나의 나이와 비교해본다. 내가 네살때다.  그리고 나는 그 해 겨울을 기억한다. 그 해 겨울에, 나는 글을 읽을줄 몰랐다.  그래서 이 신기한 책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찾아 읽었었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우리 부모님 품에 있지 않았다.  고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고 있었다...  아마도 겨울 방학을 맞이해 서울집에서 시골집에 내려온 오빠의 보따리에서 이 동화책 몇권이 나왔을것이다.  그래서 글을 읽을줄 모르던 네살짜리 나는 책 속의 그림들을 열심히 들여다 봤을 것이다.

 

나는 그 해 겨울의 쓸쓸한 눈 내리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시골집을 지키고 있던 이는 둘째고모와 그의 애인이었다. (그 애인이 나중에 고모부가 되었다). 이들은 내게 사과 껍질을 바깥마당 두엄더미에 내다 버리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래서 나는 화롯가에서 이 책속의 그림들을 구경하다 말고, 두엄더미에 사과 껍데기를 버리러 나갔다. 눈이 부슬 부슬 내렸다.  나는 사과 껍데기를 버리려다 말고, 사과 껍질을 질근 질근 씹었다. 달콤했다.  나는 바깥마당 두엄더미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부슬부슬 내리는 눈 속에서 사과껍질을 질근 질근 오랫동안 씹었다.

 

그해 겨울, 나는 네살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섯살때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집에 올라왔다.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들이 사는 집으로.

 

그러고보면, 나는 내 성장의 2년 혹은 2년보다 더 긴 동안 내 부모 품에서 벗어나 있었던 셈이다.  여태까지 나는 내 유년의 1년간 내 부모에게서 벗어나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에 기록된 년도와 내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보니 2년 이상을 나는 내 부모나 형제로부터 벗어나 지냈던 것이다.  내 유년의 삶 6년중에서 2년 혹은 그 이상...

 

아하, 그래서, 이제서야 나의 이방인같은 행동 패턴을 내가 이해하게 된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서울 집에 올라온 후에, 나는 가끔 자다가 '이상행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다말고 벌떡일어나 집에 가겠다면서 옷몇가지를 안고 막무가내로 나가다가 붙들려 다시 잠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가끔, 보자기에 옷을 싸가지고 집을 나서는 꿈을 꾸기도 했다. 반복되는 꿈.  꿈속에서도 나는 집에 간다며 보따리를 쌌다. 내 엄마 아빠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그 집'이 분명, 내 집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거기 소속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있었다.

 

 

삶에서 2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남자가 군대에 다녀 올 시간쯤이려나.  하지만 유년의 최초의 6년에서 2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닐것이다.  길고 지리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도 잘 알수가 없다.  가끔 엄마가 보고싶다며 울어댄 기억은 있지만, 뭐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편안하게 살았던 것도 같고.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보고싶다...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데도, 할아버지의 체온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바늘에 실을 꿸 때 아주 아주 길게 길게 꿴다.

 

원래 나는 태어날때부터 아주 멀리 멀리 떠나가도록 운명지어진 것일지도 모르고,  이미 유년기때 그 준비과정을 거친 것일지도 모른다. 

 

 

 

 

 

 

 

 

 

summer shopping spree

 

 

 

 

 

things that i bought recently ...to overcome depression

 

L.L.Bean wear  fits nice to me

 

 

 

 

 

 

 

 

The Territory Ahead

 

Circle Eyelet Cotton Skirt

 

 

Life sucks, but that's ok with me.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air supply - good bye

 

 

 

그날 새벽 세시부터 잠이 깨어서, 역시 그 시간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것을 알기에, 주섬주섬 일을 시작했다. 몇시간동안 언라인으로 처리할 일들을 하고, 학교에 나가서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을 하고, 그리고 또 일을 하다가 귀가했다.  공장 생산라인 돌아가듯 쉬지 않고 일을 해댔을것이다.

 

오후 햇살속에, 바람이 상쾌했는데, 조지타운 가는 길에 내 빨간 모자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줄도 모르고 있다가, 하버에 도착한후에야, 내 머리에서 모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에 날아갔을것이다. 그걸 내가 바람 맞으면서 걷는 재미로,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것이다.

