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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11일 토요일

Edvard Munch Printings, National Gallery of Art

이미지는 클릭하시면 좀더 큰 사진으로 볼수 있습니다.

2010년 9월 4일 이은미 촬영

 

2010년 9월 5일 이은미 촬영

왼편의 대형 작품 사진은 뭉크의 Lonely One (쓸쓸한 사람)

 

워싱턴 디씨 내셔널몰, 국회의사당에서 지척인 거리에 있는 국립미술관 동관 (East Building)에서 현재 (2010년 7월 31일부터 10월 31일까지) 스웨덴의 미술가 Edvard Munch (1863-1944)의 판화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http://www.nga.gov/exhibitions/munchinfo.shtm  NGA의 뭉크 판화전 관련 페이지

http://www.nga.gov/exhibitions/2010/munch/index.shtm 전시회의 주요 작품을 사진으로 감상할수 있다.

 

위의 하일라이트에 소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내게 매력적이었던 연작은 뭉크의 Kiss. 그리고 여인의 머릿결과 파도가 서로 어우러지는 판화 작품이 너무 마음에 들었는데...바다에 누워서 둥둥 떠있을때 파도가 내 머리를 어루만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옛날에 플로리다에서 공부할때, 머리 식히러 바다에 가면 바다위에 몸을 누이고 둥둥 떠다녔는데 (송장헤엄) 그때의 그 느낌. 몸의 균형을 잘 못 잡으면 그대로 물에 잠겨버리지만, 균형을 유지하면 마냥 둥둥떠다니는. 그 완벽한 평화로움. 그리고 잔잔한 물결. 그 작품의 사진이라도 갖고 싶었지만 기념품샵에도 나와있지 않았다.

 

그 유명한 '절규 (Scream)' 판화작품도 걸려있었고, 대체적으로 뭉크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대충 보기에 좋은 판화 전시회였다. 

 

뭉크는, 내가 미국 주요 미술관들을 돌아다녀봤지만, 그의 작품을 만나기는 쉽지 않은 편이다. 피츠버그 카네기 미술관에서 발견한 사과나무 아래의 소녀그림이 분위기가 참 좋았고, 필라델피아 미술관에는 '인어' 그림이 있었다. 또 어디서 봤더라?  아무튼 뭉크의 회화 작품은 미국땅에 그리 흔치 않다.  그러니 판화작품을 연작으로 만나보는 것도 내게는 행운이라고 할 만하다.

 

뭉크의 판화들을 보니, 그는 한가지 모티브를 수십년에 걸쳐서 시도 하였다.

이번 전시회에 그런식으로 수십년간 재현해낸 주제들이

 * Kiss

 * Madonna

 * Vampire

 * Forest

이러한 것들.

 

나를 매혹시킨 연작은 Kiss.

내가 재미있게 본 작품은 성모 (Madonna) 시리즈.

 

만약에 뭉크 판화전을 보러가는 분이 내 글을 읽는다면, 이 성모 연작을 주의깊게 보실것을 권한다. 전시실 안쪽으로 들어가면 왼편에 최초의 마돈나 작품 (가장 초기의 작품)이 걸려있고, 오른쪽으로 이동하면서 세월이 지나간다.  그러면서 마돈나 작품이 조금씩 조금씩 변한다. 그런데 그 변화하는 것에서 어떤 윈리를 발견하게 된다.  뭉크가 애초에 그것을 의도했는지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나도 알 수 없다. 나 혼자서 이 연작의 수수께끼를 풀었다는 느낌까지...들었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이미 뭉크가 의도했고 비평가들도 인지하고 있으며 큐레이터도 알고 있었던 사항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미 두차례 이 전시회를 보고 왔는데, 아마도 전시기간중에 또 보러 가게 될 것 같다.)

 

뭉크의 '절규'가 우리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그렇게 암울하다. 전시회에 들어서면서 '이건, 뭐 애드가 알란 포우 (Edgar Allan Poe)같군' 하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런데 뭉크에 대한 자료를 좀 찾아보니, 뭉크가 일찌기 어머니를 잃었고, 신앙심이 강했던 아버지는 애드가 알란 포우의 이야기나 다른 귀신 이야기를 자식들에게 들려주길 좋아했다는 것이다. 결국 그렇게 연결이 되었던 것이군.  뭉크의 아버지는 아내를 잃고 자신이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에게 야단을 칠때면 "하늘나라에서 엄마가 너희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너희들의 잘못을 모두 알고 있다" 뭐 이런식으로 겁을 줬던 모양이다. 뭉크에게 엄마는 그리우면서도 무서운 존재가 되었을것이다. 그리고 이런 느낌이 그의 Madonna 연작에 반영이 된 것을지도 모른다.

