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24일 월요일

왕눈이의 친구들

우리 왕눈이는 '라사 압사 (Lasa Apso)' 잡종일것으로 추정된다. 털복숭이 개이다.  최근에 털을 싹 밀어버려서 지금은 '치와와'같은 꼴이 되고 말았지만, 기본적으로 털복숭이 개이다.  시추하고도 사촌간인 이 종류의 개들은 성격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른다.  그리고 내가 관찰한바로는 '털복숭이 개'들은 털복숭이 개들을 좋아한다.  왕눈이는 털이 길고 복슬거리는 개들과는 사이좋게 어울려 놀고, 털 짧은개를 보면 으르렁대고 사납게 군다.

 

옛날에 플로리다에 살때는 아파트 이웃의 포메라니안 개와 사이좋게 지냈다. 왕눈이는 문만 열렸다 하면 그집으로 달려갔다. 그 개도 문만 열렸다하면 왕눈이에게 놀러왔다.  하지만 털이 짧고 행동이 민첩한 발바리과의 윗집 개하고는 앙숙으로 지냈다. 아주 물어 죽이겠다는듯이 으르렁대곤 했다.

 

 

우리 이웃에는 비촌 프라이즈 (Bichon Fries) 종류의 개 한쌍이 산다.  그 집은 내가 플로리다에서 이사올 즈음에 조지아주에서 이사를 왔다.  그래서 둘다 서로 미국 남부에서 올라왔다는 이유만으로 마치 '형제'같이 각별한 이웃의 정을 느꼈다. 이 개는 오글오글한 털로 뒤덮여 있다. 그리고 순하고 태평하다.  이 개들은 우리 왕눈이와 몸집이 비슷한데 이렇게 오글거리는 털로 뒤덮여 있어서 몸집이 커보이는 편이다. 시각적으로만 커보일뿐 들어 안아보면 비슷하다.  (사진은 그냥 웹에서 빌려온것이다.)

 

 

 

이 개들은 우리집 건너 건너편에 사는데,  왕눈이는 심심하면 열린 문틈으로 뛰어나가 최종적으로는 이 개들이 사는 집 현관문 앞에서 어슬렁대고; 마찬가지로 이 개들 역시 집을 뛰쳐나와서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곳이 우리집 현관문이다. 

 

그러니까, 개가 없어지면, 그개가 간 곳은 뻔하다.  그리 가보면 거기 있으므로...

 

오늘은 집에서 일을 하는 중인데, 책상앞 창가로 하얀 털 뭉치같은 것이 굴러다니길래 내다보니, 이 개들이었다. 요놈들이 우리집 현관문을 박박 긁었는데, 내가 일을 하느라 그걸 감지를 못했나보다. 그러자 내 창가에 와서 동동거리는 것이었다. 문 열으라고.  요놈들이 내 창문과 현관문 사이를 오가며 박박 긁거나 동동거린다.

 

왕눈이도 낌새를 눈치채고 문 안쪽에서 동동거리고.

 

결국 내가 현관문을 열어서 두 놈을 잡아 들인후, 두 놈을 안아다가 이웃에 양도하는 것으로 일단락. 

 

이제 왕눈이 이사가면, 니네들 여기 와도 왕눈이 없는데... 

마지막 인사하러 왔니?

개들은 속상하겠다.  친구한테 이사간다는 말도 못하겠다.

 

 

 

이번주말에 이사한다. 

 

 

2010년 5월 23일 일요일

선생질을 제대로 하기위한 기본 수칙

선생질을 소신대로 하려면 지켜야 할 극히 기본적인 사항

 

 1. 공부를 열심히 하여 실력있는 선생이 된다

 2. 수업 준비를 충실히 하여 제공한다

 3. 학생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는다

 

 4. 1원 한푼이라도 급여 외에 학생 개인이나 학생 집단으로부터 삿적인 돈을 받지 않는다.  (이거 받으면 인생 끝장이라고 판단하면 된다.)