 

몇시간을 하버에서 보내야 했는데, 지쳤는데, 다시 모자를 찾기위해 왔던길을 되짚어 가기엔 피곤한데. 졸린데. 그 모자 싼건데. 없어져도 그만인데. 뭐 여러가지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포기'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사람들 발에 짓밟힐, 쓰레기가 될 그 모자의 운명이 서럽더라.

 

그래서, 왔던 길을 되짚어서 

한참을 되짚어서 가다보니

길가에 빨간 모자가 오두마니 있더라.

 

달려가 그것을 집어서 손으로 툭툭 털어서, 다시 머리위에 단단히 썼다.

찾았다.

다시는 너를 잃어버리지 않으마.

 

그날, 그 모자를 쓰고 하버에서 네시간쯤 있다가 한밤에, 자정쯤에 귀가했다.

그날, 그런 일이 있었다.

 

모든 잃어버려진 것들, 버려진 것들의 뒷모습은 슬프다.

빨간모자를 슬프게 하면 안되었던 것이지.

 

 

 

2010년 5월 9일 일요일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 Museum

공식홈페이지: http://www.pafa.org/

필라델피아 시청 인근에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s)'가 있다.

 

 

아래의 사진에서 가운데 보이는 높다란 흰 건물이 필라델피아 시청.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들이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미술관과 학교 건물들이다.

 

 

 

 

 

 

 

아래사진에서 오른쪽의 붉은 벽돌 건물이 미술관이다.

 

 

 

 

 

1805년에 개교하였다고 새겨져 있으니까 205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이다. 200년을 넘겼다.  이 건물은 개교이래 세번째로 지어진 건물로 알려져있다. 이전 건물은 오래되어 손실되거나 화재가 났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매표와 안내를 겸한 데스크가 있는데 이곳에서 입장표를 구입한다 (성인 10달러). 전시장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만 사진을 찍도록 허용하고 있다.

 

 

 

 

 

 

 

아래사진, 오른쪽 구석에 보이는 작품들은 Andrew Wyethe (앤드루 와이어드)의 그림들이다.

 

 

 

 

전시장 내부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시키긴 했지만, 뭐,

  1. 내가 그림을 훔쳐가는것도 아니고,
  2. 다른 미술관에서는 영구소장품에 한하여 사진 촬용을 허용하는데, 꼭 막아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수가 없어서,
  3. 돈 10달러 내고 들어간것이 아까워서,
  4. 내가 평생에 여기 한번 올까 말까 하는 판에 억울해서
  5. 내가 이래뵈도 '미국미술 전문가' 반열에 오르는 향토 아마추어 연구자인데
  6. 나도 건져가는게 있어야 휘발류 값이 안아깝지

등, 온갖 자기합리화를 주문처럼 외우고 외운후에, 경비하시는 신사분이 잠시 조는 틈에 딱 두장 찍었다. 현장 스케치 목적으로. 

 

내가 판단하기에, 이렇게 철저하게 사진촬영을 금지시키고 그러니까, 이곳이 대중에게 (혹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알려져있지가 않고, 그러다보면 쇄락의 길로 들어서는게 아닐까?  인지도가 높아져야 학교의 위상도 더 높아지고 뭐 그럴거 아닌가?  나같은사람이나 찾아가지, 누가 여길 가서 기웃거리겠냐구~  내가 홍보해주는걸 고마워해야 하는거지. 헹.

 

 

 

 

 

 

 

카페테리아

 

내 뒷쪽에 앉아 계시는 분들이, 그, 힐러리 클린턴이 나왔다는 Wellesley College 동문 아주머니들이시다. 미술관 도는 동안 한그룹의 부인들을 어떤 전문 안내인이 안내하는 광경을 목도했는데, 이분들의 옷매무새나 행동거지가 좀 남달라보였다.  뭐랄까...설명하기 곤란한데, 뭐 교양있어보이고 안정되어 보이고, 범상치 않은 여성들의 모임으로 보였다.  '그 아주머니들 참 멋쟁이들이시네...' 뭐 이런 느낌.  차림이 화려했던것은 아니고, 그냥 행동거지나 자세가 안정되고 단아해보였다.  나는 그분들 쳐다보면서, '저 사람들중에 저사람, 저사람, 저사람은 내 친구하고 싶다' 뭐 이런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카페테리아에 가보니 이들을 위한 특별 예약석이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Wellesley College Alumni 라는 표시가 보이는거다. 하하하. 저분들이 스무살때는 한가닥 하셨겠다.