 

이 전시회는 특별전시회라서 사진 촬영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입구 사진밖에 없다.

전시회는, 뭉크를 알건 모르건, 혹은 그의 정신질환적 분위기의 작품들을 좋아하건 안좋아하건 상관없이, 꽤나 매력적이다. 무서우면서도 달콤한 악몽같은. 꿈을 꾸는듯한 그런 분위기에 휩싸이게 된다.

 

뭉크의 Kiss 작품과 파도에 머리가 흔들리는 여인의 모습만큼은 아트포스터라도 구해서 갖고 싶다.

On the Waves of Love: http://www.munch.museum.no/grafikk/img/2/81.jpg

 

 

2010년 9월 5일 박찬홍 촬영

 

2010년 3월 7일 일요일

히아신스

 

 

 

 

 

 

해마다 이월이 오면, 나는 그로서리 구석의 꽃집에서 3-4달러쯤에 살수 있는 작은 구근화초의 화분 하나를 사다가 책상위에 올려놓고 봄을 기다렸었다. 대개는 히아신스. 히아신스 화분을 보면서 기다리던 봄날.

 

나는 이제 봄날을, 여름을, 가을을 기다리지 않는다.  나는 내가 무엇을 기다리면서 사는지 모른다. 나는 나머지 삶을 묵묵히 견디기로 했다.  착하게 견디기로 했다. 책상위에 작은 구근을 올려놓고 봄을 기다리는 일은 더이상 하지 않을것이다. 나의 봄은 갔다.

 

이태전 봄에 꽃이 다 지고 시들시들하던 히아신스 화분을 그대로 내버리려다가, 아직 살아있는 생명을 쓰레기통으로 보내기가 미안해서, 앞마당, 쓰레기통 옆 화단에 그냥 심어놓은적이 있다.  히아신스는 뜨거운 태양아래에서 시들거리다가 죽었을것이다. (나는 내가 심은 히아신스를 잊었다.).   그리고 작년 봄에 나는 그 히아신스가 꽃봉오리를 맺고 서있는것을 발견했다.  물이 잘 빠지지 않는 질고도 딱딱한, 불친절한 환경속에서 그 히아신스는 꽃봉오리를 맺은채 진땀을 내며 서있는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참 장하지 않은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속에서 그는 살아서 버티고 있었고, 봄이 왔을때 힘겹게 꽃을 피우고 있었으니까.

 

 

오늘, 나갔다 오는길에 혹시 그 히아신스가 아직 살아있는지 살펴보았다.  역시 새싹을 틔우고 자라고 있었다.  진흙을 뒤집어쓴채.

 

너는 내 봄날의 추억처럼 거기서 힘겹게 자라고 있다.   나는 곧 이사를 할 것이고, 이 집에서 보낸 나의 시간과 나의 추억과 모든것을 송두리째 남겨두고 나는 이 공간에서 사라질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히아신스 화분을 사지 않을것이고. 나는 내게 남겨진 삶을 잘 견뎌낼것이고.

 

오늘은 장갑을 끼고 나가서 꽃삽으로 이놈을 사뿐히 들어다가, 뒷동산, 물 잘 빠지고 양지와 그늘이 교차하는 곳에 이 놈을 심어줘야겠다.

 

밤에 외출했다 돌아오는 길에 도로를 휙 뛰어 건너는 여우를 이따금 본다.  나의 아기여우들도 이제는 자라나서 어딘가에 새끼들을 낳아 키우겠지.  나는 매일 내다보지만 뒷동산, 나의 여우굴은 잠잠하다. 가끔 도로를 건너는 여우를, 여우의 그림자를 발견할때, 혹시 나의 여우가 돌아와줄까 상상을 하다 그만두고 만다.  기다리면 올까?  오지 않아도, 나는 기다릴것이다.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Gustave Courbet: Winter in the Jura (1877)

 

Winter in the Jura, 1877, oil on canvas

Gustave Courbet (1819-1877)

워싱턴 필립스 콜렉션에서 2010년 2월 20일 촬영

 

구스타브 꾸르베의 겨울풍경 작품인데요, 제작 년도와 그의 사망년도가 일치해요. 그가 생존하던 마지막해에 그려진 작품이겠지요. 겨울철이라서 꾸르베의 겨울 풍경이 걸려있었던것 같은데, 아마도 3월이오면 다른 그림으로 바뀔것 같아요. 

