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Book] 철학 상담소, The Big Questions, How Philosophy Can Change Your Life

 

철학 상담소: 우울한 현대인을 위한 철학자들의 카운슬링

루 메리노프 지음, 김익희 옮김

 

 

 

The Big Questions: How Philosophy Can Change Your Life

 

 

이따금 나는, 책이 다리가 달려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상상을 하기도 한다. 집의 이곳저곳에 책이 널려있고, 두서가 없이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기도 하기 때문에 이런 느낌이 드는 것이리라. 아무튼 2006년에 한국에 번역 소개된 번역서가 내 집에 있다는 말은, 이 책이 한국에서 흘러들어왔다는 뜻일것이다. 언제, 누가 이 책을 가져다 놓은 것일까.

 

미국에 철학 상담을 하는 사람들도 있구나. 온갖 상담사들이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그 많은 상담의 종류중에 '철학 상담' 혹은 '철학 치료'가 있을수도 있겠다.  이것이 철학책이기는 한걸까?  철학의 탈을 쓴 Self Help 책 같기도 하고. 이 책이 서양사람들을 관심을 끄는 이유는 - 동양철학적인 '공자 빼갈먹는' 소리가 가끔 등장하니까.

 

주로 싸르트르의 실존철학과,  불교식 인생론 사이를 오락가락하는 대목에서, 이 책을 덮어버릴까 말까 망설였지만, 끝까지 읽은 이유는 (1) 일단 시작했으니 대강이라도 끝까지 봐주는게 좋을것 같아서 (2) 심심해서 (3) 해골복잡해서.

 

도움은 되었나? (1) 일단 끝장을 낸다는 내 평소 '철학'에 부합되는 행동으로 결판을 냈고 (2) 덜 심심했고 (3) 대략 머릿속이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들었으므로, 내게 하루치의 유익을 선사했다고 할만하다.

 

철학상담이라는 모르던 분야에 대해서 알게 된것도 재미있고,

현상을 볼때 "상처와 모욕" - 이렇게 두가지로 분류하는 방법이 꽤나 재미있었다. 이거군. 무슨 말씀인가하면,

 

(1)  누군가가 전혀 의도하지 않고 내 발을 밟아서 내 발뼈가 부러졌다면,  그 사람은 사과를 할것이고, 나는 그 사과를 받아주겠지만 내 발뼈가 부러진 사실은 어쩔수가 없다. 이것은 명백한 '상처'이다.  그가 의도하고 그랬건 의도하지 않고 그랬건 상관없이 내 발뼈는 부러진것이다. 

 

(2) 누군가가 내게 "야, 이 돼지같은 년아"라고 욕지거리를 퍼붓는것은 '모욕'행위이다. 그 말때문에 내가 자살을 할수도 있고, 그 말을 한 사람을 내가 죽일수도 있고, 혹은 내가 싹 무시하거나, 심지어 그에게 빙긋 웃어줄수도 있다. 혹은 독한 맘 먹고 살을 뺄지도 모른다.  '모욕'이 내 발뼈를 부러뜨리지는 않는다. 내가 그 말을 듣지도 못하고 그냥 지나칠수도 있는 것이다.  모욕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서 내게 부정적/긍정적 영향을 끼칠수도 있고 전혀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을 해석하거나 이에 반응할때, 이 상황이 '어쩔수 없는' 상황인것인지, 아니면 나의 '반응'에 따라서 전혀 다르게 전개될만한 것인지 판단해야 하고,  판단을 할때는 공히 이익이 되는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 (수긍).

 

내가 지금 마음이 무겁거나 혹은 엉뚱한 상상을 하면서 인상을 쓰고 앉아있다면, 나는 내 삶을 객관화해보고나서 그것이 약이 필요한 상황인지, 아니면 나의 창조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인지 판단하고, 행동화 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책장을 덮었다.

 

2009년 12월 21일 (월) 맑음.

