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7일 수요일

Starbucks, Beegees 선율이 불러온 회상

The Bee Gees Opus by Starbucks Entertainment ()

 

챔버스 교수의 장례식을 마치고, 일부는 점심을 먹으러 함께 이동했고, 나는 피곤하여 그냥 집으로 향했다.

사실 비가 안온다면 오랫만에 강변에 나가고 싶었는데, 비가 쏟아졌다.

알링턴에 있는 작은 천주교회.

거기서 돌아오는 길에 매클레인 스타벅스 (예전 우리집 근처에 있던)에 들러서 Cinammon Dolce Latte 그란데, 휩크림 듬뿍 올려달라고 주문을 하고. 눈앞에 스타벅스에서 판매하는 음반, 비지스 것이 있길래, 수록곡 들여다보고 한장 샀다.  매사추세츠도 있고, I started a joke 도 있고.  좋아. 이렇게 비오고 낙엽지는 가을, 장례식 날 딱 맞는 음반이군.

 

 

모든게 Joke 같쟎아... 사는것도.

 

 

그래서 조크같은 이야기 두가지를 적어본다. (문득 생각나서)

 

동창

 

나는 지금 그 친구의 이름도 기억을 못하고, 그가 중학교 동창인지 고등학교 동창인지도 잘 분별을 못하겠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친구의 키가 작은 편이었고, 아주 똑똑하게 생겼으며, 애국조회 시간의 스타였다는 것이다.  애국조회 시간의 스타란 --- 무슨 상을 많이 받는 학생을 의미한다. 교내외 각종 행사에서 상을 받아서 월요일 애국조회 시간에 교단에 불려 나가서 상받는 아이들. ---> 나하고는 수만 광년 떨어져 있던 친구들. 하하하.  나는 그가 중학교 동창인지 고등학교 동창인지도 기억을 못한다...

 

어느해, 남편의 사회 생활과 관련, 가족모임이 있을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피크닉을 간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과 관련된 모임에 가는것을 예나 지금이나 불편하게 생각하는 축이다.  아무개의 부인으로 불리는, 그런 내 모습에 내가 불편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피크닉이 내게 즐거울 리는 없었고, 그냥 뭐 눈에 안띄는 곳에서 쉬고 있는데, 누군가 그 어리버리하고 불편한 상황속에서 내 이름을 부른 것이다.

 

  "너 아무개 아니니?"

  "네...제...제가 아무갠데...요....?"

  "나..나..*** 이야. 너하고 나하고 동창인데!"

 

그 친구 역시 남편의 가족 자격으로 그 피크닉에 온것이었고, 뭐 가족사항 맞춰보니 내 남편이 선배이고 그 친구 남편이 후배인 입장이었다.  내 남편은 우리 오빠보다도 한살이 많다. 하하하.  아 그러니까, 가족관계 맞춰서 살펴보니 관계가 약간 불편해진다.  한쪽은 뭐 선배 부인이고, 한쪽은 후배 부인이고. 게다가 한쪽은 나를 선명하게 기억하는데, 내 쪽에서는 그 친구의 이름도 잘 기억을 못하고 어리버리했던 거다.  (내 머릿속의 그 친구의 기억은, 그냥 나하고는 상관없이 동떨어진, 상 많이 받던 수재. 모범생. 장래가 촉망되는 여학생.)

 

그날 두 동창의 조우는 그냥 그렇게 어리버리하게 지나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 친구와 내가 공유하는것이 별로 없었던거다.

그 친구가 내 이름을 선명하게 기억한 이유는, 원래 그 친구가 머리가 좋아서 사람을 기억을 잘 하는것이리라.  도대체 나는 눈에 띄지 않는 개성없는 학생이었을 뿐이니.

 

 

 

친구

 

대학 다닐때, 영자신문사에서 활동을 했는데.  그 대학생 영자신문사 학생기자들의 모임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모 대학의 편집장을 알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사람 진짜 미남이었다. 키도 훤칠하고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그리고 표정이 밝고 온화했다.  영어도 진짜 잘했다. 그 대학 학생기자들 중에는 외교관 자녀로 외국 생활을 오래 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정설이었다.  전공이 무슨 천문기상인가 뭔가. 영어 잘하는 과학자. 오오~~  (이거 너무 노출시키면 그 인물이 누군지 견적이 나올 판인데...)

