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는데 별로 의욕이 없고, 공부도 하기 싫을때, 전공책도 보기 싫을때, 그럴때가 있는데, 사람마다 이런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제각각일 것이다. 전에 나는 답답하면 몇시간씩 산책을 다녔다. 현재 나는 상태가 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어서, 산책을 나가는 대신에 주로 잠을 자거나, 평소에 안읽던 '진부해 보이는' 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인다.' 요즘 나는 시간을 '살아나가는 것'이 아니고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견디기 위해서 그냥 뭔가 하는데, 몸을 움직이기 싫으니까 '눈운동'만 열심히 하는 상황. 책보다 잠이 오면 자고, 잠이 깨면 다시 책을 보고.
찬홍이가 책을 사다달라길래 서점에 가서 The Crucible 이라는, 아서 밀러의 드라마를, 내가 대학교때 읽었던 책을 찾아 들고 그냥 책방에 온김에 어정거리다가 이 책이 눈에 띄어서 집어 들었다. 이거 스타벅스에 가면 매장에 보이던 책인데. 그래서 스타벅스 홍보용 책인가보다고 늘 지나치기만 했었는데. 내가 왜 이 책을 집어든 것일까? 쉽게 읽힐것 같아서, 머리 식히기 좋아보여서, 혹은 스타벅스의 성공 비결이 뭔가 궁금해서...
막상 읽어보니 내 예상과 다른 엉뚱한 책이었는데...
온종일 읽는 내내, 내 삶과 연결지어 여러가지 생각을 해 볼수 있었다. 우선, '바닥'으로 수직하강한 한 사나이가 생존하기 위한 노력이 생생하게 전달되었고, 그리고 곁두리로, 스타벅스의 지침도 내게는 의미있었다. 내가 요즘 내 우울감때문에 학교에서 좀 침울하게 행동했고, 내 학생들에게 충분한 교육환경을 제공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었고, 가령 '내 학생이 나로부터 - 학생으로서 받아야 할 애정이나 존중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부족했던 것 같고. 내가 좀 신경을 쓰고 내가 능동적으로 나를 바꿔나가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개인적인 실패는 개인의 문제이고, 그것이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쳐서는 안되는 것이니까. 내가 나 자신을 컨트롤을 잘 해야 하는 것이지.
스타벅스의 장점들이 많이 열거되어, 결국 스타벅스 홍보에도 한 몫 했겠지만, 이를 부정적으로 볼 생각은 없다. 이 책에 그려진 스타벅스 매장의 아름다운 면을 나는 내 직장에 도입해야 하고, 내 가정에 도입하면 좋을 것이다. 내 삶은...이 책의 저자처럼, 나의 상실감이나 실패감 같은 것 역시 내가 치유하는 수 밖에.
이제, 나도 '앞으로' 나아가야 (move on) 하는것 아닌가.
내가 이 책을 집어들은 것은, 내 '실패'를 들여다보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 '실패'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며, 많은 사람들이 씨리즈로 실패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덕분에 실패의 몇가지 유형을 알게 되었고, 내가 현재 당면한 나의 '실패'만을 확대시켜 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도 안다, 내가 이 실패감, 혹은 패배감, 혹은 상실감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것. 그리고 이것도 별것 아니란 것까지도, 논리적으로는 다 알고 있다. 하지만, 물이 얕아도 빠져죽을수 있는거고, 논리적으로 아무리 명쾌하게 설명을 할 수 있다해도 감정은 별개의 문제인거다. 이 책에서는 내가 왜 좌절감을 벗어나지 못하는지도 나름 설명을 해준다. 그래서 약간 위로 받았다.