 5. 학생이 아무리 달콤한 말로 선물을 가져와도 절대 받지 않는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고, 반드시 댓가를 바라게 되어 있다)

 

가수는 노래로 말하는거고

피아니스트는 피아노연주로 정체성을 완성시키는거다.

선생은 수업으로 선생의 사명을 다하고

학생은 공부로 학생의 분본을 다한다.

그 외의 것들은 지엽적인 것이다.

그 외의 것들에 현혹되면 본질에서 벗어날수 있다.

 

이러한 원칙을 정확히 지키면,

평생 선생질을 해도 큰 문제에 빠지는 일은 없을것이다.

사실 이것은,  내가 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선생질을 하는 동안은 지키겠다는 다짐 같은 것이다.

 

내가 선생질하는 동안 경계해야 할 학생

 1호, 돈 봉투 가져오는 사람 혹은 다른 사람들까지 끌어들여 돈 봉투 만들어오는 사람.

 2호, 별거 아니라며 선물 갖고 내 연구실에 들어오는 사람, 이 사람 분명히 나중에 그걸 구실로 내 목을 조를 사람이다.

 3호, 식사대접 하겠다는 사람, 역시 내 목을 조를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학기초에 아예 실러버스에 명시를 해야 한다.  [내게 선물 가져 오는 사람은 '감점' 내지는 '과락'처리 해버리겠다.]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5) 영국동화집

내 기억속의 최초의 책. (노트북 내장 카메라는 거울 이미지로 사진을 찍는다).

 

 

 

 

 

 

 

 

 

 

 

 

 

 

 

 

아빠가 만년필로, 한자로 적은  19** 성탄절 기념

 

 

차례

 

(잉글랜드 민화)

재크와 콩나무

첼리의 모험

위틴턴과 고양이

톰 티트 토트

세 가지 소원

할머니와 흰토끼

튜울립 꽃밭

고양이의 임금님

 

(스코틀랜드 민화)

어부와 인어

노로웨이의 검은 황소

시인 토머스

괴물 레드 에틴

요정의 기사

가슴 빨간 개똥지빠귀와 굴뚝새와의 결혼

 

(아일랜드 민화)

요정과 바뀐 아이

하얀 송어

영혼 상자

요정 반시

거인의 층층대

게으른 딸과 세 할머니

도둑맞은 아가씨

 

영국의 전래동화

 

 

 

2010년 5월 22일 토요일

바느질

 

 

 

바짓단을 조정하느라 바느질을 하고 앉아 있다보니, 언제나 실을 길게 길게 잡는 내 모습이 다시 보인다.

 

어릴때,  할머니 슬하에서 바느질을 배울때, 게으름뱅이인 내가 바늘귀에 실 꿰는게 귀챦아서 실을 길게 길게 잡아서 끊으면,  할머니가 게으름보 손녀딸에게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리셨다.

 

 "바늘귀에 실을 길게 잡으면 멀리 멀리 시집을 간다더라..."

 

나는 할머니 품에서, 엄마 품에서 멀리 멀리 떠나와

남의 나라에서 8년을 보냈다. 앞으로 얼마를 더 이역에서 헤메야 할지는 나도 알 수 없다.

할머니 말씀처럼 나는 멀리 멀리 떠나와 있다.

나는 멀리 멀리 떠나와 있다.

 

지난주에 책 분양 파티를 하던중, 아주 오래된 동화책 한권을 발견하여, 그것을 다시 내 책상위에 가져다 놓았다. (이것 만큼은, 내가, 죽을때까지, 간직하고 싶다.) 

그것은 계몽사판 소년 소녀 세계 문학전집. 

나같은 386 세대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주황색 하드커버.

그 문학전집의 5번. 

영국 동화집.