 

웰슬리 컬리지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여자대학이다. 우리나라의 E여대가 그 영광을 누리듯, 미국에서는 웰슬리가 제법 콧대가 높다. 미국 영화배우 Julia Roberts 가 주연한 영화중에 Mona Lisa Smile 이 있다. 허구이긴 하지만, 그 영화속에서 줄리아 롸버츠가 여학교 미술선생으로 나오는데, 그 영화속의 여학교의 모델이 이 학교였을것이다.  부유층, 상류층 딸들이 다니는 작은 사립 여자학교. 그 영화속에서 미술선생이 잭슨 폴락의 작업장도 소개하고 그러는 장면이 나왔었다. 하필 이곳에서 웰슬리 출신 아주머니들을 뵈오니 그 영화 생각이 났다.

 

나는 뭐,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명문학교'에 다닌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보통 학교를 다녔고, 미국에서도 보통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학교는 아직 이름도 미미한 신생 학교이다. 역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뿐.  나로서는 명문대에 다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나 아쉬움 같은 것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명문대 출신들에 대해서 '부러움'은 느끼지만, 그 밖의 다른 느낌은 없는 편이다. '너 좋은 학교 나왔니? 좋겠구나...' 뭐 그정도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기고만장을 떨고 있는 판에, 내가 만약에 소위 일류대를 싹쓸고 나왔어봐...기고만장이 하늘을 찔렀을거다. 하하.  근데, 저 아주머니들 아주 우아하고 교양있어 보이셨다. 내 맘에 들었다.  조용조용히 말씀들을 하시고...

 

 

 

 

 

 

 

 

 

 

미술관 바로 옆의 현대식 건물은 학교 건물이다. 이곳 1층에 기념품샵이 있다.

 

 

 

 

 

미술관 건너편에 병원 건물이 있는데, 병원벽 치장이 인상적이었다.

 

 

 

 

 

 

2010년 5월 8일 (토)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박물관'에 다녀왔다. 펜실베니아 미술학교는 미국 근대미술의 '산파'역을 한 미술학교라고 할 만한 곳이다. 근대 미국 미술사를 수놓은 쟁쟁한 미술가들이 대개 이 학교 출신이었다... 그리고, 이 학교의 미술관에 그들이 학생시절, 혹은 교수시절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사진 찍기를 엄격히 통제한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개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찾는다.  이 미술관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슬슬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종합적인, 전 세계의 미술폼들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소장하고 있는 반면,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미술관은 '미국미술' 을 중점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나처럼 '미국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러 찾아 갔건만, 주옥같은 소장품들을 눈으로만 보고 사진에 담아 올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전시회에 가면 사진 생각 안하고 감상에만 집중 할 수 있으므로 좋은 점도 있다 (그렇게 위로를 해야 속이 편하지...)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소장품 수록집을 판매하는데 65달러나 하길래, 깨끗이 포기했다.

집에 돌아와 아마존에서 헌책으로 30달러에 주문을 했다.

책이 오면, 내가 오늘 봤던 작품들을 상기하며, 다시 감상할수 있으리라.

 

사진 몇장과, 상세한 스케치는 나중에...(운전을 내리 했더니 피곤해서 술이나 한잔 때리고 뻗는게 상책일듯...)

 

아아아, 오늘 '그리운' 그림들을 눈에 가득 담아왔다...

 

 

* 안내인(docent)이 안내 다 마친후에, "녀 미술전공했지?" 하고 묻길래, "아니...취미로 미국미술 공부중" 이라고 답했더니, 이곳에서 요즘 Docent 교육중인데 자기가 추천할테니 와서 교육받고 Docent 하라고. (하하하).  필라델피아까지 왕복 일곱시간 교육받으러 다니라고? 하하하.   음...나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 나도 이제 미국 미술사의 뼉다구정도는 슬슬 불 정도는 된 것으로 보인다. 하하하. 슬슬 정리할 때가 되어가고 있는듯하다.  그나마....내가 사는 보람이다. 혼자 하는 미술사 공부... (나는 우울증이 폭발할때면, 그림 공부에 매달리는 편이다. 요즘 잠잠했는데, 다시 미술책 들여다봐야 할것 같다.  어린왕자는 우울하면 황혼에 의자를 뒤로 빼면서 하루에 수십번의 황혼을 보고, 나는 미술관에 간다.  가끔은 나를 그냥 내려놓고, 그림속으로 사라지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

 

 

 

 

2010년 5월 4일 화요일

[산책] 황혼의 거위 가족

 

 

2010년 5월 4일.