 

뭐 인물 좋고 성격좋고 그러니까 모두들 그를 좋아할 만 했다.  이 경우 나는 아예 집적거리지를 않는 편이다. 나는 원래 스타한테 반감이 있어서, 인기있는 사람 근처에 안가는 편이다. 그렇지만 '내추럴 파워'라는게 있다. 하하하. 가만히 앉아서 눈길 안보내도 올 사람은 오게 되어있는거다. (그땐 그랬었다. 모두들 순수했다...아니, 내가 순진했다...)  정말 엮일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엮일거라고 믿는 신비주의적 무지몽매함을 견지하고 있었다.   나의 신비주의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 잘생긴 분께서 내게 다가왔다.

 

캬~  눈만 마주쳐도 좋았쥐~ 

(난 또 얼마나 각을 잡았겠냐구... 무심한척, 시크해보이면서, 동시에 그 잘생기신 분을 잡아당겨 보기 위해서...)  에잇, 나는 왜 그때 그 남루한 청바지와 다 떨어진 싸구려 운동화밖에 없었던걸까?  지금 같았으면 멋도 부리고 그랬을텐데 말이지.

 

모임에서 만나면 제법 불꽃튀는 토론도 했었고, (이게 사실 토론을 위한 토론이기보다는, 피차 서로 낚기 위한 불꽃이었겠지...)

한번,

두번,

신총에서 만나가지고 또 그 쓸데없는 '진지한 토론'을 했었다.

나는 지금 그것을 [쓸데없는 토론]이라고 규정짓는데, 그 시간에 플라톤이 어쩌구를 떠들것이 아니라 "야 우리 사귈까?"  "그래 사귀자" 이런 소리를 했어야 하는 것이었겠지. 그 말 못하고 딴소리만 피차 한거쟎아...

 

세번째 만나기로 했던날, 내가 바람을 맞았다 (젠장...)

 

 

그때는 삐삐도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다.

나중에 그 잘생기신분이 학교 신문사로 전화를 걸어가지고 피치 못했던 상황을 설명하고 또 약속을 잡자고 했는데, 나는 그냥 끊어버렸다.  잘생기신 분들은 인기도 많으실테니, 뭐 나말고도 매력있는 여자친구들 많으실테고...  게다가 남녀공학 다니시는 분이시니, 뭐 내가 대수겠는가.  그후에 그 잘생기신 분이 그 시절의 문화였던, 학보 보내기 (학보가 나오면 서로 그걸 우편으로 부쳐주었다)를 통해서 내게 연락을 취했는데, 나는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그리고, 끝났다.  (그당시 나는 여자대학생이었고, 남학생이 여학생을 바람 맞힌다는 것은 삼족을 멸하고(?) 부관참시(?) 를 해야 마땅한 중범죄라고 상상하고 있었고, 바람 맞은 주제에 또 그 사람을 만난다는 일은 온세상 여자의 자존심을 모두 던져버리는 중범죄라고 믿었던거다.  나는 왜 그런 잘못된 신념에 사로잡혀 있었을까???)

 

 

 

 

내가 편집장이 되었을때, 그는 이미 졸업을 하고 떠난 후였고, 서로 마주칠 일은 없었다.  지금은 이렇게 몇줄로 정리를 해버리지만, 나도 쓰리고 그랬다. 아쉽고, 쓰리고, 함께 보냈던 시간을 떠올리며 한숨 짓고. 그가 보냈던 미소가 달콤하게 여겨지고. 그랬다.

 

세월이 흘렀다.

몇해전에, 한국에 갔을때, 그냥 우연히 어떤 자리에서 그 사람과 다시 조우했다.

뭐, 그냥, 내가 사람들한테 꾸벅꾸벅 인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떤 키크고 잘생긴 신사분이 무척 반갑게 나를 맞으셨다.  그래서 나도 원래 내 스타일대로, 미국식으로 악수 청하면서 "반갑습니다" 인사를 했는데, 이 분이 "어떻게 지내시는지 소식 많이 들었습니다...저 아무갭니다.  저 기억 못하시겠어요?" 이러는거다.

 

뭔소리랴?

 

그래서 내가 그 신사분 손을 잡은채로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기억 저 너머의 어떤 남학생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남학생을 끄집어낸 순간 모든 기억들이 일제히 되돌아왔다. 세상에...나는 그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니...

 

그래가지고 나는 다시한번 그와 힘있게 악수를 하는 것으로 반가움을 표시하고, 그리고 그 조우는 그렇게 끝났다. (쳇, 옛날에 신촌에서 두번 데이트 할때도 손끝한번 스치지 못했었는데 말이쥐...그땐 왜 그렇게 한심하게 촌스러웠던걸까?)

 

 

한때, 나는 그분에 대해서 아주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분도 어쩌면 그러했을지 모른다.  그분이 나의 행적을 알게 된것은 우연히 그렇게 되었던 모양이다. 뭐 친구가 플로리다의 내가 다니던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몇명 안되니까, 뭐 우연하게 알게 된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를 기억해내고 있었고, 그래서 나를 발견했을때 금세 알아본 모양이었다. 나는 그에 대해서 까마득하게 잊고 지내고 있었고.