 

우리들이 성장한 후에 이 계몽사 동화집은 어린 아이가 있던 친척집으로 옮겨져 갔는데, 딱 한권 이 '영국동화집'만이 우연히 내 책상에 남겨져 있었고, 나는 영문과 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영국에 가보지 못했다.)

 

이 오래된 책의 표지를 열어보니 유려한 필체의, 우리 아버지의 서명이 들어있다.  어느해 '성탄절' 기념으로 이 책을 아이들을 위해서 마련한 30대 초반의 가난한 가장. 내가 아버지를 30대 초반으로 규정하는 근거는, 아버지가 남긴 '어느해'에 대한 단서 때문이다.  나는 그 해를 나의 나이와 비교해본다. 내가 네살때다.  그리고 나는 그 해 겨울을 기억한다. 그 해 겨울에, 나는 글을 읽을줄 몰랐다.  그래서 이 신기한 책을 들여다보며 '그림'을 찾아 읽었었다.  그 해 겨울에, 나는 우리 부모님 품에 있지 않았다.  고모들과 할아버지 할머니와 지내고 있었다...  아마도 겨울 방학을 맞이해 서울집에서 시골집에 내려온 오빠의 보따리에서 이 동화책 몇권이 나왔을것이다.  그래서 글을 읽을줄 모르던 네살짜리 나는 책 속의 그림들을 열심히 들여다 봤을 것이다.

 

나는 그 해 겨울의 쓸쓸한 눈 내리던 날을 기억한다.

그날, 시골집을 지키고 있던 이는 둘째고모와 그의 애인이었다. (그 애인이 나중에 고모부가 되었다). 이들은 내게 사과 껍질을 바깥마당 두엄더미에 내다 버리고 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그래서 나는 화롯가에서 이 책속의 그림들을 구경하다 말고, 두엄더미에 사과 껍데기를 버리러 나갔다. 눈이 부슬 부슬 내렸다.  나는 사과 껍데기를 버리려다 말고, 사과 껍질을 질근 질근 씹었다. 달콤했다.  나는 바깥마당 두엄더미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부슬부슬 내리는 눈 속에서 사과껍질을 질근 질근 오랫동안 씹었다.

 

그해 겨울, 나는 네살이었다.

그리고 나는 여섯살때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서울집에 올라왔다. 엄마, 아빠, 그리고 형제들이 사는 집으로.

 

그러고보면, 나는 내 성장의 2년 혹은 2년보다 더 긴 동안 내 부모 품에서 벗어나 있었던 셈이다.  여태까지 나는 내 유년의 1년간 내 부모에게서 벗어나 있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책에 기록된 년도와 내 삶을 비교해서 생각해보니 2년 이상을 나는 내 부모나 형제로부터 벗어나 지냈던 것이다.  내 유년의 삶 6년중에서 2년 혹은 그 이상...

 

아하, 그래서, 이제서야 나의 이방인같은 행동 패턴을 내가 이해하게 된다.

 

학교에 다니기 위해 서울 집에 올라온 후에, 나는 가끔 자다가 '이상행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자다말고 벌떡일어나 집에 가겠다면서 옷몇가지를 안고 막무가내로 나가다가 붙들려 다시 잠이 들었다고 한다.  나는 가끔, 보자기에 옷을 싸가지고 집을 나서는 꿈을 꾸기도 했다. 반복되는 꿈.  꿈속에서도 나는 집에 간다며 보따리를 쌌다. 내 엄마 아빠와 형제들이 살고 있는 '그 집'이 분명, 내 집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나는 거기 소속한다는 느낌에서 벗어나 있었다.

 

 

삶에서 2년은 그리 긴 시간이 아니다. 남자가 군대에 다녀 올 시간쯤이려나.  하지만 유년의 최초의 6년에서 2년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닐것이다.  길고 지리한 기다림의 시간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나도 잘 알수가 없다.  가끔 엄마가 보고싶다며 울어댄 기억은 있지만, 뭐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서 편안하게 살았던 것도 같고.  (나는 지금도 할아버지가 보고싶다... 이미 돌아가시고 없는데도, 할아버지의 체온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바늘에 실을 꿸 때 아주 아주 길게 길게 꿴다.