 

그림이, 아주 조용하고, 크게 눈에 띄는것도 아닌데요.  그림이 사람을 잡아 당겨요... 다가가서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림이지요.

 

꾸르베는, 프랑스화가이지만, 아마도 제가 어떤식으로든 한페이지 만들고 지나가게 될 것 같아요.  꾸르베는 프랑스의 '사실주의'운동의 주요 화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가 미국의 사실주의 화단에 끼친 영향이 지대해요.  아주 단순무식하게 말하자면, '꾸르베없이 미국 사실주의 없다' 라고 할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결국, 제가 미국미술에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지만, 하다보니까 유럽미술 공부 다시하는 꼴이에요...미술사 전체를 알지 않으면 미국미술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져요... 세상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까...)

 

그런데 그런 배경은 일단 제끼고.  오늘은 이 그림만 얘기할래요.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림속의 풍경이 낯설지 않고요. 저 걸어가는 사람의 이야기가 스르르 떠올라요.  내 할머니 같기도 하고, 내 어머니 같기도 하고, 전설속의 수많은 여인들이 저렇게 눈쌓인 길을 걸어갔겠지요.  저것이 꾸르베 생의 마지막해에 그려졌다는것도 나름 의미심장하고요... 저 뒷모습이 어찌나 아름답고 정감이 있는지...  정말 아릅답죠...

 

 

 

이제 곧 봄이 오겠지요.

 

지난 개강주의 피로가 결국 터져버려서, 눈가에 포진이 생겼군요 (눈가가 벌겋게 붓고 말았.. 그래서, 어제 사진 보면 눈가가 붓고 얼굴도 뭐랄까 빵처럼 부풀어가지고 딩딩하고...아주 막장으로 가는구나~  어쩔거나... ). 바로 금요일밤에도 나갔다와서 수업연구하고 새벽까지 컨벤션에 보낼 자료 두가지나 작성해서 날렸거든요. 눈을 비벼가며 머리를 짜내며 작업을 했더니만, 포진이 눈가로 와버렸어요.  열나고 쑤시고.  아마, 열이 뻗쳐서 어제도 기를 쓰고 나가서 구경을 다닌것 같아요. 열이 뻗치면 집에서 쉬어야하는데, 자꾸 나가게 되지요. 열이 뻗치니까.  이럴땐 센트룸 두알을 강력하게 먹어주고, 열 뻗치는김에 몰아서 공부하고 일하는거지요.  아, 다음주에도 총장님 면담도 있고 (공식행사 있는데 눈에 안대하고 나갈수도 없고~~  어쩔거나), 일이 쌓였는데, 난감.  뭐, 한주 지나면 봄이 오겠지...

 

 

 

 

 

 

 

2010년 2월 13일 토요일

The Cold Day 추운날

The Cold Day 1858

Pierre-Eduard Frere, French,(1819-1886) oil on panel

2008년 7월 19일 볼티모어 Walters Art Museum 에서 촬영

 

 

이 그림, 제가 일전에 소개했던 어떤 화가의 그림과 분위기가 유사하죠...  사진 파일들을 포터블 하드로 옮기면서, 옛날 사진들을 보다가 발견한 것인데요. 