 

그때, 그분과 지나치면서, 나는 인간 감정의 속절없음을 절감했다.

내가 한때 특별하게 좋아하던 한 사람이 내 눈앞에 있는데 내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기억해내지도 못하고 피상적으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을.

참 허무하고 쓸쓸한 일이다.

사람의 감정은 이렇게 허망하고 쓸쓸맞은 것이다.

 

또 한편 생각하면, 이런 사실들이 내게 위안을 준다.

가슴이 아픈가?

세월이 지나면 내가 왜 가슴이 아팠는지 기억도 못 할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

나는 아무것도 기억을 못 할것이다.

때로는 이러한 사실들이 내게 위안을 준다.

아무도, 나를 가슴아프게 할 수 없을것이다.

내가 이 모든것을 잊을때.

매일 매일 조금씩 조금씩 나는 잊으면서 사라질 것이다.

 

 

 

 

구두

 

 

어제 퇴근길에 몰에 들러서 스웨이드 구두 한켤레 샀다.

오늘 장례식장에 갈때 신으려고. 비온다. (에잇, 쎄무구두 비 맞으면 안되는데 -_-*)

비오면 곱게 물든 나뭇닢 다 떨어질텐데.

 

오늘 장례식장 다녀올때쯤 비가 그친다면 좋겠다. 산책가고 싶다. (일은 산더머지로 쌓여만 가고~~)

일이 쌓여가는고로 그리움이 쌓일 틈도 없다. 하하하.

 

장례식 가는 시커먼 복장 하고, 구두 신어보니 이게 의외로 예쁘네.

굽이 투박해보인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리가 홀쭉해보인다.

이러다가 구두에 맛 들이면 안되는데..

 

나가봐야지~~  (모짜르트 장례식때도 천둥치고 비가 쏟아졌다지.)

 

 

2010년 10월 26일 화요일

사랑의 노래 들려온다

 

 

 

아침에 문득 떠 올랐다.

 

[황 호양] 선생님.

지금도 어디선가에서 후학을 가르치고 계실 것이다.

서울사대 사회교육과를 나오셨다.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때 대학원에 다니고 계셨다.

 

황호양 선생님은 집안에서 막내 아들이었고, 당시 신혼이셨다. 연로하신 부모님을 모시고 사셨다.  딸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의 이름을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다고 자랑을 하셨다. 아주 특별한 이름이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중국 고전 영화에 나올만한 특이한 이름이기도 했다.) 중간 정도의 키에 (지금 생각하면) 예쁘장한 용모셨다.  말씀도 순하고 부드러웠다. 대체적으로, 사랑을 많이 받은 막내아들의 행복한 천성과 사회학 공부한 사람의 진지성을 유지한 그런 분으로 평가된다. (지금 어른이 되어 돌아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그 선생님과는 대학입시를 앞둔 고 3때,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숫기없는 내가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다니...)

 

내게는 원래 고등학교 3년간 내가 딱 찍어놓고 좋아하던 선생님이 따로 있었다.  나는 한우물만 파는 성격이라서, 일단 한 사람 딱 찍어놓으면 다른데 한눈을 팔지는 않는 편이다.  물론 내가 그렇다고 내가 찍어놓은 선생님한테 무슨 메시지를 보낸것도 아니지만... (이건 마치 테레비 보면서 남자 탈렌트 하나 좋아하는거하고 비슷한거지. 그냥 테레비만 줄창 보는거지.)  아무튼 나는 황호양 선생님을 그냥 '좋은 선생님'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는 말이지. 황호양 선생님은 일반사회, 국민윤리 그런거 가르치셨다.   (내가 찍어놓고 좋아하던 선생님도 동일한 전공자 이셨다. 아마도 학과 선후배 사이일것이다.)

 

그런데 내가 황호양 선생님과 방과후에 종알거리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었던 이유는?

 

아, 때는 고3 때였고, 그때 대개들 돈없는 애들은 방과후에 학교에 남아서 열시나 열한시까지 공부를 했다.  돈있는 애들은 어딘가 독서실로 가거나, 그보다 더 돈 있는 집 애들은 방과후에 자가용에 실려서 어디론가 갔다. (그때는 한반에 자가용있는 집 아이가 한두명 했다.) 