 

 

 

 

 

눈에 갖히다 (4): 저 눈밭에 사슴 한마리

2009년 12월 21일 (월) 맑음

 

눈쌓인 우리집 뒷동산에 사슴 한마리가 왔다. 이웃과의 울타리 나무인 사철나무 잎사귀를 뜯어먹으러 온듯.  사슴은 혼자서 한참동안 사철나무 잎을 뜯어 먹었다. 쌓인 눈에 다리가 푹 잠기고 말았다.  (울타리에 사과를 잘라서 매달아 놓아주면 들짐승들이 먹으러 오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카메라의 렌즈를 최대한 당겨서 찍은 사진들.  사슴과 나는 대략 20미터 거리)

 

 

 

 

 

 

이쪽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울타리를 넘어 달아나려고 달음질치는 사슴

 

 

 

 

떠나지 전에 이쪽을 한참 쳐다보면서 '포즈'를 잡아주는 신사.  (찍어라 찍어. 나를 찍는것이 소원이더냐? )

 

 

 

 

 

 

포즈를 잡아 주신후, 사슴은 울타리를 훌쩍 뛰어 넘어 유유히 사라지셨다.

 

 

 

 

사슴아, 내게 기쁜일을 갖다 다우.

 

눈에 갖히다 (3)

 

2009년 12월 19일 (일) 자정부터 자정까지 온종일 내린 눈의 총량

 

 

 

 

 

 

 

 

 

 

 

 

 

2009년 12월 20일

 

아침에 깨어났을때, 창밖은 파란 하늘과, 파랗게 반사되는 쌓인 눈으로 눈이 부셨다.  뒷마당에 쌓인 눈은 식탁의자의 허리 부분을 이미 지나 있었고, 성인 남자의 무릎 높이보다 높았다.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쌓인 눈을 평생 몇번이나 보았는가?' 물었는데,  내 희미한 기억으로, 어릴때,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시골집 마당에 이렇게 눈이 쌓인적이 있었는데, 그 어린 나이에 눈에 갖힌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 후에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인 것을 본 적이 없는듯 했다.

 

우리집 왕눈이는 눈에 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눈이 가볍게 쌓였을때는 나가서 겅중거리고 뛰어 놀줄도 아는 개 이지만, 눈이 제 키를 넘게 쌓이자 눈을 무서워했다. 

 

옛날에 시골에서 살때, 눈이 많이 쌓이면, 할아버지는 우리집과 이웃집 사이에 이렇게 길을 내 놓으셨었다. 날이 개이면 눈길은 사라지고 말지만,  이렇게 실핏줄같은 눈길이 마을의 집과 집을 이어주곤 했었다.

 

워싱턴의 모든 관공서는 월요일 (21일) 임시 휴무일로 정했고, 금주 수요일에 방학을 시작하려던 공립학교들은 일제히 방학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은 방학이 일찍 시작되었다고 환호하고...쌓인 눈은 하도 높이 쌓여 하루이틀에 녹을것 같지는 않고...

 

눈길을 걸어 동네 스타벅스에 나가서

뜨거운 라테랑, 아주 달아 미치겠는 케이크 한조각 주문해가지고 난롯가에 앉아 그것을 먹으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해 본다. 

 

 

 

 

2009년 12월 19일 토요일

눈에 갖히다 2: 여우 할멈과 인디언

 

눈쌓인 뒷마당. 사냥감을 찾으러 돌아다니는 인디언같다.

 

 

 

 

 

 

이렇게 웃는 표정이 딱, 여우 할멈같다.

 

 

 

 

 

 

 

 

 

 

참한 인디언 용사 같기도 하고.

 

 

 

 

내사진들을 가지고 만들어 보는 인디언 설화

 

 

 

 

 

 

 

여우 할멈과 인디언 청년

 

 

옛날에 북미의 인디언 청년이 사냥을 하러 길을 떠났습니다. 인디언 청년은 오랫동안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다람쥐와 사슴, 거북이, 너구리등 고기가 될만한 것들을 사냥하였습니다. 청년은 언젠가 고향 마을로 돌아가겠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오래 떠돌아다녔기때문에 고향 마을을 기억해 낼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날 눈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눈은 멈추지 않고 한달 내내 내렸습니다. 세상은 눈으로 뒤덮였습니다. 청년은 한달 내내 아무것도 먹지 않고 걸었기 때문에 눈속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청년은 눈속에서 한달 내개 잠을 잤습니다. 실컷 자고난 청년이 일어나보니 천지는 아직도 눈으로 덮여 있었고, 저만치서 어떤 여자가 서있는것이 보였습니다.

 

 

여자는 밝게 웃으면 인디언 청년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습니다.  인디언 청년은 여자를 따라서 눈속을 걸어갔습니다.  여자는 인디언 청년에게 사슴고기와 딸기와 옥수수와 호박을 넣은 죽을 끓여 주었습니다.  청년은 한달동안 이 여자와 함께 지냈습니다.