 

원래 나는 태어날때부터 아주 멀리 멀리 떠나가도록 운명지어진 것일지도 모르고,  이미 유년기때 그 준비과정을 거친 것일지도 모른다. 

 

 

 

 

 

 

 

 

 

summer shopping spree

 

 

 

 

 

things that i bought recently ...to overcome depression

 

L.L.Bean wear  fits nice to me

 

 

 

 

 

 

 

 

The Territory Ahead

 

Circle Eyelet Cotton Skirt

 

 

Life sucks, but that's ok with me.

 

 

2010년 5월 10일 월요일

air supply - good bye

 

 

 

그날 새벽 세시부터 잠이 깨어서, 역시 그 시간에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 힘들것을 알기에, 주섬주섬 일을 시작했다. 몇시간동안 언라인으로 처리할 일들을 하고, 학교에 나가서 수업 준비를 하고, 수업을 하고, 그리고 또 일을 하다가 귀가했다.  공장 생산라인 돌아가듯 쉬지 않고 일을 해댔을것이다.

 

오후 햇살속에, 바람이 상쾌했는데, 조지타운 가는 길에 내 빨간 모자를 잃어버렸다.

잃어버린줄도 모르고 있다가, 하버에 도착한후에야, 내 머리에서 모자가 사라졌다는 것을 알았다.

바람에 날아갔을것이다. 그걸 내가 바람 맞으면서 걷는 재미로, 까맣게 모르고 있었을것이다.

 

몇시간을 하버에서 보내야 했는데, 지쳤는데, 다시 모자를 찾기위해 왔던길을 되짚어 가기엔 피곤한데. 졸린데. 그 모자 싼건데. 없어져도 그만인데. 뭐 여러가지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포기'하려고 했지만, 어쩐지 사람들 발에 짓밟힐, 쓰레기가 될 그 모자의 운명이 서럽더라.

 

그래서, 왔던 길을 되짚어서 

한참을 되짚어서 가다보니

길가에 빨간 모자가 오두마니 있더라.

 

달려가 그것을 집어서 손으로 툭툭 털어서, 다시 머리위에 단단히 썼다.

찾았다.

다시는 너를 잃어버리지 않으마.

 

그날, 그 모자를 쓰고 하버에서 네시간쯤 있다가 한밤에, 자정쯤에 귀가했다.

그날, 그런 일이 있었다.

 

모든 잃어버려진 것들, 버려진 것들의 뒷모습은 슬프다.

빨간모자를 슬프게 하면 안되었던 것이지.

 

 

 

2010년 5월 9일 일요일

Pennsylvania Academy of the Fine Arts Museum

공식홈페이지: http://www.pafa.org/

필라델피아 시청 인근에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Pennsylvania Academy of Fine Arts)'가 있다.

 

 

아래의 사진에서 가운데 보이는 높다란 흰 건물이 필라델피아 시청.

오른편에 보이는 건물들이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미술관과 학교 건물들이다.

 

 

 

 

 

 

 

아래사진에서 오른쪽의 붉은 벽돌 건물이 미술관이다.

 

 

 

 

 

1805년에 개교하였다고 새겨져 있으니까 205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이다. 200년을 넘겼다.  이 건물은 개교이래 세번째로 지어진 건물로 알려져있다. 이전 건물은 오래되어 손실되거나 화재가 났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매표와 안내를 겸한 데스크가 있는데 이곳에서 입장표를 구입한다 (성인 10달러). 전시장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고, 2층 전시장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만 사진을 찍도록 허용하고 있다.

 

 

 

 

 

 

 

아래사진, 오른쪽 구석에 보이는 작품들은 Andrew Wyethe (앤드루 와이어드)의 그림들이다.