 

나는 즐거운 십대 생활을 무개념으로 보내다가 고3때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서 1년 반짝 공부를 한 케이스인데 고3때, 공부 좀 했다. 방과후에 공부하고 있다보면 내 친구 이호순이가 남아서 공부하다말고 한숨을 짓곤 했다. 내 친구 이호순이는 남아서 공부는 하는데 크게 집중은 안 한 편이고, 뭔가 다른데 골몰해있었다.  호순이의 한숨의 원인은 황호양 선생님 이었다. 

 

"오늘 황호양 선생님 숙직이라서 퇴근 안하시는데...교무실에서 공부하시던데...빵 사다 드리자..응?"

 

교무실에 가면 커다란 칠판에 숙직, 당직, 일직 뭐 그런 표시가 되어있지 않던가?  호순이는 그 내용을 줄줄 꿰는 식으로 황호양 선생님의 일정을 파악했고, 황호양 선생님이 교무실에 늦게까지 남아있는 날에는 빵이나 우유를 사다 드리고 싶어했다. 하하하 하하하 지금 생각하니 참 순진하고 천진하다.

 

문제는 이호순이가 너무나 수줍은 나머지 빵을 들고 혼자서 황호양 선생님한테 갈수가 없는것이다.

그러니

같이 가자는 것이지. 하하하.

 

 

그러면, 나는, (내가 황호양 선생님을 좋아했다면 나도 못갔을텐데), 나는 뭐 황호양 선생님에 대해서는 아무 감정이 없으므로, 큰 인심 써주는 기분으로 이 호순이와 함께 빵이나 우유를 들고 선생님을 찾아갔다.  황호양 선생님은 이호순이가 수줍어서 눈도 제대로 못 뜨면서 간신히 내미는 우유는 빵을 아주 달게 잡수시거나, 혹은 "야, 너희들도 시장할텐데 같이 먹자" 이러고 잘라주시거나 그랬다.  그러면 지가 준 빵, 선생님이 다시 잘라서 준건데 그 빵조각 하나에 이호순이의 그날은 '천국'이었을것이다. 하하하 하하하.

 

황호양 선생님은, 한가롭게 교무실 밖을 내다보면서, 그렇게 찾아간 우리에게 참 이야기를 잘 해주셨다. 지금 돌아보면 마음좋은 막내오빠 같은 스타일이셨다. 이호순이가 좋아할만도 하지... (나도 내가 이미 찍어놓고 혼자 좋아 죽던 그 선생님이 없었다면 황호양 선생님을 좋아했을것이다.)

 

사랑의 아이러니란 이런거지.

황호양 선생님을 좋아하던 이호순이는 빵하고 우유 사다 내밀고는 말 한마디 못하고 장날 내놓은 장닭처럼 눈만 두리두리하면서 진땀을 내고

황호양 선생님한테 특별한 감정이 없던 나는 선생님하고 종알종알 사심없이 떠들며 깔깔대고.

이호순이 속은 타들어가고

나는 공부하다 머리 식히며 룰루랄라~

 

 

그래도 황호양 선생님한테 빵과 우유를 사다 나르면서 이호순이가 꼭 나를 데리고 갔던 이유는

내가 선생님하고 격의없이 깔깔대고 그래도, 그래도 나는 믿을수가 있어서 그랬을거다.

나는 이미 딴 사람한테 미쳐있어가지고 이호순이의 연적이 될 가능성이 전혀 없어보였으니까. 하하하.

난, 매일 빵이나 사다 바치면서 입도 뻥긋 못하고 내 옆에 얌전히만 있는 호순이가 너무나 딱했다.

하지만, 뭐 (한숨), 나도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였는데, 나는 내가 찍어놓고 군침을 삼키던 선생님께, 심지어 빵이나 우유 따위도 사다바칠 용기도 없었던 것이니, 그냥 벙어리 냉가슴 앓듯 하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으로 내 오랜 사랑은 종지부를 찍어버린 것이다.

 

갑자기 아침에 황호양 선생님이 떠올랐다.

그 선생님과 방과후에 편안하게 이야기하고 그러던때가 아마도 황금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가을 햇살처럼 편안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사심없이 그냥 깔깔 웃을수 있었던 아주 귀한 시간.

 

황호양 선생님과의 수업에서 아직도 생각나는 것은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인가 그 책을 읽고는 사회시간 한시간 내내 지구 대재앙에 대한 이야기만 하셨던 일. 하하하하하. 우리는 1999년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과 공포를 갖고 살았었지. 하하하.

 

 

 

 

 

***

 

생각난김에 구글신께 여쭤보니 이미지가 딱 하나 나온다

 

 

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f94PLSwmh4J:chanson.hihome.com/seogeonryeon.htm+%EC%82%AC%ED%9A%8C+%ED%99%A9%ED%98%B8%EC%96%91&cd=2&hl=ko&ct=clnk&gl=kr

 

오른쪽에서 네번째, 왼쪽에서 다섯번때, 가운데 위아래 흰 옷 입고 있는분.