 

 

http://art.thewalters.org/viewwoa.aspx?id=24930

http://art.thewalters.org/webimages/ARG_37.29_Fnt_UK.jpg

 

Frere (1819-1886)의 좀더 선명한 이미지를 월터스 미술관에서 빌려 왔고요.  아래는 이스트만 존슨 (1824-1906)의 'The Early Scholar' 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프랑스, 미국 화가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비슷한 분위기의 그림입니다.  Frere의 그림은 1858년에 그려진 것이고 Johnson의  그림은 1865년으로 추정되는데요.  이스트만 존슨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수학한이래로 유럽등지를 다니며 당시의 미술가들과 조우하다가 1855년에 미국으로 돌아옵니다.  이들이 서로 교유하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http://americanart.textcube.com/210

http://americanart.textcube.com/367

 

 

두 작품 모두, 참 사랑스러운 장면이지요.  Frere 는 주로 이런, 어린이들의, 소박한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 화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음, 저 위의 사진은 제가 미니카메라로 대충 아무렇게나 찍고 다닐때의 흔적이라... 지금보니 한숨이 나오는군요.  그때도 그림을 발견하고 하도 좋아서 몇장이나 찍었는데, 그나마 그중 가장 낫은 것이지요.  :)

 

 

 

 

 

2010년 2월 12일 금요일

Renoir 빨래하는 여인들

 

 

Washerwomen 빨래하는 여인들 c.1888, oil on canvas

Pierre Auguste Renoir, French, 1841-1919

볼티모어 미술관에서 2010년 1월 23일 촬영

 

 

얼핏 보기에 크레파스와 파스텔로 그린듯한 느낌이 드는 그림입니다.  이 그림 보고나서, 느낌이 하도 좋아서, 그림카드도 한장 샀지요.  엄마한테 부치려고.  아마, 이 그림을 발견했을때부터 엄마 생각이 났던것도 같아요.

 

개울에서 빨래 해 본 세대도 내가 마지막이 아닐까... 아 저도 본격적으로 빨래를 손으로 해 본일은 없는것 같습니다. 어릴때 개울가에서는 주로 어른들이 빨래할때 옆에서 노는 정도였고,  아...어른이 되어 몇년간은 열심히 손빨래도 했었군요.  애들 기저귀 빨래.  그러니까, 큰애, 작은애 낳아서 키우는 4년간은 저도 제법 헝겊 기저귀를 성실하게 '손'으로 빨아댔습니다. 기저귀는 세탁기에 세제넣고 돌리면 안된다고 믿던 시절이라서, 기저귀만큼은 손으로 빨래비누 사용해서 빨아댔군요.  (나도 제법 성실하게 산 시절도 있었군.)  기저귀는 햇살에 말려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햇살을 따라다니며 기저귀를 널기도 했고.  오후 햇살속에 바삭바삭하게 마른 흰 기저귀를 '따서' 개는 손맛도 기억이 나는군요.

 

제 기억속에, 가장 오래된, 빨래터 기억은,  이런 정경하고 비슷해요. 온가족이 아직 시골에서 지낼때니까 세살 혹은 네살이었을텐데, 엄마는 그당시 한복차림의 시골 아낙이었고, 머리에 머릿수건을 쓰고, 앞을 다 가리는 커다란 행주치마를 두르고 이렇게 개울에서 이불빨래를 하고 있었지요.  나는 엄마가 빨래하는 근처에서 물장구를 치며 놀고. 그당시 시골에서는 이불 빨래를 해가지고는 개울가, 수풀에 걸쳐서 널었어요. 수풀위에 허연 이불호청들이 이리저리 널리는거죠.

 

그때, 나도 그림속의 아이같은 앞가리개 옷을 입고 있었어요.  (이것은 아마도 재봉실력이 있는 엄마가 이불호청 같은 광목천으로 앞가리개식으로 만들어 준것 같아요.  우리 시골 마을에서 우리 언니와 나만 이런 앞가리개 치마를 입고 살았지요.).   그때는 개울가에서 놀다가 목이마르거나, 그냥 심심하거나, 배가고프면,  어마는 저만치서 빨래를 하고,  물오리가 몇마리 저만치서 돌아다니는데, 나는 여기서 그 개울 물을 손으로 떠 마시고 그랬어요.  물속으로 송사리떼 돌아다니고.

 

그림속에 서있는 여인은 르누아르의 애인이었다가 훗날 정식으로 결혼을 한 여인이고, 꼬마는 그 여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첫 아들.  (앞치마같은 것을 입고있어서 소녀인줄 알았는데, 남자 아이라는군요.)  개울 물 졸졸 흐르는 소리가 나는것 같죠?  햇살은 따스하고, 살랑살랑 따뜻한 바람이 부는것 같아요. 다음주에 출근을 하면, 우체국에 들어서 엄마에게 이 카드를 부쳐드려야지.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Rodin, The Kiss 입맞춤, 볼티모어 미술관 소장

주말을 맞이하여, 팬 서비스 차원에서 제가 아끼는 작품 사진을 올려드리죠 :)  로뎅의 '입맞춤' 입니다. 볼티모어 미술관 소장품 입니다.