 

 

 

 

전시장 내부

 

 

전시장 내부에서 사진 촬영을 금지시키긴 했지만, 뭐,

  1. 내가 그림을 훔쳐가는것도 아니고,
  2. 다른 미술관에서는 영구소장품에 한하여 사진 촬용을 허용하는데, 꼭 막아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수가 없어서,
  3. 돈 10달러 내고 들어간것이 아까워서,
  4. 내가 평생에 여기 한번 올까 말까 하는 판에 억울해서
  5. 내가 이래뵈도 '미국미술 전문가' 반열에 오르는 향토 아마추어 연구자인데
  6. 나도 건져가는게 있어야 휘발류 값이 안아깝지

등, 온갖 자기합리화를 주문처럼 외우고 외운후에, 경비하시는 신사분이 잠시 조는 틈에 딱 두장 찍었다. 현장 스케치 목적으로. 

 

내가 판단하기에, 이렇게 철저하게 사진촬영을 금지시키고 그러니까, 이곳이 대중에게 (혹은 외국인 여행자들에게) 알려져있지가 않고, 그러다보면 쇄락의 길로 들어서는게 아닐까?  인지도가 높아져야 학교의 위상도 더 높아지고 뭐 그럴거 아닌가?  나같은사람이나 찾아가지, 누가 여길 가서 기웃거리겠냐구~  내가 홍보해주는걸 고마워해야 하는거지. 헹.

 

 

 

 

 

 

 

카페테리아

 

내 뒷쪽에 앉아 계시는 분들이, 그, 힐러리 클린턴이 나왔다는 Wellesley College 동문 아주머니들이시다. 미술관 도는 동안 한그룹의 부인들을 어떤 전문 안내인이 안내하는 광경을 목도했는데, 이분들의 옷매무새나 행동거지가 좀 남달라보였다.  뭐랄까...설명하기 곤란한데, 뭐 교양있어보이고 안정되어 보이고, 범상치 않은 여성들의 모임으로 보였다.  '그 아주머니들 참 멋쟁이들이시네...' 뭐 이런 느낌.  차림이 화려했던것은 아니고, 그냥 행동거지나 자세가 안정되고 단아해보였다.  나는 그분들 쳐다보면서, '저 사람들중에 저사람, 저사람, 저사람은 내 친구하고 싶다' 뭐 이런 상상을 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카페테리아에 가보니 이들을 위한 특별 예약석이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Wellesley College Alumni 라는 표시가 보이는거다. 하하하. 저분들이 스무살때는 한가닥 하셨겠다.

 

웰슬리 컬리지는 미국에서 꽤 유명한 여자대학이다. 우리나라의 E여대가 그 영광을 누리듯, 미국에서는 웰슬리가 제법 콧대가 높다. 미국 영화배우 Julia Roberts 가 주연한 영화중에 Mona Lisa Smile 이 있다. 허구이긴 하지만, 그 영화속에서 줄리아 롸버츠가 여학교 미술선생으로 나오는데, 그 영화속의 여학교의 모델이 이 학교였을것이다.  부유층, 상류층 딸들이 다니는 작은 사립 여자학교. 그 영화속에서 미술선생이 잭슨 폴락의 작업장도 소개하고 그러는 장면이 나왔었다. 하필 이곳에서 웰슬리 출신 아주머니들을 뵈오니 그 영화 생각이 났다.