위 페이지 저자의 설명으로는 조용하기로 황호양이 으뜸이라고 하신다.

수십년이 지났으므로 자신 할 수 없지만, 옛날의 모습이 남아있는것도 같고.

얼굴 약간 앞으로 내밀고 이러고 서있는 모습이, 내가 알고 있는 그 선생님 모습이다.

찾아가서 종알거리면, 상냥하게 이야기를 들려주시긴 했지만,

성품은 고요하고 조용한 분이었다.

아마 친구들과 어울릴때도 왁자지껄하기보다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조용히 계실것이다.

그런데 그 웃는 표정이 참 평화로웠지.

 

황호양 선생님이야 나를 기억도 못하실것이다.

평생 교단을 지키신다면 스쳐지나간 학생이 수만명일텐데

그중에 개성없고 눈에 안띄던 나를 무슨수로 기억해낼것인가

하지만 나는 황호양 선생님을 기억하는 것이지. 아름답게.

아름다운 시간이었으니까.

 

이호순이 역시 지금은 나처럼 그냥 그 선생님을 기억하고 말걸.

사랑은 덧없다.

 

 

2010년 10월 25일 월요일

Life is Good

 

 

일주일 사이에 오파운드 감량하고 득의양양

평소에 벨트 없이 입던 바지를 그냥 빨아서 입고 나왔더니 질~질 흘러내려서 대략 난감.

 

금요일 오후까지 이번 사태에 대한 모든 마무리를 끝내고 퇴근했는데

토요일은 시체놀이(?)로 보내고

일요일 아침에는 침대에서 깨어났을때

잠시

기억 상실 모우드

-- 근데 여기가 어디지?

-- 여기가 어딜까?  (치매 걸린 분들이 아마 이런 증상일것이리라...)

-- 나 지금 어디있는거지?

-- 아아, 여기 내 방이구나

-- 여기가 미국이야 한국이야?

-- 나 왜 여기 이러고 있나?

-- 오늘이 언제지?

 

곰곰 생각하다가

컴퓨터 켜 놓고 보니 10월 24일이래.

달력 보니 일요일.

아하, 그렇구나.

 

옛날에, 우리 아빠 돌아가셨을때

삼일장 치르던 마지막날,

산소 근처 천막에 잠깐 누워서 깜박 잠이 들었었는데

그때, 깨어났을때 비슷한 경험을 했었지.

내가 어디있는지 전혀 모르겠는 증상.

 

한국에서 전화 와서 뭐 물어보길래

"왜 모두들 자기 일 하나 해결 못하고, 나한테, 나한테 묻는거야? 내가 한국 가서 그거 해결해줘야 해?"

이러고 소리소리 지르고...

소리소리 지르니까 기운이 나서

기운이 난 김에

집안 청소하고

빨래하고

쓰레기장으로 변한지 오래된 부엌 청소하고

 

 

아침에 찬홍이 맛있는 고기샌드위치 두개 만들어 보내고

나도 출근하여

오랫만에 카메라 앞에 앉아서 이리저리 표정 만들어보다가

--그래. 난 이 표정이야. 난 죽을때도 이 표정으로 죽어야 해.

--사람들이 의지할수 있는 자신만만한 표정. 이 표정에 속아서 결혼한 중생도 있는데. 일관되게 이 표정으로 사는거지.

 

입맛없고 기운없어서 워킹 못나가고 그냥 하루하루 견디고 있다.

뭐 곧 회복하고, 쌩쌩하게 돌아다닐 것이니~

만사는 잘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신이 특히 애지중지하는 착하고 귀염둥이이니까 (이거 내가 왕눈이한테 매일 하는 말인데...착하고 귀염둥이--문법에 어긋나지만, 그래도 '착하고 귀염둥이!' 라고 말한다. 하하하.)

 

 

 

 

 

2010년 10월 22일 금요일

우주선

해골 복잡하고 만사가 심드렁 할때,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인간이 생기기 전의 고대의 땅으로 가거나

우주선을 타고 멀리 항해하는 꿈을 꾼다.

 

우주선.

 

미국에서 나는 여러군데 '나사' 센터를 돌았다.

플로리다의 케네디 발진대도 가 보았고

알라바마 헌팅턴 나사 교육관과 박물관도 가보았고

휴스턴 나사 센터도 가 보았다.

 

우주선.

 

학생들에게 팀워크의 중요성을 설명할때, 나는 이런 얘기를 해준다:

"혼자만 잘나서는 우주선을 쏘아올릴수가 없어요."