 

 

Auguste Rodin, French, 1840-1917  오거스트 로뎅, 프랑스, (1840-1917)

The Kiss, 1886, Bronze  입맞춤, 1886, 동

 

이 작품은,  생각하는 사람 (The Thinker)과 마찬가지로 로댕이 1880년 위임 받았던 '지옥의 문'에 포함될 작품으로 디자인 되었는데요, 단테의 신곡에서 지옥편에 등장하는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들 프란체스카와 파올로의 첫 키스 장면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이 지옥의 문에 실제로 포함되지는 않았고, 그냥 독자적인 작품으로 남게됩니다.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슬픔에 빠진 모습으로 지옥의 문에 실리게 되지요. http://americanart.textcube.com/59 이 페이지에서, 제가 손으로 만지고 있는 작품이 바로 슬픔에 울부짓는 프란체스카 입니다, (아무래도 지옥의 문 사진들도 조만간 올려드려야 할 것 같군요.)

 

1893년 이 작품이 시카고에서 개최된 세계 콜롬비안 엑스포에 출품되어 나타났을때, 포르노그라피로 간주되어서 특별 전시 공간에 전시 되었으며, 특별히 신청을 한 관객만 절차에 따라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   하하하.

 

 

 

 

 

 

 

 

 

 

 

 

 

 

 

 

 

 

 

 

 

 

 

 

 

 

 

 

 

 

 

 

 

 

 

 

 

 

 

 

 

 

 

 

 

 

 

 

 

따로 설명이 필요 없죠.  이런 작품은 그냥 보고, 느끼면 되는거죠.  따따부따 설명이 필요 없죠.  제가 이 작품의 모사품을 수년간 들여다보며 성장했건만 (옛날에 어렸을때 우리집에 석고로 만든 모사품 작은것이 있었어요. 아버지가 아마 누군가에게서 선물로 받아오셨겠죠),  여태까지 몰랐던 것이 뭐냐하면,  여자의 왼발이 남자의 왼발위에 포개져 있었다는 것이지요.  전에는 여자의 왼발 아래에 있었던 것이 남자의 왼발이라는 사실을 몰랐어요. 그걸 이제야 발견한거죠. 볼티모어에서.

 

아, 사람들이 클림트의 '키스'를 좋아하쟎아요. 유명하기도 하고.  하지만, 키스는 누가 뭐라해도 로뎅의 키스죠. 저로서는 로뎅의 키스 만큼 아름다운 작품은 다시 찾기 힘들어요. 완벽하죠. 이보다 더한 열락의 경지가 또 있겠는가 하는거죠.

 

 

 

2010년 1월 RedFox 볼티모어 미술관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액자가 좋군요

 

Young Woman in White Holding a Bouquet , c1865/1875

Oil on Wood

Alfred Stevens, Bengian, 1823-1906

2010년 1월 20일 National Gallery of Art 에서 촬영

 

엄마는 환갑에 붓을 잡고 그림을 배우기 시작해서 칠순에 개인전을 하신, 행복한 할머니이신데요,  엄마가 가끔 좀, '사차원'적인 발언을 하실때가 있어요.  그래서 엄마를 모시고 어딜 다니면 좀 '조마조마'한 경우가 있어요.

 

몇해전에 한국에 갔다가, 엄마와 언니와 함께 인사동 갤러리들을 구경하러 소풍을 나간적이 있었습니다.  그냥 아무 갤러리나 가서 구경하는 것이었죠.  그런데 어떤 갤러리에서, 한가롭고 심심했던지, 개인전을 열고 있던 화가가 우리에게 다가와 말을 거는 겁니다. (이럴때 저는 좀 불편해요.  나 그림 구경할때 누가 말 걸면...특히 상대가 나하고 분위기가 잘 안맞아떨어질때... 분위기 안맞아떨어진다는 말은, 뭐랄까 서로 공통분모가 없어보이고, 저쪽이 뭐랄까, 하여튼 나하고 잘 안맞을때)  저는 그 사람이 귀챦아서 쓱~ 우물거리며 외면을 하는데,  엄마가 흔쾌히 그 화가에게 편안히 대꾸를 해주는겁니다. (그분이 좀, 화가처럼 안보이고, 화려한 귀부인 의상을 하고, 너무나 화려해서 제 맘에 안들었을겁니다. 죄송하게도. 그림보다 화가의 의상이 더 화려하고 남미의 알록달록한 의상처럼 눈에 띄고, 뭔가... 이건 아니다싶었는데.)