 

 

 

그 사이에 눈이 녹고 봄이 찾아 왔습니다. 나무에 물이 오르고 연두색이 숲속에 퍼질무렵, 인디언 청년은 떠나온 고향을  생각해 냈습니다.  인디언 청년은 이제 집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을로 돌아가 씨앗을 뿌리고 키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인디언 청년이 여자에게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하자, 여자는 청년에게 사슴 가죽과, 옥수수 씨앗과, 말린 나무 딸기와 그리고 여러가지 말린 약초들을 보따리에 담아 주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입고 있던 옷을 벗었습니다.  여자가 옷을 벗자, 여자가 벗어던진 옷은 여우 가죽으로 변했습니다.  여자는 여우가죽을 남자의 보따리에 담아주며 이것을 잘 간직하라고 말했습니다.

 

청년은 고향으로 돌아가 여자가 준 옥수수 씨앗을 뿌리고,  사슴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고, 그리고 여우 가죽을 목에 두르고 다녔습니다.  청년을 기다리던 청년의 아내는 곧 예쁜 아이들을 생산해 냈습니다. 청년은 아이들에게 그가 사냥하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백년이 지났습니다.  어느날 이 마을에 빨간 두건을 두른 예쁜 인디언 아가씨가 나타났습니다. 인디언 아가씨는 "이 마을에 여우 가죽을 두른 청년이 사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청년의 집을 가리켜 주었습니다.  빨간 두건을 두른 예쁜 인디언 아가씨는 마을 사람들이 일러준대로 길을 따라서 청년의 집으로 갔습니다.  여자가 문을 열어보니 인디언 청년은 깊은 잠이 들어 있었습니다. 

 

 

백년을 걸어서 내가 왔는데, 너는 잠만 자느냐

백년을 걸어서 내가 왔는데, 너는 잠만 자느냐

백년을 걸어서 내가 왔는데, 너는 잠만 자느냐

 

인디언 여자가 인디언 청년 옆에 앉아 노래를 불렀습니다.  남자가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남자의 한쪽 눈이 떠졌습니다. 남자의 또 한쪽 눈이 열리려 할 때였습니다.  문틈으로 이 광경을 엿보고 있던 마을 사람 중에 한사람이 여자의 빨간 두건 사이로 여우 꼬리가 나온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마을 사람은 여우가 둔갑을 하고 나타나 청년을 잡아 먹으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빨리 칼을 꺼내어 여자의 심장을 향해 날렸습니다.  두 눈을 뜬 인디언 청년은 심장에서 피가 터져 나오는 여자를 발견했습니다.

 

백..년..을..걸...어...서....

         내...가....왔....는....데.....

               너....는....나....를.... 죽......이...려....느....냐.....

 

여자는 심장과 눈과 입과 귀로 피를 내 뿜으며 슬픈 노래를 마저 부르고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인디언 청년의 몸은 여자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뒤덮였습니다.   인디언 청년은 백년동안 목에 두르고 있던 여우의 가죽을 벗어서 죽은 여자의 몸에 덮어주었습니다.  그러자 죽은 여자는 되살아나 여우가 되어 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문을 통과하여 숲으로 달아났습니다.

 

청년은 마을을 떠나 숲으로 갔습니다. 청년은 두번다시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후로는 여우를 사냥하지 않았습니다.  청년이 가꾸던 농작물은 해마다 저절로 자라났고 퍼져갔으며 마을 사람들은 그 농작물로 배불리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이 여우의 선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백...년...을...걸...어...서....

           내.........가............왔..................는..................데.................

 

 

 

 

2009년 12월 19일 토요일 redfox.

 

 

이야기 짓기의 좋은 점은,  이야기 속에서 나는 뭐든 내 맘대로 지어낼수가 있다는 것이지.  나는 착한 여우 할멈이 될수도 있고, 백년쯤 간단히 흘려 보낼수도 있고,  한달동안 눈속에서 잠을 자도 죽지 않고, 뭐든 맘대로.  하지만 현실에서 내가 할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아무것도. 그게 비극이야.