"팀원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우주선 어딘가가 나사가 빠져서 결국 폭파하고 말걸."

 

'조화와 하모니' 이런 얘기를 하면 '우주적 원융 일체' 뭐 이런 위대한  동양사상적인 무엇이 떠오를지 모른다.  신기한 일은 개인주의가 극도로 존중받는 미국에서 쏘아올린 로케트가 인류 최초로 달나라에 안착을 했었다는 것이지.  로케트 접합부분 어딘가에 미세한 균열이 있어도 로케트는 제대로 목표지점에 가기 힘들것이다. 어떤 균열도 오차도 있으면 안된다.  그런 완벽에 가까운 것을 해 낸 사람들.

 

그래서 나는 '과학'을 좋아한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이 완벽을 추구하며 이루어내는 불완전한 성과들을 나는 눈이부시게 바라본다.

 

금요일 오전.  수업도 없는데, 지금 어느 강의실 구석에서 세명의 내 사랑하는 대학원생들이 열심히 작업들을 하고 있다. 새벽부터 와서 저러고 있는 모양이다.  다음주에 내 수업에 할 주제발표 준비때문에 저러고들 있을 것이다.

 

우주선을 달나라에 착륙 시키기 위해서는 빈틈 없는, 완벽에 가까운 로케트를 만들어야하고, 이 작업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일치 단결해야 한다.  의견차이를 어떤 식으로든 조정해야 하고, 문제점을 정직하게 보완해야 한다. 저쪽의 자존심이 상할까봐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주선을 하늘로 날려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학생들이 강의실 구석에서 저 고생들을 하고 있다.)

 

다음주에 내 학생들은 자신들이 만든 우주선에 나를 태워가지고 나를 달나라로 보내 줄 것이다.

 

 

 

 

배스트 드레서

지난주에 메릴랜드 대학에서 열린 학회 행사에 참석했던 내 학생들.

이들이  '우물' 밖 세상을 보고 나서 한 얘기 중에는 자기의 재발견에 대한 내용이 많이 있다.

이 학생들이 조그만 대학원 프로그램에 소속하여 학교만 왔다 갔다 하면서 공부하면서, 자기 스스로 그린 이미지가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 내가 하는것이 뭐 대단할게 있는가.

 

그런데 막상 나가서 학자들이나 박사과정 학생들이라는 사람들의 '프레젠테이션'을 보고 나서, 이들은 어떤 자신감을 얻었다.  "저 사람들 하는것도 뭐 대단할게 없네..."

 

대개의 학생들이 '우물 안'에 있을때는 그런 생각들을 품는다.

나는 작아보이고, 남은 커보인다.

 

내가 대학원 다닐때도, 나는 석사 과정때 지역 컨벤션에서 마이크를 잡았었는데,

나보다 훨씬 똑똑한, 내가 진정으로 존경하던 내 박사과정 친구들은 그 작은 지역 컨벤션도 겁을 냈다.

내가 석사때 갔던 깜냥으로, "별거 아니더라, 우리 한번 이번에는 팀으로 나가보자" 할때도, 내 친구들은 머뭇거렸다.  그 놈중에 하나가 지금 터키 최고의 국립대 교수로 일하는 도안이고, 또 하나가 지난주에 만났던 친구이다. 나보다 두뇌 명석하고 학문적으로 깊이 있었던 친구들.  그들은 막연히 겁을 냈다.  결국 우리 셋이 팀이 되어 발표를 했는데, 지금도 참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다.  밤새 내 차로 달리며 킬킬대고 수다 떨던 기억.  돌아올때는 내가 파김치가 되어 도안이 내내 운전을 했었다.  지금 이들은 나보다 빛나는 학자가 되어 자라고 있다.  (나는 내 친구들이 정말 자랑스럽다).

 

나는 작아보이고 남은 커보인다.

 

내 학생들이 학회에서 직접 보니, 엄청나게 대단할거라고 상상했던 프레젠테이션들이 우리가 수업중에 진행하는 것보다 짜임새도 약해보이고 부실해 보이더라는 것이다.

 

큰 행사에 가서 내 학생들은 "나도 대단한거네"라는 자각을 하고 왔나보다.

 

...그래...내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그것이었다.

 

내 학생들은 프레젠테이션을 참 잘한다.

팀워크 능력도 뛰어나다.