 

그 화려한 화가가 엄마한테 물었습니다: "사모님, 이렇게 이쁜 따님들하고 나오셨군요. 그림은 좀 둘러보셨어요?  그림이 맘에 드세요?"

 

우리 엄마, 너무나도 순박하고, 순진한 할머니의 표정과 말투로, 어눌하게, "예...참 좋네요...액자가 참 멋있어.. 이 액자 어디서 맞췄수??"  (시장에서 좌판 벌인 아주머니와 가격흥정하는 말투...)

 

(=.=;) 머리에서 띠용띠용 앰뷸런스 불 깜빡깜빡. 아뿔싸, 엄마가 사차원적 말 실수를 하셨다.  화가한테 '액자가 좋다'는 말은 무례쟎아.  이건 모욕이지.  내가 당황스러워가지고 눈이 둥그레져가지고 우리 언니와 무언의 눈의 대화를 사고 있는데, 그 화려한 화가님, 전혀 개의치 않으시고,

 

"액자 멋있죠?  아이고, 이게요 엄청 비싼거예요.  이 액자만드는 사람이 아무한테나 안만들어줘요. 이중에 몇개는 친구한테서 액자 빌려온거에요.  액자값이 한두푼 해야 말이죠."

 

그때, 그 순간, 저는 자신이 참 비루하고 좁고, 작은 사람이라는 자각을 했습니다.  첫인상이 안좋다고 말을 걸어오는 사람을 슬쩍 피한다거나, 이런거 사실 별로 안좋은거거든요.  남이 화려한 의상을 했다고 '경멸'하는 태도를 취한것 역시 안좋은거죠.  그러면 안되는거죠. 그에 비해서 그 화려한 화가님은 아주 '품'이 큰 사람이었던거죠. 활달하고, 얼핏 보기에 모욕적인 언사에 대해서도 너그럽게 웃어 넘길 아량과 여유가 있고,  우리엄마의 '실언'처럼 보이는 언사에 대해서 편안하게 대처해주고. 그분이 품이 큰 사람이었던거죠. 

 

국립미술관 (NGA) 프랑스 소품전에 전시된 작품인데요, 제가 이 그림에 특히 매력을 느낀것은 아니고, 액자가 하도 예뻐서 사진기에 담아왔습니다. 액자 조각도 예쁜데, 사방으로 거울도 들어가 있어요. 저 오른쪽 거울속에 저도 들어있어요 :)  참 예쁘게도 만들었군요. 제 블로그에 '액자'까지 포함된 그림 사진을 올리는 이유가 이런것 때문입니다.  액자는 그림의 옷이거든요. 그 옷까지 담는거지요. 때로는 액자가 그림을 압도할때도 있는데요, 그것 역시 그 그림의 운명이지요.  만약에 어딘가에 책이나 자료가 있다면, 액자와 작품과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공부를 좀 해보고 싶군요. 

 

 

2010년 1월 20일 수요일

일본 신 판화 Shin Hanga

 

오늘 프리어 갤러리 (스미소니안 아시안 미술관)에 들렀다가 기념품샵에서 서류보관용 얇은 폴더를 하나 구입했습니다. 앞면, 뒷면.  Shin Hanga 라고 적혀 있길래 대략 감으로 '신 판화'라는 소리구나 했습니다. 제가 일본풍 물건을 잘 안사는데 (민족 감정이, 국수주의자 소리 들을 정도로 강한 편이라...)  일본 판화에는 흔들리는 편입니다.  사실 오늘도 혹시 내가 보고싶어하는 일본판화가 전시장에 나왔나 보려고 들렀던 것이거든요.  프리어가 일본 판화를 많이 소장하고 있는데, 전시장에는 안보여요.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보고싶은게 있거든요. 제가 보고 싶은 판화는 Kawase Hasui (가와세 하수이)의 작품들 입니다.  히로시게 판화도 보고 싶고요.  가외세 하수이의 판화 작품중에 꿈결같이 아름다운 것이 하나가 있지요.... 그걸 보고 싶어서 스미소니안 나들이 할때마다 프리어에 들르곤 하는데, 직접 작품을 본적은 없습니다.

