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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4일 목요일

미술 감상 방법 2: 피카소의 한 획과 나의 한 획

바로 이전 페이지 (미술 감상 방법: 예술 작품과 제목과의 관계 http://americanart.textcube.com/302 ) 에서

(1) 제목과 작품과의 관계

(2) 작품과 작품 주변 배경과의 관계

에 대한 문제를 이야기 해 보았습니다.

 

위의 두가지 주제 중에서 '작품과 작품 주변 배경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더 덧붙여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왜 어떤 미술 작품 (혹은 예술 작품)을 감상할때, 작가를 의식하게 되는 걸까요? 그것이 합리적인 예술 감상 방법 인 것일까요?  여러가지 의문이 생길수 있고, 저는 그 분야의 학자가 아니므로 전문가적인 소견을 펼칠수는 없습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사색을 해 볼 뿐입니다.

 

제가 '미국미술 블로그'라고 이름 붙인 블로그를 키우 나가면서, 주로 '미술가' 한사람의 작품들을 주루룩 나열하면서 보는 식으로 페이지들을 키워가고 있습니다. 저는 한 페이지에 잡다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이 별로 없습니다. (가끔 어떤 그룹을 전체적으로 조망할때도 있지만)  주로 개인별 페이지들을 엮어 나갑니다.

 

개인별 페이지들을 엮을때, 가능하면 창작 시기 순서대로, 혹은 주제별로, 혹은 내 맘 내키는대로 대표적인 것 부터 때려 넣는 식으로, 다양한 순서대로 엮고 있긴 한데요.  순서가 어떠하건,  한 작가의 그림들을 몇 장 줄 세워놓고 살펴보면, 한 작가의 작품 스타일이나 그 변천을 한 눈에 볼때가 있습니다.  제 경험상 세장만 세워 놓으면 전체가 윤곽이 잡히더군요. 대충 감이 잡힌다는 뜻입니다.  물론 한장의 그림에서 그 사람 평생의 족적을 발견할수도 있겠지만, 한장 갖고는 안되죠. 앞뒤를 봐야 그것이 평생의 족적인지 아닌지 가늠이 되니까요.

 

제가, 위에 뭐라고 적었습니까?

(1) 그림 한장에도 작가의 평생의 족적이 다 들어있는 경우가 있더라.

(2) 하지만, 달랑 그림 한장 보고 평생의 족적을 다 봤다고 하면, 그건 사기다.  앞뒤 합쳐서 최소한 세점은 봐줘야 그 그림 한장속에 평생이 들어있는지 아닌지 확인이 가능하다.

 

우리는 한 작가의 어떤 그림을 보면서, 그 제작 연도를 보면서 혹은 제목이나 그림 스타일을 종합적으로 살피면서, 그 그림이 한 시대에 갖는 위상을 가늠해볼수 있습니다.  이전 페이지에서 뒤샹의 '샘' 작품 사진을 갖고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다시 그 사진을 끌어다 놓고 보겠습니다.  이 작품이 처음 어떤 전시회에 출품 되었을때, 이 친구는 전시장 구경도 못해보고 문전 박대를 당했습니다.  왜냐, 당시 비평가들은 이것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을 안한거죠. 하도 황당해서. 1917년에요.  지금으로부터 대략 1세기 전에요. 

 

 

 

 

 

1세기 전에 우리나라에 삼일 운동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 남성용 소변기 뒤집어 놓은 것을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가지고 예술 이랍시고 출품을 한 '정신병자'가 있었다고?  (놀랍죠...?...)  한마디로 이 작품은 1917년이라는 그 시간성 속에서 '미친' 혹은 '천재적'인 어떤 사건이 되었을만하죠.  이 작품을 같은 시간속의 다른 '평범하고' 아주 아주 '정상적인'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이 놈이 얼마나 튀는 놈인지 가늠이 되지요.