 

저녁을 먹고나서 일곱시에 터키런으로 향했다.  아직 저녁 해가 남아있었고, 햇살이 강했지만, 숲속은 서늘하였다. 황혼이 아름다웠다. 선녀탕에서 세수를 하니, 마치 옛날 이땅을 고향으로 알고 살았던 인디언 여자가 된듯한 기분이 들었다.  터키런 계곡에서 세수하고 몸을 씻는 맛에 이곳에 자주 갈지도 모르겠다. 피부가 보들보들한 느낌.

 

숲에서 나왔을땐 사방이 어두운 밤이었다.

혼자 있었지만,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American Legion Bridge 아래 강기슭의 캐나다 거위가족.

"딸아들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기르자"던 1970년대의 가족계획 표어가 생각난다.

새끼가 두마리뿐이다.

대개 대여섯마리씩 몰고 다니는데, 이 친구들은 가족계획 실천가들인가보다.

캐나다 거위는 반드시 부부가 함께 자식들을 지킨다.

이들의 투철한 자식보호 자세를 지켜보노라면,

부부가 합심해서 자식을 키워내는 것을 보노라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내가 자식을 저 거위들 만큼이나 정성들여 돌보는가?

 

 

 

 

 

 

 

 

 

 

 

 

 

 

 

 

 

2010년 5월 3일 월요일

[산책] 자전거 모험 - 캐나다 거위 가족과 만나다

 

 

2010년 5월 3일 Great Falls 까지 자전거 왕복을 하던중 만난 캐나다 거위 (Canadian Geese)가족.  이 친구들은 내가 갈때도 만나고, 돌아 올때도 만났다.  (어떻게 동일한 가족인지 아는가하면, 사진을 들여다보니 새끼들 숫자가 똑같은거다. :-)   )

 

캐나다 거위는 부부가 함께 새끼들을 지키는데

인간이 나타나면

부모중에 한놈은 새끼들 곁을 지키고

한놈은 사람쪽을 향해서 방어자세를 취한다. 게다가 이놈은 사람에게 위협적으로 캭캭 으름짱을 놓거나 혹은 심지어 쪼으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기도 한다. 절대 물러서지 않을 기세다

 

 

이때, 한놈이 새끼들을 거느리고 '물'쪽으로 이동한다.

 

 

내가 요놈들을 좀 곯여주려고, 물쪽에서 길을 막으니 새끼들이 일제히 물쪽을 포기하고 숲쪽 길가로 몰려간다.  (사진에서 오른쪽은 물이 있는 운하이고, 왼쪽은 강변 숲이다.)

 

 

(위) 물쪽으로 바삐 가려다 인간이 길을 막자

(아래) 숲쪽으로 가는 새끼들

 

 

 

 

위태로운 상황일때, (한가롭지가 않을때) 어른 거위는 목을 저렇게  움추리고 아이들을 모은다.  어미나 아비가 목을 저렇게 움추리면 아이들도 아마 바짝 긴장을 할 것이다.

 

 

 

내가 운하로 가는 길을 터줬다. (길 중간으로 비켜줬다).  거위 가족이 '이때다' 외치며 운하쪽(왼쪽)으로 바쁘게 가고 있다. 늘, 한쪽은 이끌고, 한쪽은 엄호를 한다.

 

 

 

물에 들어갔다.

이제 이들은 위험에서 벗어났다

한가롭게 물위를 헤엄쳐 인간으로부터 멀리 멀리 멀어져간다.

 

 

 

 

 

 

일곱마리 새끼들.