사실 나는 차근차근 잘 해나가고 있으며, 내게 닥친 극히 사적인 재앙에도 불구하고 제법 침착하게 내가 계획한 일들을 진행시키고 있지 않은가. 한편으로는 나의 '실패'때문에 내가 얼음처럼 고요해져서 내 일들을 차분하게, 냉정하게 진행시키는 면도 있고. 하지만 나는 현재 전체적으로 '난파선'같은 기분이고, 늘 기침을 한다. 나는 너무 오랫동안 감기약을 습관적으로 먹고 있고, 늘 기침을 한다. 난 내가 소리내어 우는대신에 기침을 해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나는 잘 견뎌낼 것이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일은 여전히 힘들다. 표면적으로 나는 연봉협상도 잘 해냈고, 내 일들은 순조롭게 진행되어가고 있다. 그렇지만 현재 나는 그림자처럼 지상을 떠돈다는 기분이다. 나는 일을 잘 해나가고 있는데...모두 안녕한데...나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문학교수가 그가 알고 있는 문화사를 이리저리 엮어서 '실패'를 노래한 책. 읽을만한 책이다. '성공신화'에도 넌더리가 나니까.
아, 어제 본 영화 Bright Star, John Keats 를 그린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올라온 자막, "키츠는 25세로 죽을때까지 자신의 삶을 Failure (실패작)이라고 믿었다." 아, 키이츠도 자신의 삶을 실패작이라고 생각하고 죽었다는데, 난 뭐 내 삶을 실패작이라고 보지는 않는단 말이지. 단지 어떤 부분이 심하게 망가졌다고 인지하는 것이지. 망가진것을 바로잡을수도 없고, 망가진 것을 그대로 봐야 하는 일이, 폐허앞에 서있는것처럼 아득하다. 세월이 지나면 대개 잊혀질것이지.
실패하고, 실패하고, 또 실패할것이다. 다음번엔 좀 세련되게...
집의 책꽂이에 꽂혀 있길래 심심풀이로 집어들었다가, 설득력이 있어서 끝까지 본 책. 목소리는 잔잔하나 울림은 깊다. 이 책이 호소력이 있는 이유는, 저자가 나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어내고 희망을 갖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이소스를 주므로 힘이 있는 것이지. 내가 느끼는 고통에도 페이소스란 것이 있을까? 책을 읽는 동안은 위로를 받았다. 그가 제안한대로, 때로 사람은 그냥 시간이 해결해주길 기다리며 흘러가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4년전에 간단히 읽었던 책인데, 인상적이었다. 석사과정 중이었는데, 머리 식히려고 읽었었다. 그때 생각했었다. 내가 나중에 학사과정이나 석사과정을 가르치게 된다면, 이런 가벼운 책을 읽기 숙제로 내주고 싶다고 (그때 나는 전공책과 아티클에 치여서 정신이 없었지. 그것이 현재의 나를 만든 것이기는 한데.) 나는, 전공서적이 아닌 일반 서적에서 전공관계된 과제를 부여하는 식으로 진행하는 편이다. 일반적인 현상에 대해서 전문가적인 식견을 가지고 설명하고 해법을 찾을수 있도록. 이제 다시 여유를 갖고 찬찬히 살피니 더욱 의미있는 책임을 알겠더라.
리뷰과제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중에서 ESL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을 선별하여 진단하고 교육모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읽기는 쉽지만 스스로 모형을 짜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름다운 이야기에 기반한 숙제는 나름 유쾌하지 않을까?
무엇이 '미국인'을 구성하는가? 미국인이란 무엇인가? 어울려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정한 커뮤니티를 만들기 위한 요소는 무엇인가? 여러가지 측면에서 살필수 있는 아주 좋은 성인 동화책이라고 할만하다.
http://www.imdb.com/title/tt0810784/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John Keats 의 최후를 그린 영화, 그의 시에서 제목을 따온 Bright Star 를 보았다. 키츠는 낭만주의 영시인들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한 단계 진보한 시인으로 평가되는데, 시에 '감각'을 도입했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도 그러하고 To Autumn 에서도 그러하고. 영화 보면서 To Autumn 의 감각이 어디서 살아날까 눈여겨 봤었는데, Jane Campion 감독은 키츠의 '애인'의 풍만한 육체를 통해 이를 구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5년전에 번역해 본 것이 아직 남아있어서 옮겨본다. 비도 오고, 오랫만에 낭만주의 시대의 '왕자'였던 키츠도 영화로 보고, 감기 때문에 만사가 귀챦고, 해서 영화보고 식당에 갔다가 따끈한 정종 한도꾸리 혼자 때리고, 아 감기약에서 벗어나고 싶다.