눈에 갖히다

 

워싱턴, 버지니아 지역은 10인치가 넘는 폭설 경보중.  어젯밤부터 내린 눈이 정오를 넘긴 지금도 계속 내리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70년만에 보이는 12월의 폭설이라고. 뒷마당에 쌓인 눈은, 현재 내 무릎 높이까지 쌓였다.  우리집 개 왕눈이는 자기 키를 넘는 눈이 무서워서 밖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하고 기가 죽은듯 실내에 납작 엎드려 있는 형편이다.  내가 태어난 날에도 이렇게 눈이 쌓였다고 우리 먼 친척 아줌니가 증언하였기 때문에,  눈이 이렇게 많이 쌓이면,  나는 내가 태어나던 날의 고요를 기억에서 되살려 보려 애를 쓰게 된다.  (하지만 나는 늘 내가 잘 못 이세상에 태어났다는 느낌을 갖고 살고 있다.  이것 참 떨치기 힘든 생각이다. 나의 문제는 .. 나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내가 아무것에도 애착을 갖지 못한다는 것이리라.  나는 내 별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다. )

 

너무나 탐스러워서 오히려 인조꽃같아 보이는 장미. 그 키를 넘도록 눈이 쌓이고 있다.

 

 

 

 

 

 

 

 

 

 

 

 

 

 

 

어제 스미소니안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에서 인디언 설화 한가지를 읽었다.  '별 이야기'라는 제목이었다. 대강의 줄거리는

 

옛날에 인디언 마을의 아이들이 어울려 놀고 있는데, 그때 하늘에서 별 하나가 내려와 아이들과 함께 놀았다.  그 별은 아이들의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함께 어울렸다.  그러다 어느날부터인가 그 별은 한 소녀의 머리위에서 줄곧 머물렀다.  별은 아이들이 나와서 놀때면 그 소녀 머리위에서 빛났다.  그 소녀의 아버지는 멀리 사냥을 떠난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소녀는 외톨이였다.  별은  소녀를 따라다녔다.  별은 때때로 소녀가 잠든 곳 위에서 빛나곤 했다.

 

어느날 소녀는 딸기를 따러 숲속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서 그만 길을 잃고 말았다. 비는 계속 쏟아졌다. 소녀는 친구 별이 나타나 길을 가르쳐주길 바랬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별은 나타나지 않았다. 비는 계속 쏟아져 소녀의 작은 몸이 서서히 빗물에 잠겨갔다. 소녀는 하늘을 향해 별을 불렀지만 별은 오지 않았다.  마침내 소녀의 작은 몸은 빗물에 잠겨 사라지고 말았다.

 

빗물에 잠긴 소녀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다. 소녀가 사라진 곳은 늪이 되고 말았다.  어느날 별이 다시 내려왔을때 별은 소녀를 찾을수가 없었다. 아이들 머리위를 맴돌던 별은 방황하듯 이리저리 헤메고 돌아다녔다. 별은 마침내 소녀가 물에 잠겨 죽은 늪까지 오게 되었다.

 

그후로 밤이되어 별이 내릴 시각이면 그 늪위에 찬란하게 빛나는 별 하나가 내려왔다. 그 별은 늪위에서 머무르다 새벽과 함께 사라지곤 했다.  마을 사람들은 별이 소녀의 곁을 지키고 있다고 생각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별이 올수가 없는거지...  ) ... 그러면... 반대로...마음을 늘 맑게 가지면, 우리는 늘 별과 함께 있게 되는건가?   부질없는 생각이지....

 

 

내가 안태어났으면 참 좋았을것이다. 나는 요즘 이 생각만 되풀이 한다. 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면 참 좋았을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것에 어떤 목적이나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텐데...  나의 존재가 나의 비극이다.

 

 

 

 

National Botanic Garden, Washington D.C.

국립 식물원 공식 홈페이지: http://www.usbg.gov/

입장료 : 무료

입장시간: 오전 10시 - 오후 5시

 

 

 

 

스승을 모시고 국회 의사당 앞에 있는 국립 식물원과 국립 인디언 박물관에 다녀오다.

 

한겨울의 국립 식물원은 '낙원'이었다.  일단 들어갔을때 후끈한 열기와 습기가 우리를 반겼고, 그리고 활짝 핀 열대지방의 꽃들과, 크리스마스를 기념하는 포인세티아들.  계절은 어김없이 한해의 끝, 크리스마스를 향해 치닿고 있었는데,  나는 어쩐 일인지 삶의 어느 시간대에서 정지해버리고 만 것 같다.  세상은 어김없이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식물원 밖으로 나와 국회 의사당 앞 호수쪽으로 가 보았다.  지난 여름에 왔을때 이곳은 공사를 하느라 물을 빼고, 사막같은 풍경이었는데 호수에 물이 차있고, 그 물이 꽁꽁 얼어있었다.  얼음판 위에 갈매기떼가 모여서 미끄럼을 탔다. 