 

 

그런데요, 이 놈이 이것 한번으로 튀고 사라졌다면 이것은 예술로서 살아남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이것을 제작하여 '작품입네'하고 껄떡거리고 나타난 그 뒤샹이라는 작가의 일련의 작품들이 모두 이렇게 상상을 초월한 - 예술에 종을 쳐대는 엉뚱한 것들이었지요,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일련의 예술작품들을 바라보면서 이것을 예술로 받아들일수 있었던 것입니다.  일련의 작품, 그것은 통시성을 가리킵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주우욱 살펴보니 그 정신병자같은 사람이 정신병자가 아니고 뭔가 새로운 아이디어로 예술에 살을 찌워가는것 같다"라고 사람들이 느끼게 된다는 것이지요. 미루어 짐작컨대 앞으로도 매력적인 무엇인가를 창조해 내겠구나...

 

단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우리는 그것이 천재의 작품인지 아닌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끔 농담으로 피카소가 줄을 하나만 그려도 억대 그림이 되는거고, 우리가 줄을 백개를 그려도 소용이 없다고 자조적으로 말하는데요. 왜 피카소가 한줄 휙 그은것은 예술이고, 내가 휙 그린것은 예술 대접을 못받나?  피카소의 한 획에는 그 획의 의미를 가늠하게 해주는 역사성이 들어있고, 내 한 획에는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한 획인지 증언해줄 기존의 쌓아온 무슨 실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술대학 입시생들이 '포트 폴리오'라는,  일련의 작품들을 정성껏 모아서 심사위원들에게 제출을 하는 것이지요.  일련의 작품들을 보여주는 이유는 '내가 이렇게 내 스타일을 창조해 냈고, 이렇게 성장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제가 미술관 돌아다니고 그림 구경하고, 그림 사진찍어오면서 몸소 체험한 것인데요,  미술관 한군데 가서 그냥 어떤 화가의 걸작 한두점 본것으로는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그 사람의 작품들이 여기 저기 걸려있는것을 구경하면서 나중에 그것들을 종합하여 정리하는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들을 깨닫습니다.  단편적으로 이리저리 모아오던것을 한군데 몰아놓고 살펴볼때, 작가의 개성, 위대성, 어떤 변화나 흐름, 메시지 같은 것들이 아주 선명하게 떠오르더란 것이지요.

 

그래서,  어떤 작가의 일련의 작품을 직접 눈으로 살피는 과정에서 그 사람의 전체적인 개성을 잡아내게 되는데, 그렇게 종합적인 시각을 갖춘후에  그 사람의 작품 '하나'만 봐도, 그 하나속에 스며있는 전체가 보이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 반복하지만

(1) 대개의 경우 작품 하나에 한 작가의 일생의 작업이 다 스며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만 봐더 전체를 다 볼수 있다는 뜻입니다.

(2) 그러나, 작품 하나만 보고 전체를 다 봤다고 말하면 그것은 사기 입니다. 전체를 다 보기전에는 그림 하나에서 전체를 다 살필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역설처럼 들리지요?  제가 체험한 내용입니다. 물론 다른 식의 체험도 있겠지만요.

 

우리가 작품을 보면서 작가의 이름을 살핀다거나 제목까지 살피는 것은, 그림에 좀더 다가가기 위해서이고,  그림의 '작가'가 문제가 되고 주목을 받는 이유는, 그 그림을 그린 특정작가의 이력과 그 그림이, 그 그림의 앞뒤에 제작된 그림들과 그 그림이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피카소의 한 획은 수십년 공들인 끝에 나온 한 획인것이고 그 획속에 스민 땀이나 고민까지, 그 획 전후에 나타났던 작품들까지 우리가 상기할수 있으므로 그 획을 인정해주는 것이고, 획 너머의 고민까지 상기하는 것은 작품을 감상하는 우리들의 몫이 되는 겁니다.  알면 사랑하고, 사랑하면 보이나니...  알면 아는채로, 모르면 모르는채로 우리는 사랑하기 위해서 다가가야 하는 것이지요.

 

 

2010년 1월 14일. RedF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