 

 

 

위의 것이 폴더의 앞면이고, 아래의 사진이 폴더의 뒷판입니다. 뒷판에 '눈오는 그림' 있쟎아요. 그것이 가와세 하수이의 작품입니다. 제가 보고싶어하는 꿈결같은 작품은 저것이 아닙니다만...  저는 가와세 하수이의 판화를 좋아합니다.  이유는...저도 잘 모릅니다. 그냥 '무작정 당신이 좋아요' 패턴입니다.

 

 

 

폴더는, 아들녀석에게 주었습니다.  "엄마는 왜 일본 그림 그려진것을 사오시는가?" 역시 국수주의자 성향이 농후한, (그 밥에 그나물이지요. 그 어미에 그 아들입니다) 그 아들놈이 의아해 합니다.  그래서 설명해주었습니다. "근대 서양미술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본 판화를 알아야 한다. 19세기 말기부터 20세기 초반에, 일본 판화가 서양 미술 세계를 뒤 흔든적이 있다.  우리가 좋아하는 지존하신 반 고호님도 일본 판화에 미쳐지낸적이 있으시다. 왜 그네들이 일본 판화에 미치게되었을까?  그들에게 일본 판화는 신대륙의 발견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사건이었던거다..."  

 

저는 오늘 가와세 하수이의 판화작품을 혹시 볼수 있을까 싶어서 프리어 갤러리에 갔었습니다. 하수이도, 꿈결같은 그림도 보지 못했지만, 그래도 괜챦습니다. 저는 오늘 벚꽃 분분히 흩날리는 속에 속삭이는 아이들을 본것도 같고, 꿈을 꾸는것도 같았습니다. 세월이 가면 뭐합니까.  꽃은 또 필것을요.  그 꽃이 피면, 나는 꿈결같은 꽃밭속을 걸을것입니다.

 

가와세 하수이의 그 목판화 작품을 언젠가 볼 날이 있겠지요. 설령 못본다해도, 어차피 한을 품고 죽기는 매한가지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 살아있는 동안 이 판화를 꼭 한번 보고싶습니다.

 

 

 

 

 

Rodin: The Kiss (La Baiser)

 

 

 

 

 

Auguste Rodin (1840-1917), French

The Kiss (Le Baiser) model 1880-1887,  cast. c. 1898/1902, bronze

2010년 1월 20일 국립미술관 로댕 갤러리에서 촬영, RedFox

 

 

 

음, 결국 '로댕'님이 저를 굴복하게 만드는군요.  미국미술 이야기라는 타이틀의 블로그를 일궈가면서,  미국미술에만 촛점을 맞추어 진행하겠다고 매일 매일 다짐을 했건만,  이 어마어마한 로댕의 작품을 어떻게 자랑을 안할수가 있나요~   헤헤헤.  제가요 웬만하면 예술 작품 이마빡에다가 이따위식으로 americanart.textcube.com 이런 텍스트 삽입같은거 안하거든요.  제가 텍스트 삽입해도 원화 해치지 않는 곳에다만 하쟎아요. 그것이 제가 정한 원칙인데요.  이 로댕의 입맞춤 만큼은, 이것만큼은, 이것만큼은 도, 저, 히, 도, 저, 히 안되겠습니다.  내것이라고 도장을 꽝 찍어 놓고 싶은 것이옵니다. (용서하소서).

 

저 뒷쪽에 뭐라뭐라 글귀가 씌어져 있군요. 뭔 말인지 조만간 자료 찾아서 올려보겠습니다. (제가 까막눈이라).  국립미술관 로댕 전시실 구석쪽에 있는 작품입니다. 작아요. 제 머리통만한 작품입니다.  하지만,  그냥 반짝 들어서 가방에 넣어가지고 나오고 싶었습니다요...  (아 아 훔쳐오고 싶다...)

 

 

가끔, 제가 환장하게 좋아하는 작품 (미국미술이 아닌것) World Art 라는 분류로 올려보겠습니다. 미국미술도 세계미술의 일부거든요...