 

내가 그렇게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처음에 학생들은 팀워크를 부담스러워한다. 남과 함께 일을 하며 호흡을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양보도 해야하고 도와주기도 해야하고, 성질 나는 것도 참아야하고. 뭐, 일단 팀원들이 호흡이 맞지 않으면 팀워크가 제대로 돌아가질 않고, 그 결과물도 기형적이 된다. 내 수업에서 한두번 이런 고충을 겪고 나면, 이들은 손발을 맞추는 기술을 익히게 되는듯 하다.  나는 팀원들이 고착되지 않게 이리저리 팀을 구성하기도 한다.  늘 새로운 파트너와 호흡을 맞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발표를 하게 될때, 프레젠테이션이 완벽하게 진행되는지 그것도 평가를 한다.

 

이렇게 단련을 받으면서 매주 뭔가가 진행이 되는데, 이런식으로 교육 받다가 바깥 세상에 나가보니, 다른 사람들이 진행하는 것의 장단점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겠지. 내 학생들은 남이 하는 것을 보고, 자신과 견주어 보고 자신감을 얻어 가지고 돌아왔다.  "우리가 학교에서 하는 것들이 간단한 것이 아니었네" 하는 자각과 함께.

 

어제 챔버스 교수의 수업을 내가 진행했는데, 중간고사 대신에 주어진 데몬스트레이션.  팀별로 20분 안에 특정의 발음교육 모형을 발표하는 것이었다. 교수는 내용과 형식을 평가하는 것이다. (어차피 챔버스 교수의 수업 실러버스도 내가 짜 준것이므로 나는 내용 파악을 다 하고 있었다).

 

학생들이 손발을 맞춰서 눈부시게 잘 해냈다.

학생들을 보면서 -- 돌아가신 챔버스 교수가 수업을 정말 착실하게 잘 해내셨구나--생각했다. 학생을 보면 교수를 아는것이지.

 

팀별로 소소하게 문제점을 지적해주긴 했지만, 학생들이 모두 잘 해냈기 때문에 따로 감점을 줄 것도 없이 모두들 만점 처리를 했는데, 전체 평가를 할때 내가 특별히 덧붙인 것이 있었다.

 

"오늘의 베스트 드레서를 소개합니다. 이분들은 가산점 1점 추가."

 

전체 학생중 1/3 쯤을 호명하여 일으켜세웠고 모두 박수를 쳐주었다.

학생들은 예기치 않았던 '베스트 드레서' 선정에 깔깔대고 웃었다.

 

내가 선정한 베스트 드레서들은 프레젠테이션을 한다고 특히 옷을 신경써서 입고 온 분들이었다.

꼭 멋쟁이, 명품, 근사한 옷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옷중에서 특히 신경을 써서 고른듯한 차림. 나는 그것에 주목했다.  이분들은 발표 내용 뿐 아니라, 자신이 이 프레젠테이션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 옷매무새로 보여준 것이다. 계절에 안 맞는 듯한 정장 차림.  남이 보면 웃고 말겠지만, 나는 이를 높이 평가했다. 촌스러워 보인다고?  이 사람의 진지함이 내 눈길을 끄는데...

 

진지한 태도, 정성스러운 준비.

프레젠테이션에서 우리를 감동 시키는 부분은 두가지이다.

 

1) 일단 내용이 충실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의 노고를 읽게 된다

2) 발표 자세가 충실해야 한다. 화법이나 제스처 외에도 그 사람의 옷매무새가 우리 눈에 들어올 것이다.  발표하러 나타날때 실내복같은 추리닝을 입고 온다면 그것이 아무리 비싼 옷이라고 해도, 일단 프로페셔널리즘에 반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단련을 시켜서 내보내면, 최소한 기본은 한다. 나머지는 각자 역량껏 알아서.

 

 

 

 

2010년 10월 21일 목요일

챔버스 교수가 갑자기 돌아가셔서, 슬픔은 별도로 치고 (나는 슬퍼할 시간도 없는것 같다), 나는 패닉 상태에 빠지고 말았는데, 그가 책임지던 대학원과정 한과목과 ESL 한과정을 가르칠 강사를 학기 중간에 갑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레이첼이 빠져나가서 내가 일주일만에 훌륭한 선생님 데려다놓고, 막 한숨을 돌리려는 찰나에, 아니 웬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냐구~  ).

 

일단, 수퍼파워 닥터리, 보이지 않는 괴력을 발휘하여, 챔버스 박사 돌아가셨다는 연락받고 두시간 만에 그의 대학원 수업을 책임져줄 공인된 강사를 충원했고 (놀랍지 않은가...)  이제 그의 ESL수업을 메꿔줄 강사를 찾아야 했는데.  내가 갖고 있는 이력서를 뒤져 연락을 취해보니, 이미 어디선가에서 자리를 잡고 모두들 일을 하고 있었다.  오고 싶은데 시간이 안맞는 사람도 있고.  대략 낭패.