 

식물원이 하도 따뜻하고 촉촉해서, 여기저기서 꽃향기가 퍼져 나와서, 그래서, 그곳에 가면 마음도 따뜻해지고, 시름도 잊을것 같아. 다음에 혼자서 한가롭게 또 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내 은사의 심술사나운 고양이

 

 

내 은사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셨다.  그러나 그가 혼자 지내는 것을 본 적은 없다. 그는 젊은시절에 아프리카 탄자니아에서 피스코 (평화봉사단) 활동을 했으며, 귀국후에 학위를 받고 교수로 살아오면서도 아프리카 출신의 젊은이들을 집에서 거둬왔다. 그의 집에서 여러명의 아프리카 출신 박사들이 배출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대학 근처에 있던 그의 집에는 넓직한 뒷마당이 있었고, 그는 고양이들을 키웠다.  그러니까 이런식이었다, "뒷마당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서 가보니 어떤 고양이가 새끼를 낳아놓았더라. 그래서 어미와 새끼 한마리는 내가 키우기로 하고 다른 새끼들은 이웃집에 입양을 보냈지... 그 놈들  수의사한테 가서 체크 받느라고 몇백달러나 날아갔네..."  (미국에선 개나 고양이 한마리 전체적인 검진하고 기본 예방 접종 시키면 족히 300달러가 깨진다.)

 

내가 대학원생이던 시절, 은사댁을 편안하게 드나들었는데, 그집의 몇마리 고양이들중에 아주 무시무시한 고양이 한마리가 있었다.  나이가 많은지 털도 뭐랄까 빳빳하고, 바늘같고, 눈빛도 사납고 무시무시했으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싫어했다.  내가 개나 고양이를 좋아하므로 개나 고양이도 역시 사람을 알아보고 가까이 다가오고 그러는 편인데, 이 고양이는 정말 사나웠다.  나도 가까이 다가갈수 없었다.

 

어제는 은사께서 몇년만에 나를 보시고는 컴퓨터를 열어서 "그동안의 밀린 사진들을 모두 보여주마" 하시면서 내가 떠나온 학교, 도시, 사람들, 풍경들을 보여주시는데, 그 수없이 많은 사진 파일들중에서 그 사나운 고양이를 발견했다.  모처럼 보니 그 사나운 고양이를 사진으로 본것만으로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 "이 고양이 무척 사나웠는데, 잘 있나요?"

교수: "작년에 죽었어."

나: "몇살이었나요?"

교수: "작년에 죽을때 열다섯살이었지."

나: "무척 사나웠는데... 늘 골이 난 표정이었는데, 죽었다니 딱하군요."

교수: (빙글빙글 웃으며) "오래 살았지 뭐..."

나: "그 고양이는 자기 주인 한테만 친절했나봐요. 그 고양이는 우리들(학생들)을 좋아하지 않았어요."

교수: (빙글빙글 웃으며) "그 녀석은 나한테도 사납게 굴었어. 모두에게 사나웠지..."

나: "주인한테도 사나웠단 말인가요?"

교수: "나도 잘 건드리지 못했어. 늘 사나웠지."

나: (기가 막혀서 웃음을 터뜨리며) "주인한테도 사납게 굴었다구요?  그런데도 그놈을 정성껏 키우셨어요?"

교수: " 그 고양이는 주인이건 손님이건 무조건 사람을 싫어했어. 나한테도 죽을때까지 사납게 굴었지... 하지만, 사납게 군다고 고양이를 내쫒을수는 없지.  사납건 상냥하건 내 고양이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지..."

나: 그런데 걘 왜 그렇게 골이 나 있었을까요?

교수: 몰라...하하하.

 

그런데, 은사께서 그 배은망덕하고 사납고 쌀쌀맞은 못생긴 고양이를 내치지 않고 15년을 키운 그 심성으로 '나'를 돌보는 것은 아닐까?  (사납건 상냥하건 내 고양이이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지) 이 정신으로 나를 대하는 것은 아닐까? 

 

하여튼, 그 골난 고양이가 천수를 다하고 작년에 세상을 하직했다 하니 조금 쓸쓸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고양이 죽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둘이 킬킬거린것을 그 고양이가 안다면 정말 기분 나쁘겠지.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