(사실, 좀더 고운 꽃미남이 키츠 역할을 해주길 바랬지만, 딱히 생각나는 배우는 없었으므로 그럭저럭 패쓰. )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Bright star! would I were steadfast as thou art—
Not in lone splendour hung aloft the night,And watching, with eternal lids apart,
Like Nature’s patient sleepless Eremite,The moving waters at their priest-like task
Of pure ablution round earth’s human shores,
Or gazing on the new soft fallen mask
Of snow upon the mountains and the moors—No—yet still steadfast, still unchangeable,
Pillow’d upon my fair love’s ripening breast,
To feel for ever its soft fall and swell,
Awake for ever in a sweet unrest,Still, still to hear her tender-taken breath,
And so live ever—or else swoon to death.
John Keats (1795–1821)
빛나는 별이여 내가 너처럼 변함없는 존재라면 좋으리
홀로 빛나면서 밤하늘에 높이 걸려
잠못이루는 자연계의 은둔자 되어
속세의 인간세계 기슭을 정결히 씻어주는
출렁이는 저 바다물결처럼
사제다운 근면함을 가지고
영원히 뜬눈으로 지켜보고자 함이 아니고
또한 쓸쓸한 벌판에 사뿐히 내린
백설의 새 단장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도 아니리
아니, 그래서가 아니고,
보다 더 한결같이, 보다 더 변함없이
내 아름다운 님의 무르익은 젖가슴에 묻히어
영원히 느끼리 그 부드러운 오르내림을
감미로운 설레임 속에 영원히 잠깨어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 내 님의 고운 숨결 들으며
영원토록 살리니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숨을 거두고 말리라
뒤샹의 초상화를 만 레이가 작업한 것이 있어서, 그를 알게 되었는데, 뉴욕 현대미술관에 가니 그의 작품들이 몇 점 눈에 띄어서 그에게 약간 관심이 생겼다. 다다이스트 (dadaist) 작가로 분류되는 예술가. 미국 태생이지만 주로 파리에서 활동했고 그곳에서 인정 받았으며 2차 대전중에 난리를 피해서 LA로 옮겨가 작업을 했으나, 크게 성공하지 못하자 다시 파리로 가서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사망.
일단, 그가 남긴 '회화'들은, 분위기가 대체적으로 맘에 든다. 피카소와 같은 큐비즘 계열의 회화들을 남기기도 했으나 그의 회화들은 예각이 두드러지지 않으므로 내가 보기에도 편안한다. 회화 이외의 여러가지 작업들은, 글쎄...분명 예술작업 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예술품을 보는 시선이 무척 고루한 편이라, 튀는 영감은 느껴지지만 낯설고 멀게 느껴진다.
가령,
갖고 싶은 작품인가 아닌가? 나는 미술관에서 작품들 볼때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지곤 한다. 보니까 특이하다. 영감이 느껴진다. 멋있다. 이렇게 느낄수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에 "이거 주면 가질래?" 하고 자문해본다. 이런 자문에 대해서 나 스스로 도리도리질을 하거나 고개를 갸우뚱할때가 종종 있다. 좋지만 갖고 싶지는 않은 작품들도 분명 있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꿈에 볼까 무서운 끔찍스렁 작품들도 있다. 나는 '멋있고 예술적이지만 갖고 싶은 생각은 없는' 작품들을 '미술관 전용' 작품들이라고 부르는 편이다. 만 레이는 주로 '미술관 전용' 혹은 '콜렉터의 창고'에 들어갈만한 작품들을 많이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평범한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기에는 실패 했다는 뜻일것이다. 하지만, 원래 앞서가는 사람은 고독한 법이므로, 내가 알아주지 않는다해서 그의 예술성에 상처를 입는 일은 없을 것이다. (회화는, 좋았어요 만 레이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