 

그리고, 어제는, 예정에 있던대로 스미소니안으로 향했다.  교육을 받아야 해서. (내가 지금 강사 찾아서 뛰어다녀야하는데 한가롭게 스미소니안이라니...) 한숨이 나왔지만 그래도 가서 교육을 받고 뮤지엄 카페에서 사과파이와 커피로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한 여자가 트레이를 들고 다가왔다. 합석좀 하자고.

솔직히 귀챦았다. 합석하면 대화를 해줘야 하고, 나는 지금 해골이 복잡해서 누구하고 한가롭게 떠들 기분이 아닌데...하지만, (내가 원래 사회성이 발달된 사람이라) 싫어도 몇마디 예의로 주고 받다보니, 얘기가 재미가 있는거라.  상대는 알고보니 스탠포드 사회학 석사. 세계 여러나라를 돌아다니며 살았던 사람. 민주당 지지자. 나하고 사상과 이념과 철학이 두말할것없이 통하는.  마치 또다른 나를 보는듯한.  그분은 나보다 열살쯤 많아 보이는 키크고 잘생긴 여성이었다.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강의하다가 지금은 남편 직장때문에 워싱턴에 와서 그냥 쉬고 있다고.

 

그래서, 인간적으로 그 사람과 대화가 즐거워져서, 내 신세한탄을 좀 했다. 챔버스 교수가 갑자기 떠나버려서 내가 낭패라는.  그도 진심으로 내 상황을 딱해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교육받으러 와서 만나야 할 사이이므로 후일을 기약하며 기분좋게, 가볍게 헤어졌다. 나는 그에게 내 명함을 한장 줬고, 그이는 쪽지에 연락처를 적어서 내게 줬다.  나는 온김에 뮤지엄 구경이나 하면서 시름을 달래고. 대책없지만, 어떻게 되겠지 뭐... 이러면서.

 

오늘 아침에도 아무데서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강사 후보가 연락을 해줘야 하는데....). 챔버스 교수의 목요일 수업을 내가 땜빵을 하기위해서 출근을 하면서, 차가 신호대기로 서 있을때, 내가 속이 답답해서, 혼자 차 안에서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하느님. 나 이러다가 챔버스 이어서 천국 가겠소...챔버스 데려갔으면 그런 사람 또 내게 보내주셔야 나도 살 것 아닙니까. 제발 오늘 강사 한명, 아주 유능한 분으로 보내주세요. 하느님, 귀가 있으면 내 말이 들리실겁니다. 나 지금 심각합니다. 강사 하나만 보내주세요!"

 

그런데, 수업중 커피 브레이크를 주고 잠시 오피스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낯선 전화번호.

받았지.

저쪽이 뭐라뭐라하는데 "어제 내친구 수잔이 스미소니안에서 널 만났다고 하더라. 너 ESL강사 필요하다며? 나 대학에서 ESL 가르치는 강사야. 내가 시간이 되면 수업을 하고 싶어서 전화했는데"

 

그래서 상대방을 체크해보니, 조지타운대에서 언어학 박사 코스 마치고 지금 논문 쓰는 단계라고 한다. 이미 주변 대학에서 ESL코스와 undergraduate 교양 코스도 가르치고 있었다.  게다가 챔버스 박사가 전직 변호사 경력이 있는데, 이분도 전직 변호사 경력이 있다는거다. 오마이 갓. 정말 챔버스같은 사람을 보내셨나보네!

 

그이는 내일 이력서와 성적증명서를 가지고 내 오피스에 오기로 했다.

별 문제 없으면 바로 다음주부터 수업 시작이다.  이미 여러군데서 비슷한 코스를 가르쳤으므로 문제 될 것도 없다. 수잔과는 30년지기인데, 수잔이 나에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설명을 했다고, 수잔을 믿기 때문에 나를 믿는다는 것이다.  나는 단지 어제 수잔과 점심을 먹었을 뿐이지만, 수잔은 나하고 영혼과 생각이 통하는 듯한 인상을 나도 받았었다.  수잔이 친구를 정말로 불러다 줄지는 나도 전혀 예상도 못했었지...

 

스미소니안에서 한테이블에서 점심을 먹으며 한시간정도 시간을 보낸 낯선 사람이

내게 이런 도움을 줄 줄을 나는 전혀 예상도, 기대도 하지 못했는데.

 

하느님한테 정말로 귀가 있어서 내가 소리소리 지르면 - 귀따갑고 시끄러워서 문제 해결해주시는가보다.

 

지금 창밖을 내다보는데, 하늘에 커다란 귀가 하나 있는것 같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