하지만, 저 새끼들이 떠꺼머리 총각이 될 즈음 - 6월쯤 되면, 부부가 거느리던 예닐곱의 새끼들은 서너마리가 된다.  서서히 숫자가 자연감소 되는것을 하루하루 볼 수 있다. 결국 어떤 평형 상태를 유지하게 되겠지...

 

 

 

 

 

[산책] 자전거 모험, Great Falls 까지 자전거 여행~

 

 

2010년 5월 3일 월요일.

간밤에 폭우, 아침에도 집중적인 소나기.

새벽에 일어나 책상머리에서 온라인 수업 자료를 챙겨서 보내놓고, 내가 할 일을 다 마치고.

연구실로 나가는 대신에, 비온 후의 상쾌함을 맛보기 위해서 포토맥강변에 산책을 나가기로 했다.

 

강변에 나가기 전에 왕눈이를 한번 안아주고.

 

비가 그쳤지만,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어서, 비가 다시 쏟아질지도 모르고,

하지만 이런 흐린 날씨가 산책하기에는 가장 알맞다.

가볍게 조지타운까지 걷다 오려고 작정하고 나간 것인데 (비 온후에 터키런 같은 숲길은 위험하다. 길이 질척거리고 그리고 바위나 나무가 미끄러워서 미끄러져 넘어지기 십상이다.)  Fletcher's Cove 앞을 지나다가 배와 자전거를 빌려주는 가게가 열려있는 것을 보았다. 

 

자전거를 타보면 어떨까?

즉흥적으로 자전거에 눈길이 꽂혀서, 그걸 타고 한바퀴 돌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내판에 나와있다시피, 자전거는 한시간에 7달러, 하루 28달러 대여료를 받는다.  시간당으로 계산이 되다가 28달러 이상 넘어가면 하루 대여료로 내면 그만이다. (네시간을 타건 다섯시간을 타건 마찬가지라는 말씀).

 

자전거 (혹은 카약이나 보트)를 빌리기 위해서는 신분증 (운전면허증)을 제시하고 카드나 현금으로 계산을 하면 된다. 신분증은 나중에 자전거나 배를 반납할때 돌려받는다. (신분증 없으면 대여할수 없다.)  사진속의 점원 아저씨가, 성품좋게 생긴 미남이고, 그리고 친절하다. 간단한 음료와 스넥도 판다.

 

 

 

 

 

 

나는 일단 한시간 대여료를 냈고, 나중에 돌려줄때 시간초과를 할경우 정산을 하기로 했다. (그쪽에서 한시간 비용만 받고 나중에 정산하겠다고 제안했다).

 

 

 

 

 

 

 

이 장면을...나는 무척 좋아한다.

길 왼편으로는 바다같이 넓고 느긋한 포토맥강이 유유하게 흐르고

길 오른편으로는 운하가 흐른다.

나는 물위에 난 길을 통과하는 것 같아.

이런 길이 Great Falls 로 향하는 11마일 내내 이어진다.

한편에 강, 또 한편에 운하.

 

 

 

 

흰 건물은 Lock House 라고 한다.  포토맥 강변의 운하 (이 운하 길이 200마일 이어진다, 워싱턴 디씨에서 시작하여 멀리 오하이오에서 끝난다. 그래서 Chesapeake Ohio Canal 이라고 부른다) 이 운하의 수문이 1-2마일마다 있는데 (물의 높낮이를 이용하여 배를 움직이게 해준다)  그 수문 관리인 가족이 살던 집을 Lock House 라고 부른다.

 

현재 이 200마일 (100 마일은 160 킬로미터) 의 운하는 운하로서의 기능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은 이 200 마일에 이르는 운하길을 국립 공원으로 지정하여 자연상태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사람들이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타고다닐수 있도록 길을 유지보수하거나 나무며 자연환경을 관리를 하지만, 그 외에 인공적인 구조물은 없다. 가게도 없다. (물 사먹을 간이점도 없다.)

 

 

 

 

지금은 텅 비어있지만

언젠가는 이 집에 가족이 살았고

아이들은 부모를 도와 수문을 여닫는 일을 했을 것이다.

 

 

 

 

 

오래된 마일 스톤 (Mile Stone : 이정표 : 몇마일인지 표시하는 돌)이 보인다.

9 miles to W.C 라고 적혀있다. 

워싱턴 디씨까지 9마일 남았다는 뜻이다.