 

나는 뭐,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명문학교'에 다닌적이 없다.  한국에서도 보통 학교를 다녔고, 미국에서도 보통 대학에서 공부를 마쳤다.  나는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다. 현재 내가 가르치는 학교는 아직 이름도 미미한 신생 학교이다. 역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 할뿐.  나로서는 명문대에 다녀보지 못한 것에 대한 콤플렉스나 아쉬움 같은 것은 별로 없다.  그러므로 명문대 출신들에 대해서 '부러움'은 느끼지만, 그 밖의 다른 느낌은 없는 편이다. '너 좋은 학교 나왔니? 좋겠구나...' 뭐 그정도이다. 지금 내가 이렇게 기고만장을 떨고 있는 판에, 내가 만약에 소위 일류대를 싹쓸고 나왔어봐...기고만장이 하늘을 찔렀을거다. 하하.  근데, 저 아주머니들 아주 우아하고 교양있어 보이셨다. 내 맘에 들었다.  조용조용히 말씀들을 하시고...

 

 

 

 

 

 

 

 

 

 

미술관 바로 옆의 현대식 건물은 학교 건물이다. 이곳 1층에 기념품샵이 있다.

 

 

 

 

 

미술관 건너편에 병원 건물이 있는데, 병원벽 치장이 인상적이었다.

 

 

 

 

 

 

2010년 5월 8일 (토) 필라델피아에 있는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박물관'에 다녀왔다. 펜실베니아 미술학교는 미국 근대미술의 '산파'역을 한 미술학교라고 할 만한 곳이다. 근대 미국 미술사를 수놓은 쟁쟁한 미술가들이 대개 이 학교 출신이었다... 그리고, 이 학교의 미술관에 그들이 학생시절, 혹은 교수시절의 작품들이 소장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사진 찍기를 엄격히 통제한다.  아마도 그러한 이유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필라델피아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대개 필라델피아 미술관을 찾는다.  이 미술관도 필라델피아 미술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어서 슬슬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있다.

 

그런데, 필라델피아 미술관이 종합적인, 전 세계의 미술폼들을 시대별로 정리하여 소장하고 있는 반면,  펜실베니아 미술학교 미술관은 '미국미술' 을 중점적으로 소장하고 있다.  나처럼 '미국 미술'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곳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을 것이다.

 

...일부러 찾아 갔건만, 주옥같은 소장품들을 눈으로만 보고 사진에 담아 올수가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사진 촬영이 금지된 전시회에 가면 사진 생각 안하고 감상에만 집중 할 수 있으므로 좋은 점도 있다 (그렇게 위로를 해야 속이 편하지...)

 

미술관 기념품 가게에서 소장품 수록집을 판매하는데 65달러나 하길래, 깨끗이 포기했다.

집에 돌아와 아마존에서 헌책으로 30달러에 주문을 했다.

책이 오면, 내가 오늘 봤던 작품들을 상기하며, 다시 감상할수 있으리라.

 

사진 몇장과, 상세한 스케치는 나중에...(운전을 내리 했더니 피곤해서 술이나 한잔 때리고 뻗는게 상책일듯...)

 

아아아, 오늘 '그리운' 그림들을 눈에 가득 담아왔다...

 

 

* 안내인(docent)이 안내 다 마친후에, "녀 미술전공했지?" 하고 묻길래, "아니...취미로 미국미술 공부중" 이라고 답했더니, 이곳에서 요즘 Docent 교육중인데 자기가 추천할테니 와서 교육받고 Docent 하라고. (하하하).  필라델피아까지 왕복 일곱시간 교육받으러 다니라고? 하하하.   음...나 혼자 독학으로 공부하고 있긴 하지만, 나도 이제 미국 미술사의 뼉다구정도는 슬슬 불 정도는 된 것으로 보인다. 하하하. 슬슬 정리할 때가 되어가고 있는듯하다.  그나마....내가 사는 보람이다. 혼자 하는 미술사 공부... (나는 우울증이 폭발할때면, 그림 공부에 매달리는 편이다. 요즘 잠잠했는데, 다시 미술책 들여다봐야 할것 같다.  어린왕자는 우울하면 황혼에 의자를 뒤로 빼면서 하루에 수십번의 황혼을 보고, 나는 미술관에 간다.  가끔은 나를 그냥 내려놓고, 그림속으로 사라지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보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