내가 강변에 가면 대개 3.5마일 지점에서 조지타운까지 가므로 왕복 6마일로 환산을 하는데

이곳은 내가 평소에 산책을 시작하는 지점에서 조지타운 반대방향으로 (상류쪽으로) 5.5 마일을 올라온 곳이다.

 

옛날에는 Washington D.C. 를 W.C 라고 표기했나보다. (혹은 D자가 마모되어 없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메릴랜드 방향의 Great Falls Park 진입로. 이쯤에서 반환

 

이곳을 지나치니, 2008년 12월이던가, 몇몇 지인들과 이곳을 산책한 일이 생각난다.

그중에는 '친구'라 부를만한 이도 있었고, 그냥 아는 분이라고 할 만한 분도 있었고.

겨울이었는데 날이 포근했다.

산책을 마치고, 일행중에 내가 '정경부인'이라고 일컬었던 '마님'이 집에서 국수나 먹고 가라고 제안을 하셨다.  그래서 산책 마치고 그댁에 들러서 멸치국물에 소면 말은것을 잘 먹었다.  그 부인이 내가 고기국물 안 먹는걸 아시고, 내게 뭘 먹일때면 신경을 많이 쓰셨다.

 

지금은 한국으로 돌아가셨는데,  이사한 후에 일부러 우리집에 '간장 한통'을 주려고 먼 걸음을 하셨다.  친정 어머니께서 손수 빚으신 아주 귀한 조선간장인데, 그걸 타향살이하면서 아끼고 아끼다가 귀국을 하시면서, 내게 주려고 일부러 빗속에 다녀가셨다.

 

그 조선간장 (우리 집안에서는 이걸 조선간장이라고 부른다.  '왜간장'에 대별되는 '자존심'있는 간장, 그것이 바로 조선간장이다) 을 나는 미역국 끓일때마다 넣어 먹었는데, 이제 잼병으로 두병이 남았다. 저거 다 먹으면 그다음에는 사먹어야 할 판인데, 조선간장은 집에서 담아야 제맛인것을 나는 안다.

 

 

 

 

 

 

Great Falls 에서 반환하여 돌아오는길.

 

 

 

 

오후 한시쯤에 Fletcher's Cove 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출발했는데, Great Falls 까지 가는 11마일 동안, 중간에 멈춰서 자연관찰도 하고, 새 관찰도 하고, 학교에서 긴급회의 한다고 전화를 해대서 전화받고, 그러느라 지체되었다.  길은, 흙길에 자갈이 깔려있어서, 아스팔트에 비해서는 길이 매끄럽지 않아 힘들었다.  자전거 반환하러 가서 시계를 보니 네시간이 지나있었다. (오후 다섯시). 아아아.

 

출발할때는 두시간이면 왕복할줄 알고, 가볍게 생각하고 물 한병 가지고 갔는데, 네시간 돌아다니며 그 물 한병을 아껴먹어야 했다.

 

오늘 내가 자전거로 왕복한 거리는

2008년 11월에 온가족이 걸어서 왕복한 적이 있다.

그날 오전 열한시쯤 출발하여 다섯시쯤에 돌아왔는데, 중간에 비도 오고 아주 물에 젖은 생쥐꼴로 걸었었다.

오늘은

그 길을 나혼자 한가롭게 자전거로 돌았다.

그 길의 부분부분을 친구나 지인과 돌기도 했었으므로 내게는 익숙한 길이었다.

그런데 자전거에 앉아서 보는 세상은 걸을때와는 또 달라서

늘 새롭고, 아름답고 그렇다.

날씨도 비 온 후라 촉촉하고, 공기에서 수박냄새가 나고, 향긋하고, 뜨겁지 않아 좋았다.

 

아마도 오늘 내가 자전거로 타고 돈 거리가, 내 생애에서 자전거로 달린 가장 긴 거리일것이다.

어릴때 자전거타고 태릉에 간다던가, 강변에 간다던가 한 적은 있었지만, 오늘같이 진빠지게 달린 적은 없었다.  어릴때도 내가 포장된 길만 달렸지, 오늘같은 자갈길은 ... 아아아... 만만하게 봤다가 고생좀 했다. 하하하. 하지만 즐거웠다.  또 가야지....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